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1>
근대 이후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기존의 생활양식에 다양한 변화를 초래하며, 미래 사회에 대한 유토피아적 기대와 함께 디스토피아적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변화는 지금까지의 인간 **삶의 질서를, 때로는 **부분적으로 때로는 전면적으로 **해체한다.
**그 변화가 급격할수록 기존의 질서는 근본적으로 해체되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와 마주한다.
12쪽
<서론 2>
제2장 「제4차 산업혁명과 함께 인간은 더 행복해질 것인가?」를 서술한 박찬국 교수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고 인간의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찰하면서 *제4차 산업혁명이 이떤 식으로 전개될 경우에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고찰한다.
박찬국 교수는 **진화론에 입각한 생물학주의에 반해서 **인간과 동물은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라고 본다.
또한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욕망이 단지 *생존 욕망과 *종족 번식 욕망이라고 보지 않는다.
***인간의 삶은 동물에서는 보기 힘든 *‘고독감‘과 *‘무력감‘ 그리고 *‘허무감‘이라는 부정적인 기분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규정되며,
이와 함께 ***인간은 고독감에서 벗어나려는 결합과 합일에의 욕망, **무력감에서 벗어나려는 초월과 창조에의 욕망, **허무감에서 벗어나려는 의미 체계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찬국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욕망들은 *이성적이면서도 건강한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지만 **많은 경우 비이성적이고 병적인방식으로 실현된다.
박찬국 교수는 인간에게 **특유한 욕망들을 실현하기 위해서 **근대가 추구해 온 길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첫째로 야스퍼스가 말하는 차축 시대에 건립된 **정신적 이념을 실현하는 길이 있다. 이러한 길은 인간 개개인의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서 인간에게 특유한 욕망들을 이성적이고 건강한 방식으로 실현하는 길이다.
둘째로 마르크스주의나 나치즘과 같은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인간 특유의 욕망들을 실현하는 길이 있다.
셋째로 과학기술을 통한 길이 있으며, 이러한 길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실현을 통한 길이 실패로 끝나면서 오늘날 크게 득세하고 있다.
박찬국 교수는 현대 기술 문명에서도 인간 특유의 욕망들은 많은 경우 **부정적인 방식으로 실현되고 있을 뿐 아니라,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아서 극히 심각한 위기를 낳는 방식으로 구현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박찬국 교수는 제4차 산업혁명이 디스토피아로 귀결되지 않고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 되려면, **과학기술은 우리에게 존재하는 지배에의 의지와 탐욕을 실현하는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 특유의 욕망들을 이성적이면서도 건강하게 실현하는 인간의 노력을 **보조하는 방향에서 사용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15-6쪽
<서문 3>
손화철 교수는 최근의 기술 발전이 가지는 중요한 함의를 강조한다. 특히 **인간만이 수행할 수 있었던 *배움과 *판단의 능력을 모사하는 인공지능은 지금까지의 기술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손화철 교수는 인공지능이 보여주는 ***‘자율적 특성‘이 자칫 기술의 발전과 그 능력을 자연의 변화와 작용처럼 여기게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손화철 교수에 따르면,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여러 논의들은 미래에 도래할 기술적혁신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변화에 잘 적응할 방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에 반해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는 **기술을 철저히 인간의 목표에 복무하는 **도구로만 파악하고 있다고 손화철 교수는 진단한다.
기술력의 증대와 적절한 분배를 통해 환경적 위험뿐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손화철 교수가 볼 때, 이러한 접근은 제4차 산업혁명의 여파로 많은이들이 우려하는 대량 실업의 문제나 기술 발전에 따른 근본적인변화들을 담아내지 못한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손화철 교수는 기술을 자연적 현상처럼 보려 하거나 단순한 도구로만 취급하는 접근법을 극복하기위하여 **‘호모 파베르의 역설‘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인간이 그 자연적 본성에 따라 **인공물을 만들지만, 동시에 그 인공물에 의해 **본성적 변화를 경험한다는 역설에 초점을 맞춘다.
손화철 교수는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이렇게 파악하면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가 좀 더 인간 중심적으로 바뀌어 제4차 산업혁명을 대처하기보다는 견인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지속가능발전목표를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손화철 교수는 새로운 기술 이해에 기반한 과학기술 거버넌스가 **‘목적이 이끄는 기술 발전‘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주어진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통해 도출된 좋은 사회를 이루는 도구로 보고자 하는 것이다.
좋은 사회에 대한 합의는 **상시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이어야 하고 기술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계속 관찰, 관리, 견인되어야 한다.
16-8쪽
<서론 4>
정원섭은 오늘날 널리 수용되고 있는 사회복지가 서구에서 등장한 역사적 배경을 살핀 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국민소득 제도가 정의의 관점에서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 고찰한다.
정원섭에 따르면, **공리주의나 공동체주의의 경우 복지의 관점에서 국민 기본소득 제도를 정당화할 수 있는 이론적 논거들을 제시할 수 있지만, 이 양자의 경우 정의론으로서는 치명적 약점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우파 자유지상주의는 복지 개념에 대해 적대적이라 점에서 기본소득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할 수 없으며, 사회적 평등을 강조하는 **롤스와 같은 현대 자유주의자는, *기본소득 옹호론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복지주의를 배격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에 대하여 명백히 반대한다는 것이다.
정원섭에 따르면, 기본소득을 옹호하는 강력한 입장인 **좌파 자유지상주의자들의 경우 ‘천연자원에 대한 공동재산권이라는 *로크의 고전적자유주의를 변용하여 그 정당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지만, 이는 역사적 환원주의의 오류의 위험을 안고 있다.
‘고용 없는 성장‘이 겨화되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사회적 안전망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 기본소득을 옹호하기위한 일환으로 정원섭은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생존권이라는 개념을 *사회적 기여와 상관없이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는 수준으로 적극적으로 확장하여 **사회적 권리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둘째, 지금까지 대부분의 정의론자들이 전제한 정의의 두 여건, **재화의 적정 부족과 제한된 이기심이라는 조건이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도 여전히 의미 있는 조건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하자는 것이다.
정원섭은 정의의 전제조건에 대한 성찰을 통해 생존권을 사회적 권리로 확장할 경우, ‘노동하는 인간‘이라는 지금까지의 **인간관에 근본적인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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