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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세트 - 전3권
스티븐 킹 지음, 정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8월
평점 :
아주 옛날 해적판인지 뭔지 모를 , 하지만 첫만남이라 나는 아직도 '그것It'을 '신들린도시'로 먼저 기억한다. 나는 아직까지도 스티븐 킹의 '신들린 도시(It)'을 집어들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리고 방에서 1권을 읽은 후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순간도. 총 4권짜리를 왜 나는 1권만 빌려왔던가. 4권까지 읽어나가던 그 쏜살같던 순간이 아직도 뚜렷하다.
가슴 뛰게하는 내 아이들. 정말 그 소년들의 생각을 써내려간 문장 하나하나에 감탄하고, 가슴 아파하고, 그 상황을 나는 마치 거북이가 된 듯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스티븐 킹의 '잇It'은 정말 포근하면서도 냉혹한 눈 같은 소설이다. 아름답고, 가차없다.
이야기 형식은 다소 복잡하다. 과거와 현재가 마치 아이들의 자전거가 서로 뒷서거니 앞서거니 하듯이 보여주기 때문에. 하지만 물론 전환되는 장면이나 이야기들을 따라가다보면.. 데리의 과거와 현재를 같이 산책하는 듯한 느낌으로 편하게 따라갈 수 있다.
그래서 원래 있던 미니시리즈 (1990년도 제작된)는 별 기대 안하고 봤더란다. 스티븐 킹의 소설 영화화 된 것 꽤 구해봤는데, 그냥 아, 이렇게 그려냈구나 하는 재미와 팬심으로 보는 정도라. 그래서 사실 이번 영화도 살짝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페니와이즈가 등장한 순간부터. 순진해보여야 할 토끼이빨이 그렇게 괴기스러울 수 있을까. 첫 등장한 후 중간에 침을 뚝뚝 떨어뜨리는 데, 그게 바보스러운 게 아니라 굶주린 짐승의 행동 같아서 오싹했다. 그 어깨 떨림이라니. 아. 이상할 정도로 번득이면서 깜빡이지 않는 눈동자. 친숙하면서도 바보처럼 웃는 것 같은데도 쉽사리 손을 뻗을 수 없는 이질감. 페니와이즈는 완벽했다.
그리고.. 다른 나의 아이들은? 아이들이 궁금했다. 나는 내 소설 속 아이들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아아. 베벌리. 아. 화장실 안에 앉아있는 너를 본 순간부터 사랑에 빠졌어. 나의 완벽한 스탠리. 작지만 당돌한 에디. ..리치, 삡삡. 빌. 좀 더 힘을 내. 아. 그리고.. 진짜 궁금했던 나의 벤 한스컴.
용감한 베벌리. 어른스러운 빌. 외로운 벤의 사랑에 빠진 눈동자. 완벽한 스탠리의 약함, 에디의 슬픔, 견딜 수 없는 지루함에 반발하지만 겁쟁이 리처드. 아이들은 겁을 내고 무섭지만.. 용감하게 나간다. 스스로를 위해, 자기의 일상을 위해.
성장물이라고 봐도 되고. 그런 와중에 페니와이즈 진짜 열일한다.. 진짜 기괴하고. 오는 방식이나 나타나는 방식이 진짜 무섭다. 깜짝깜짝 놀랐어.
그렇지만 또 다른 공포 요소인, 베벌리와 에디 외에 가족 이야기가 잘 나오지 않아서 아쉽다. 에디 엄마의 과보호, 베벌리 아빠의 무서움. 그리고 빌 가족의 단절감. 아이들에게 진짜 공포란 그런 게 아닐까. 가장 안전해야 할 가족 간에 뭔가 삐그덕거리는 요소가 원래 소설에서는 잘 보인다. 베벌리의 아빠는 그냥 하수다. 진짜 괴물이니까. 하지만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의외로 아이들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는 그런 가족의 설정은 읽어나가다보면 뭔가 오싹하게 느껴진다. 그래, 마치 데리처럼 말이다. 겉으로는 온화한 중소도시 같지만 혐오와 범죄로 얼룩진 도시 데리. 그리고 아이들을 잘 먹이고 키우는 듯 하지만 방치하는 빌의 어머니와 아버지, 벤 한스컴의 어머니, 에디의 어머니, ..그 이야기들이 소설에서는 좀 더 잘 보여주고 있어서 한켠으로는 가슴이 아프게 읽어내리게 된다.
또 아쉬운 것은 마이크의 역할이다. 아, 마이크는 내가 일부러 뺀 게 아니라.. 그 역할이 아쉬워서 그렇다. 시대가 좀 많이 달라져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마이크는 동네의 유일한 흑인으로 나중에 동네에서 유일하게 남아서 '그것'의 돌아오는 걸 감지하는 감시자의 역할을 한다. 실제로 마을 역사를 더 꿰고 있는 감시자 였는데, 그걸 벤 한스컴에게 넘겼더라? 그러면서 마이크가 애매하게 하는 일이 없어진 것 같아서 아쉽다. 2부에서는 이걸 어떻게 풀어내려고.. 싶어짐.
베벌리의 역할에 대해서도. 유일한 여자 아이니까? 용감한 베벌리 이고 아이들이 모두 사랑에 빠졌으니까? 그렇지만 2시간 되는 영화 내내 가장 용감했단 나의 베벌리가 막판에 확 끌려간다는 설정은 조금 서투르고 너무 쉬워버린 설정이 아닐까 싶었다.
뭐, 영화에서는 시간 관계상 아무래도 힘들었겠지. 그렇지만 공포 요소로 보기에 영화는 잘 정리되어 있다. 페니와이즈의 등장만 생각해도 오싹할 정도니까. 그 기괴한 눈과 풍선. 아이들이 당하면서 두려워하는 것도 너무나 당연할 정도로. 그 와중에 헨리 진짜 비겁한 겁쟁이로 잘 나오셨고요.. 다시 말하지만 베벌리.. 이제는 언니가 된 언니가 진짜 사랑한다. 너는 진짜 소설 속에서 빠져나온 것 같고.. 그보다 더 당당하고.. 더 예쁘구나. 아. 진짜 스티븐 킹 원작에 극대한 팬심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크게 만족했다.
성인이 된 이후를 챕터 2로 2010년대를 배경으로 할 예정인데, 이게 소설에서는 꽤 재미나다. 소설에서는 1950년대에서 1980년대, 한창 개발된 이후 돌아온 동창생들의 모임이라서 은근 정감가는 설정이기도 하고. 영화 2부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