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 페스트
중세의 전성기는 흑사병이 발병하면서 마감된다. 당시 페스트가 확산될 수밖에 없었던 중대한 전제 조건은 이미 30년 전에 조성되었다. 6세기처럼 이번에도 날씨가 주요한 요인이었다.
이 끔찍한 전염병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 공격했고, 전체 인구 대비 사망자 비율이 지난 2000년간 있었던 그 어떤 자연재해나 인재, 역병들보다 높았다(두 차례의 세계대전도 포함.
5년 만에 유럽 인구의 4분의 1내지 3분의 1이 이 질병으로 죽음을 밎이했고(사망자의 수나 비율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시신들 대부분은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불에 태워지거나 구덩이에 한꺼번에 파묻혔다.
페스트는 상인들, 난민들 그리고 여행객과 여행객들의 짐가방을 통해 전파되었다. 당시 직물 교역은 경제를 뒷받침하는 든든한 기둥 중 하나였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모직물은 벼룩이 서식하기에 매우 좋은 보금자리였다.
페스트로 인한 귀족의 사망률은 27퍼센트였떤 것에 비해 시골 주민이나 막노동꾼의 사망률은 지역에 따라 45퍼센트에서 60퍼센트까지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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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이 급속도로 확산되자 사람들은 앞다투어 **희생양 찾기에 나섰고, 그런가 하면 세상이 저지를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이른바 ‘고행자flagellants‘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중세는 종교의 힘이 강해 페스트가 진노한 신이 세상에 내리는 *벌이라고 믿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신을 *분노하게 만든 이들을 *색축하여 벌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도 어김없이 고개를 들었다. 유럽 곳곳에 퍼져 있던 **유대인 공동체는 늘 그렇듯이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주범으로 지목되곤 했다.
전 유럽을 뒤흔든 페스트는 유럽인의 의식 속에 깊이 아로새겨졌다. 그로부터 몇 세기가 지난 뒤에도 사람들은 페스트라는 말만 들으면 *묵시록적 종말, 즉 세상의 멸망을 떠올리곤 했다. 1498년, 독일 화가 알브레힡 뒤러의 목판화 <묵시록의 네 기사>
붉은 말, 커다란 검 - 전쟁 검은 말, 저울 - 기근 기운이 없어 보이는 말 - 사망 흰 말, 활 - 질병 (트로이아 전쟁 때 아폴론이 그리스 군대에 역병 퍼뜨림)
**페스트는 수백 년 동안 유럽인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특히 17세기 들어 다시 페스트가 유행했다.
온몸을 가리는 옷을 입고 왕진을 하던 의사들은 역병의 치료법은 고사하고 원인조차 밝혀내지 못했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이 거주하는 주택과 동물을 키우는 축사를 구분하기 시작하고 계몽주의 시절을 맞아 사회 일부 계층에서 위생 관념이 생겨나면서 비로서 페스트의 파도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이후 *1722년 마르세유를 마지막으로 페스트는 유럽 대륙에서 잠잠해졌다.
역사학자들은 1347년부터 1352년까지 유럽 전체 인구 중 30퍼센트가 흑사병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고, 그 수는 대략 1800만 명에 달한다고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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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흑사병은 분명 엄청난 인명피해를 불러왔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사회적, 경제적 상황이 호전되는 이점을 누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하여 *모든 분야에서 **노동력이 부족해졌던 것이다.
이에 따라 살아남은 *수공업자나 *농부들은 그 이전이라면 상상도하지 못할 만큼 *유리한 위치에서 *거래처나 *지주들과 *협상할 수 있게 되었다. 서유럽과 북유럽을 비롯해 유럽 내 수많은 지역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승했고 *농노를 구하기 힘들어져 노예를 부릴 수있는 기회는 더 이상 주어지지 않았다.
생필품 가격도 일시적으로 상승했으나 이내 하락했다. 1347년 이전에 비해 인구가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에 *식량 부족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중세 시대의 인구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계층은 *농민이었는데, *할당 받은 토지의 면적이 너무 작아서 자신의 사망 후 *장자長子 에게만 겨우 물려줄 수 있을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1450년 무렵에는 그든 자녀에게 나눠줄 수 있을 정도로 할당 받는 토지의 면적이 넓어졌다. 역사상 처음으로 *딸들에게도 땅을 물려줄 수 있을 정도였다.
흑사병이라는 대재앙이 이러한 긍정적 효과를 불러온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역병이 번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럽 대부분 지역은기근과 빈곤에 시달렸다. 몇몇 지역은 인구 과밀로 매우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사회가 발전할 리 만무했다.
하지만 1352년 이후 인구수가 급감하면서 살아남은 이들은 이제 제한된 자원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수확량이 적은 토지들은 *목초지로 전환시켰고, **기술 혁신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기시작했으며, *방앗간의 수도 늘어났다.
당시 사람들은 이제 곧 다가올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한 세기 내내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었지만 유럽은 결국 페스트라는 납골당에서 벗어났고, 비온 뒤에 해가 비치듯 역병을 딛고 국데 일어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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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독
사람들은 새로이 등장한 그 질병을 악성 천연두malicious pox‘ 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 고약한 질병은 유럽 대륙 내에서 급속도로 전파되었다는 점에서 흑사병과도 닮은 점이 많았다.
훗날 *매독syphilis이라고 불리게 된 이 질병은 당시 교통수단이 이동하는 것과 동일한 속도로, 나아가 당시 진군하는 군대의 속도와 유사한 속도로 퍼졌다. 이번 질병 전파의 주역은 샤를 8세의 군대였다.
**프랑스에서는 해당 질병을 ‘나폴리 질병‘이라 불렀다. 프랑스인들이 보기에는 나폴리가 매독의 발상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탈리아나 독일어권국가, 나아가 영국에서는 그 질병을 *‘프랑스 질병‘이라 불렀다. 그런가 하면 네덜란드에서는 *‘스페인 질병‘이라 불렀고, 폴란드에서는 *‘독일 질병‘, 러시아에서는 *‘폴란드 질병‘이라 불렀다.
**그 이름들을 보면 매독의 진행 경로를 얼추 짐작할 수 있다. 나아가 문제가 발생하면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국가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던 당시의 분위기도 엿볼 수 있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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