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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들의 스승: 중세사상에서 지식과 권력의 역설


야로슬라프 펠리칸(Jaroslav Pelikan)

번역: humilis


지식과 권력이라는 현상에 대한 중세사상의 시각에는 역설과 모호함이 가득하다. 이런 견해를 단테의 『신곡(La Divina Commedia)』만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없다. 단테의 서사시는 인간을 다른 피조물과 구분 짓는 것이 지성과 학습능력이라는 중세의 시각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알고자 애썼다. 단테의 지식에 대한 개별적인 열정과, 지식을 갈구하는 인간은 신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그 시대의 보편적인 믿음은 『신곡』에서 “짐승처럼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덕과 지식을 따르기 위해 태어난 것(「지옥」, 26곡, 118-120)이라고 자기 동료들에게 주장하는 오디세우스를 통해 드러난다. 동시에 단테와 그 시대 사람들은 권력이 선과 악 모두에 거대한 힘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다. 예컨대 (동)로마제국의 황제로서 절대 권력을 행사한 유스티니아누스는 천국의 어엿한 성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지식을 탐색하는 가운데 보인 오만함(hubris) 때문에 지옥행을 선고받았으며 오만방자한 교황 보니파키우스8세는 (단테가 보기에) 성 베드로의 발언처럼 “내 무덤이 놓인 곳을 피와 악취의 시궁창으로(「천국」, 27곡, 25-27) 만든 죄로 똑같은 운명에 처하였다. 중세의 관점에서 그들은 어디로 길을 잘못 들었는가? 정당하고 부당한 지식의 추구와 권력의 행사는 어떻게 구별되는가?

  단테와 그 시대 사람들에게 해답은 각 행위의 적절한 한계를 파악하는 데 있었다. 중세사상의 주류는 인식론의 핵심에 인간 지식의 유한함을 설정하였다. 물론 궁극적인 신비는 하느님이었다. (테니슨의 시구처럼) “인간 사상의 최대한의 경계를 넘어서” 지식을 추구할 것을 동료들에게 역설한 오디세우스[율리시즈]는, 특정한 지식은 인간이 간파할 수 없는 채로 항상 남아있으며 또 그래야 한다는 시각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브처럼 이 그리스 영웅 또한 궁극적인 신비를 알고자 애썼으며 그 결과 자신의 인간성에 대한 완전한 의미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반면에 이교도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신곡』에서 “지식인들의 스승”(「지옥」, 4곡, 130-132)으로 칭송받을 수 있었고, 피조물인 인간 존재의 한계 내에서 알 수 있는 것만을 추구한다는 중세사상에 의해 그러하였다. 유스티니아누스 역시 그가 편찬한 법전과 그의 회심에서 드러나듯이 정치권력 심지어 군사력도 특정한 범위 내에서만 적법하게 행사할 수 있다는 한도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법과 정의가 권력을 가진 자의 위에 있다는 제한을 서술했다.

  지식과 권력의 정당하고 부당한 형태의 구분은 지식과 권력의 적절한 관계에 대한 단테의 생각의 밑바탕에 깔려있다. 그는 지식과 권력, 이 두 영역이 견고하게 맞물리는 데 제3의 현상인 지혜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향연(Convivio)』에서 단테는 윤리학이 더해진 자연적 지식의 총합으로서의 지혜를 찬양하였다. 실로 지혜란 한계의 인식과 다름없었다.

  오늘날 중세 시대는 지식의 추구가 권위 앞에서 꺾이고, 지식에 필요한 한계라는 개념이 지적인 탐구를 가로막으려는 본질적인 의도의 증거로 간주되는 시기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중세의 사상가들은 인간이 그 한계선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앎으로써만 그에게 허락된 방대한 양의 지식을 배우거나 가능한 만큼의 권력을 최대한 행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사실 중세 사상가들은 알 수 없는 것의 신비와 알 수 있는 것을 드러내는 힘 모두를 경험하기 위한 한 순간의 경우들을 생각해 보는 것이 인간에게 필요하다고 믿었다.


Pelikan, Jaroslav, "Master of Those Who Know: The Paradox of Knowledge and Power in Medieval Thought", Knowledge and power : the life of the mind and the conduct of government(Washington, D.C., 1988), pp. 13-15.


P.S. 이 글이 수록된 위의 책은  『지식과 권력』(김세준 옮김, 새물결, 1994)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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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sg. von Otto Brunner, Werner Conze und Reinhart Koselleck, Geschichtliche Grundbegriffe: Historisches Lexikon zur politisch-sozialen Sprache in Deutschland (Bände 1 - 8)Stuttgart: Klett-Cotta, 1972-1997.

*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인데, 여기서의 강조점은 '독일'(Deutschland)에 있다는 것이다.


번역서명: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총 119개 항목 중 10개 항목을 번역하여 각 권으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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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 Mellon Lectures in the Fine Arts (A. W. 멜런 미술 강연)

미국의 내셔널 갤러리를 설립하고 소장품을 기증한 A. W. 멜런(1855~1937)을 기념하여 만든 강연. 1952년 이래로 매년 세계적인 석학들 가운데 한 명이 지명되어 미국 워싱턴 D.C.의 내셔널 갤러리에서 특정 주제에 대해 강연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출간함.


번역본 목록 (내가 아는 한에서, 발행연도는 신판 기준)

Jacques Maritain, 김태관 옮김, 『시와 미와 창조적 직관』(원제: Creative Intuition in Art and Poetry), 성바오로출판사, 1982. 제1회 강연(1952) 
Kenneth Clark, 이재호 옮김, 『누드의 미술사: 이상적인 형태에 대한 연구』(원제: Nude : A Study in Ideal Form), 열화당, 2002. 제2회 강연(1953)

Herbert Read, 이희숙 옮김, 『조각이란 무엇인가』(원제: Art of Sculpture), 열화당, 2001. 제3회 강연(1954)

Ernst Gombrich, 차미례 옮김, 『예술과 환영: 회화적 재현의 심리학적 연구』(원제: Art and Illusion: A Study in the Psychology of Pictorial Representation), 열화당, 2001. 제5회 강연(1956)

Andre Grabar, 박성은 옮김, 『기독교 도상학의 이해』(원제: Christian Iconography: A Study of Its Origins(번역본은 이 책의 증보판인 프랑스어판을 옮긴 것)),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7. 제10회 강연(1961)

Isaiah Berlin, 강유원·나현영옮김, 『낭만주의의 뿌리: 서구 세계를 바꾼 사상 혁명』(원제: The Roots of Romanticism), 이제이북스, 2005. 제14회 강연(1965)

Mario Praz, 임철규 옮김, 『문학과 미술의 대화: 기억의 여신』(원제: Mnemosyne: The Parallel Between Literature and the Visual Arts), 연세대학교출판부, 1986. 제16회 강연(1967)

Arthur Danto, 이성훈·김광우 옮김, 『예술의 종말 이후: 컨템퍼러리 미술과 역사의 울타리』(원제: After the End of Art), 미술문화, 2004. 제44회 강연(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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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히너 문학전집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클래식 1
게오르그 뷔히너 지음, 임호일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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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통의 죽음>에서 `국민공회(der Nationalkonvent)`를 `국민의회`로 옮긴 것은 치명적인 오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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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와 서구 - 에덴에서 제국으로
이종찬 지음 / 새물결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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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2장과 3장에 나타난 주장과 논거에서 드러나는 몇 가지 문제들을 언급하고자 한다. 저자는 서구적 시각에서 형성된 '열대성'을 이 책의 주요 개념으로 삼으면서, 2장에서 "식물지리학적 방법론에 입각한 열대의 인식"을 다루며, 3장에서 "낭만주의적 인식을 통한 열대성 창안"을 거론한다. 상당한 인용에서 볼 수 있듯이 저자가 이 책에 들인 공은 컸음을 알 수 있지만, 결과는 그에 미치지 못하며 여러 문제들을 안고 있다. 전체적으로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채 특별히 관계 없거나 무용한 인용을 과시적으로 집어넣어 글의 흐름을 스스로 방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장에 경도되어 인용문을 본래의 맥락과 달리 사용하는 경우가 있으며, 때로는 사실과 다른 서술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이 점을 경계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열대성의 개념적 근원을 다루면서 유럽의 '나무 숭배'와 '식물적 상상력'에 사로 잡힌 저자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다른 맥락의 진술을 견강부회하거나 잘못된 논거를 사용하고 있다. 먼저 아래의 서술을 들 수 있다.


로랭은 <모세와 타오르는 덤불숲의 풍경>에서 떡갈나무를 통해 다윗과 모세를, 버드나무를 통해 야곱과 라반 등을 묘사하고 있다. 유럽의 여행자들은 로랭이 죽은 지 거의 한 세기가 다 되었을 때에 로랭이 떡갈나무와 버드나무에 의미를 부여한 방식대로 자신이 본 풍경들을 판단하기 시작했다. (88쪽)


위 문장에서 저자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인용하고 있다(붉은 글씨). 하지만 인용한 곰브리치의 진술은 저자가 주장하는 '나무 숭배'와는 하등 관련이 없다. 곰브리치는 17세기 이후의 유럽인들이 로랭의 그림을 통해 '그림같은'(picturesque) 풍경을 발견하고 이를 영국의 스타우어헤드 정원처럼 현실에 재구성했다는 뜻으로 서술했다.


유럽인의 '식물적 상상력'에 경도된 저자는 다음의 서술에서 잘못된 논거를 제시한다.


괴테의 식물형태학은 18세기 후반 독일 낭만주의의 사상적 맥락에서 형성되었다. 계몽주의에 대한 최초의 반격은 독일에서 시작되었다. 독일 낭만주의는 식물에 관한 기독교적 의미를 갖고 있는 중세의 시에 기원을 두고 있다. 여기서 식물이란 바로 그리스도의 피로부터 피어났다고 알려진 수난초(Passionsblume)이다. 독일 낭만주의는 확실히 1760년대에서 1830년대 사이에 소위 '질풍노도'를 주도하였던 하만, 슐레겔 형제, 실러, 노발리스, 셸링, 헤르더, 레싱, 괴테 등에 의해 확실하게 뿌리를 내렸다. (103-104쪽)


매끄럽지 못한 인용문의 나열 속에서 저자는 '수난초'와 관련하여 하이네의 『낭만파』에서 이를 인용하고 있다(붉은 글씨). 저자는 독일 낭만주의가 "식물에 관한 기독교적 의미를 갖고 있는 중세의 시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정작 하이네는 낭만파』에서 1830년대 가톨릭에 기반한 반동적 이데올로기로 고착화된 독일 낭만주의를 비판하면서 이를 중세문학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피에서 싹튼 수난의 꽃"이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비유까지 동원하여 열대에 대한 '식물적 상상력'이라는 주장의 사실적인 근거로 왜곡하며 "수난초에 대한 독일 중세의 시에 기원을 두고 있는 낭만주의"를 재차 강조하고 있다(132쪽).


한편 저자는 괴테를 일관되게 낭만주의자로 서술하면서 그가 "셸링의 형태적 미학을 받아들여 원형 식물에 몰입했다(104쪽)"고 진술하는데, 저자가 밝혔듯이 "원형 식물"은 셸링이 자연철학과 예술철학에 대한 저작을 쓰기 훨씬 이전에(1787년) 이미 괴테에게 나타나는 개념이다. 오히려 괴테는 스피노자가 말한 세 가지 인식(감각지, 이성지, 직관지) 가운데 직관지(Scientia intuitiva, 에티카 제2부, 정리40)에서 원형적 사고를 발전시켰다. 구체적이며 직관적인 자연관찰을 통해 원형상(Urphänomen)을 발견하고자 한 괴테의 면모는, 정신과 자연의 일체성을 주장하는 낭만주의자와는 구분된다. 따라서 괴테를 낭만주의 박물학자로 일관시키면서 "낭만주의 사상가들의 이런 식물적 상상력은 문학적, 미술적 상상력으로 연결되어 확대되어 갔다(104쪽)"고 한 주장은 공허하게 들린다.


P.S. 참고로 72쪽에 나오는 칸트의 "물리지리학"이라는 용어는 "자연지리학"(physische Geographie)으로 고쳐 써야 한다. "칸트에 따르면 지식을 정리할 때에는 논리적 분류와 자연적 분류 가운데 어느 한쪽의 방법이 취해진다. 개념들에 의한 분류가 논리적 분류이며, 시간과 공간에 의한 분류가 자연적 분류이다. … 후자의 분류에 의해서 자연의 자리적 기술이 얻어진다." (『칸트사전』, <자연지리학>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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