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이 신작을 냈단다. 그때만 해도 그래, 진짜 이 작가는 쓰기 위해 사는 구나 싶었다. 이번 작품은 초현실적인 공포를 추구했단다. 응? 늘 쓰는 거잖아. 킹 책 몇 권 읽다보면 저 먼 과거에 캐리로 시작하던 무렵부터, 늘 초현실적이었잖아? 뭔 새삼스럽게.
책을 다 읽은 후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심슨 가족'의 시즌 12에 에피소드 3화. 거기에서 킹이 "나 요새 벤자민 프랭클린의 전기를 쓰고 있어요. 그 사람은 전기를 발명했지요..." 하면서 짤막하게 등장한다. 아, 다 읽고 나니 퍼뜩 그 생각이 나면서 재미있어 죽겠는 거다. 이 사람은 옛날 (해당 에피소드는 2000년 11월 12일 방영되었단다)부터 뭔가 이걸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지옥의 문을 두들기는 이야기를.
애니메이션 해당 일화는 꽤 좋아해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데, 소설 결과물은 정말 의외였다. 이 소설은 좀 새삼스럽다. 초능력 소녀 캐리에게 독특한 애정을 독자에게 던져주었던 스티븐 킹 소설 중에서도, 이렇게 으시시한 소설이 있었나 싶게. 건조하면서도 차갑게, 그리고 으시시하게.
그러면서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게 궁금한데? 했던 생각을 떠올리게 하면서 책은, 페이지를 놓을 수가 없게 만든다. 아마 소설책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떠올릴 만한 질문. 주인공과 악역의 만남은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우연일까 운명일까, 그리고 ... 사후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째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던 한 순간 인간에게 비극이 던져지는 것일까. 신은 왜 그래?
스티븐 킹은 그런 질문에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풀어보인다.
[리바이벨]은 화자이자 주인공인 제이미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의 한 ... 만남에서 시작한다. 이걸 뭐라고 써야 할까. 여기에서 질문이 하나 둘씩 생긴다.
1. 나와 누군가의 어떤 만남은, 운명일까 우연일까.
"그런데 우리의 인생을 집필하는 작가는 누구일까? 운명일까 우연일까? ...운명이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 빛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헛된 망상이 된다. (p.12)"
운명 혹은 우연. 그리고 킹은 늘 하던 대로, 우연스러운 작은 만남에서 피어나는 선과 악의 흐름길에 대해 이야기를 해나간다. 어째서인지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에는 늘 웃음이 피어나지 않는다. 선량해보이는 젊은 목사에게 시련이 닥쳐온다. 그리고 누구라도 해보았음직한 그 뻔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2. "이유가 뭡니까? (p.102)"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어느 날이라도 당장 쓰러질 수 있는데 우리는 그걸 절대 모른다 (p.89)" 인 셈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전쟁이 나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악을 보노라면 신은 없거나, 악마랑 같이 인간을 농락하는 것 같다는 그 흔한 질문, 그리고 모두가 생각한 그 금기시된 질문을 킹은 풀어놓는다. 이유가 뭡니까?
여기까지 읽으면 그저 가슴 아픈 아버지의 비통한 외침으로만 들릴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사내에게 악마의 유혹이 오려나, 무슨 일이 벌어질지.. 스티븐 킹은 그 순간부터 이야기의 흐름을 완전히 휘어잡는다. 그가 '왜'냐고 묻는 순간 우리도 '왜 이 사내에게!'라고 같이 물어본 순간에. 아, 이 가여운 사내가.. 라고 생각한 순간에.
3. "나는 옛날 같았으면 우리가 걷는 길은 무작위로 선택하는 거라고 했을 것이다. ... 세상에는 어떤 기운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선택해야 한다. 늘 생각해야 한다. 이 책 후반부에 집회에 모인 사람들처럼 되어서는 안된다. "주기적으로 컴퓨터를 통해 친구들과 연락하고 그날의 뉴스를 챙기는 사람들, 기상 위성과 간 이식 수술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 ... 그런데 산타와 이빨요정이 잔혹한 사실주의처럼 여겨질만한 이야기에 넘어가고 있었다.(p.317)" 자신이 무엇을 다루는지도 모른 채, 그저 자신의 신세에 분노하고 교활하게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속아넘어가서는 안된다. 제이미처럼 물어봐야 하는 것이다. "어떤 걸 다루는지 알고 계신 건가요?(p.372)"라고. 제이콥스의 말마따나 "진실을 알 자격이 없고 그래도 상관없어, 왜냐하면 그들은 진실을 원하지 않으니까(p.376)." 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래, 개인은 그렇게 살고 선택해야 한다고 치자. 어려움이 있어도 "요람에서 무덤까지 터벅터벅 걸어가는 게 인생이 아니라는 걸 (p.36) " 알도록 즐거움도 맛보면서, 기적도 맛보면서, 그리고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으니 때로는 거대한 기운에 압도당하면서. 그것이 운명인지 우연인지는 중요하지가 않은 것이다. 그 순간의 선택들이 있을 뿐이지.
그리고 그런 개개인들의 선택이 쌓이고 종국에는 역사가 되고 어떤 거대한 믿음의 줄기(신앙이라는)를 쌓은 것을 보며.. 사람의 '끝'에 있는 '죽음'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작가는 묻는다. 그래, 너는 그렇게 선택하고 열심히 살았어, 네 나름대로는. 하지만 어느 순간 뭔가 잘못되기도 하고, 네가 원치 않아도 죽기도 하고 그럴 거야.
누구나 가족을 잃는다. 가슴 아프겠지만 그게 현실이다. 자신이 가장 먼저 잃어버리게 되는 대상이 될 수도, 아니면 부모님의 호상을 치를 수도 있고. 하지만 스티븐 킹은 제이콥스에게 동정을 줄 만할 때 재빠르게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재빠르고 잔혹한 솜씨로 상대의 악을 보여준다.
마지막의 순간까지 제이콥스는 너무나 비열했다. 기다린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사후를 들여다보고, 그것으로 세상을 비웃으려 한 것. 자신의 마음을 선하게 갖는게 아니라 분노를 품고 살아가던 사내가, 세상에 사기를 치면서까지 벌이려던 자기 합리화의 길은 너무나 구역질이 나고 악한 것이었다. 뉴스에서 많이 봤기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수도 있지만...
스티븐 킹 소설 중에서도 '리바이벌'은 으시시한 쪽으로 손꼽을 만하다. 목사가 등장한 적도, 죽음을 다룬 적도 많았지만 이번만큼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를, 자신의 울분을 토하기 위해 사람들을 속여가면서, 오직 자신의 목적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너무나 악한 인간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다. 다 읽고 나서도 한참이나 제이미에 대해 생각하며.. 그의 말에 동감을 표한다. "운명일까 우연일까? ...운명이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 빛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헛된 망상이 된다. (p.12)"
리바이벌을 읽고 나서는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에는 어떤 기운이 있다." 그렇다면, 우연이라 할지라도 선택이 필요한 순간에는 선의 의지가 발휘되기를, 그저 바랄 수 밖에. 그리고 생각할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