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


/ 대답없는 우주: 현대 미술


‘현대‘라고 우리가 이름 붙인 시기는 그 시간을 살고 있는 당사자들을 소외시키고 있다. **현대는 인류가 구성해온 **전통으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렸다.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표현주의, 추상예술, 무조음악, 설치미술, 반역극, 반소설, 부조리극, 모더니즘, 언어철학 등의 혁명적이고 낯선 관념들과 더불어 현대는 시작된다.

이런 측면으로 보자면 극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현대인으로서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고 현대인이 될 가능성도 없다. 현대를 물들이고 있는 새로운 사유 양식과 과학 그리고 세계관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낯설기 때문이다.

**현대를 가장 크게 특징짓는 무의식적은 정조는 **무의미와 절망이다. 현대인들이 처한 이 절망적 상황은 세계관으로써의 실존주의에 가장 잘 나타난다.

*1930년대에 실존주의가 서구사회를 물들인 이래 거기로부터 자유로운 사유 양식이나 세계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현대 예술은 19세기 말에 이미 세잔에게서 출발했지만 결국 모든 경향은 실존주의에서 종합되고 유출되었다. - P293

자연주의 양식에 대한 회의


중세의 한 신학자가 "신은 인간(예수)이 되었다는 한 번의 모욕으로 족하다. 이제 눈에 보이는 신의 상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의 말을 믿도록 하자"라고 말했을 때 그의 마음에 있었던 것은 ‘인간의 감각 인식에 포착되는 모든 신의 형상은 모두 우상이다‘였다.

개신교가 가는 곳에 문예는 소멸하고 비잔틴은 무시무시한 우상파괴iconoclasm운동을 벌인다. 이때 자연주의적 다채로움에는 종지부가 찍히고 표현 양식은 추상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이것은 고대인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우주 전체를 창조하고 운행을 책임지며 율법을 내려줌으로써 우주 속에서의 위치와 의무와 권리를 말해주고 상징을 통하여 천상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의 유비를 가능하게 해준 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라"라고 호소할 수 있게 해주는 신, 이러한 신의 관념은 아직도 아득한 미래에 속하는 일이었다.

- P294

현대 예술 역시 **감각에 대한 혐오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에서 신석기시대의 세계관을 공유한다. 그뿐 아니라 비잔틴의 우상파괴, 셈족의 동물 묘사의 금지 등의 강령 또한 공유하고 있다.

모든 예술, 문명, 학문에 대해 격력한 원학을 토로하는 트리스탄 차라의 분노에는 ‘우상숭배에 대한 분노‘라는 모세의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이 세계가 우리의 감각에 대하여 비밀의 문을 열어주면 삶은 주변과 일체가 되고 그의 생명이 이 가운데에서 만족을 얻는다면 예술은 생명 형태를 본떠 감적이입적이 된다.

우리의 감각이 당연히 외부 실체를 포착하고 우리의 지성이 지상적 삶을 인간적 양식으로 구축해 나간다면 예술 양식은 당연히 인간화된 모습을 지니며 자연주의적 양식이 도입된다. 지상은 온갖 생명의 약동으로 가득 차고 인간은 자신의 모든 역량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어떤 계기로 인해 우리가 삶의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요소가 한탄 **무의미하고 화려한 삶의 즐거움도 결국은 *백골을 예정하고 있다는 깨달음이 우리의 마음에 스며들어 **존재의 초월적 의미를 구하게 될 때, **예술양식은 방향을 선회하고 되돌아서서 과거의 철없는 자연주의와 그 향락을 저주자하게 된다.

이제 *‘소외‘라는 문제가 전면에 떠오르고 *실존적 주제가 동시대의 철학을 물들인다. 예술은 자연주의적 양식을 배쳑하며 그 자리는 **기하하적 추상이 차지한다.

- P295

/ 의미를 찾는 인간과 침묵하는 세계


실존주의는 인간 존재가 부조리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세계와 그 안에 속한 나의 존재 의미를 끊임없이 요구하지만 **세계는 침묵한다.

인간은 의미 있는 질서 속에 자기 자신을 가져다놓고자 노력하지만 그러한 의미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 부조리이다. **부조리는 *의미에 대한 인간의 요구와 *침묵하는 세계와의 대립이다.

**현대 예쑬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한쪽에 침묵하는 세계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의미를 원하는 인간이 있다. 인간 조건의 이러한 축면에 부딪힌 예술가들은 결국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게 된다.

하나는 침묵하는 세계를 무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미를 요구하는 스스로의 지성을 잠재우는 것이다. 현대 예술의 경향이 아무리 다양하고 그 실험적 시도가 제아무리 복잡하다 해도, 만약 그것이 의미 있는 현대 예술이라면 이 두 가지 중 하나의 경향에 속하게 마련이다.

삶의 무의미에 대한 인식을 출발점으로 하는 *실존주의는 우주와 삶의 의미에 대한 *전통적인 해명의 붕괴를 한 축으로 하고, *증대된 자의식을 지닌 새로운 인간의 출현을 다른 한 축으로 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우리와 대립하는 타자로부터 시선을 거두어 자기 자신으로 탈출할 수만 있다면, 대립은 방법론적으로 해소되며 대립의 긴장은 *유희로 바뀐다.

이것은 타자와의 일치를 포기하고 자기 충족을 택하는 길이다. 그러나 이 경우 타자를 대신하는 것은 *진정한 실재라기보다는 **가공적 세계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P296

이러한 대립의 극복은 두 가지 결과를 낳는다. 하나는 주변 모든 것의 **‘탈가치화‘이고 다른 하나는 **흥미의 추구‘이다.

말한 바와 같이 부조리의 해소는 자아를 지우거나 세계를 지워야만 가능하다. **세계를 지운 사람들은 **신의 자리에 스스로를 가져다놓은 셈이다. 이들은 세계를 자신의 인식 대상 아래에 놓고 모든 것을 평가절하한다. 스스로 신이 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와 창조의 의미는 스스로가 부여하는 것이 된다.

물론 행위와 창조를 위한 기회는 세계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존중되는 것은 고유의 가치 때문이 아니라 제공되는 *기회 때문이다. *연속적으로 교체되는 가공의 세계에 자기 자신을 몰아넣음으로써 *부조리를 해소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을 향안 현대 예술의 장난스러운 시도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의미와 무의미가 뒤섞여 어느 것이 진정한 의미인지 *혼란스러울 때, 아니면 모든 것이 *무차별적인 무의미성을 가질 때, *삶의 무의미와 덧없음을 *잊게 해주는 *새롭게 흥미로운 것들은 언제라도 환영받는다.
- P297

이러한 식으로 등장한 팅겔리의 자동소멸기계나 self-destroying machine나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기타 설치 미술가들의 장난스럽고도 야유적인 예술은 ***절망을 배경으로 한 유희이다

*마르셀 뒤샹의 작업도 여기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변기를 전시하거나 <모나리자>에 콧수염을 그려 넣은 등 언뜻 보아 경박하고 불손하기까지 한 일련의 작업들은, 사실 **전통적으로 의미 있다고 알려진 것에 대한 *반박이며 조롱이다.

또 사물을 일상적인 맥락에서 이탈시키는 신사실주의적 시도와 더불어 기발하고 흥미로운 충격 효과로부터 언더지는 유미주의적 예술 이념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키르케고르가 소개하는 이러한 유미주의적 경향은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곧장 *추상 형식주의 abstract formalism로 연결된다. 흥미로운 것들의 계기를 현실적인 삶 속에서 찾는다고 할 때 그것은 전적인 자유가 되지 못한다.

예술은 그만큼 현실에 묶인 것이다. 어떤 예술가들은 이러한 상황을 **‘예술의 비인간화‘를 통하여 극복해 나가기로 작정한다.

세잔으로부터 시작하여 피카소, 몬드리안, 말레비치에 이르는 미술가들은 이 경향에 서 있따. 즉 예술의 인간적이고 환각적이며 외재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순수 추상, 순수 관념의 내내적 세계를 건설하려는 것이다.

예술로부터 재현적인 요소를 제거해 나가는 와중에 결국 추상 형식주의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 P299

/ 절망과 무능르로부터 내면으로의 도피


추상 형식주의의 예술들은 예술의 내면화를 보여준다. 관념은 우리 주관의 내부에 존재한다. 모든 감각적, 재현적 인식 수단을 폐기하고 의식을 우리 내면에 집중하면 불현듯 어떤 물자체-검증도 불가능하고 객관적 전달의 가능성도 없는 하나의 환각-의 세계가 발견된다.

이 관념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실재이며 동시에 *객관적인 비실재이고 때로은 불가능한 실재라는 점에서 감각과는 다르다.

우리가 어떤 기하하적 도형을 생각할 경우 그것은 하나의 사유 행위이기는 하나 머릿속에 떠오른 도형은 단지 우리 내면에서 사고되는 것이므로 비실재이다. 그것들은 감각에 의한 세계와는 구별되며 정신의 심연으로부터 불가사의하게 대두되는 물자체의 세계 출신이다.

역사상 예술에 내재하는 모든 이념을 이해하고 있고 예술 기법에 있어 가장 뛰어난 예술가 중 한 명이라 할 만한 피카소도 표현 대상을 유클리드적 도형으로 해체하였다가 다시 조립하기를 반복한다.

그에게 있어 이러한 기하학적 표면들은 대상을 재현하는 양식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주관으로 가공의 세계를 구성해 나가는 종류의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적 삶의 양식을 전도시킨 것으로 체험으로부터 시작하여 관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주관으로부터 관념을 추출해내는 것, 즉 우리의 내면으로부터 주관적 표현을 취해 이것을 순화시키고 표현해낸 것이다.

이 경우 우리는 모든 체험, 모든 인간적 계기로부터 자유롭게 되고 인습을 벗어던질 수 있으며 관념의 인간적 모습을 극복하게 된다. 물론 이것도 실재는 아니다. 하나의 기획이다.

그러나 정신활동의 이러한 측면은 *자기 인식적 기만이다. 우리는 더 이상 *세계에서 관념을 추출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단순한 모형을 실재화하고 주관을 객관화하며 내재적인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 P300

추상 형식주의는 어떤 재현적 요소도 지니지 않는 채 오로지 **예술가의 마음속에서 고안된 세계이다. 예술가들은 더 이상 외부 세계에 얽매이지 않는다. *예술가는 스스로가 **세계의 창조자이며 세계를 마음대로 다루는 군주가 된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세계를 스스로부터 유출시키는 **신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다시 한 번 플라톤적 관념의 세계로 되돌아갔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커다란 오해이다.

플라톤의 추상은 그에게 있어 진정한 실재였지만 **현대 예술가들에게 있어 추상은 단순히 하나의 **내재적 관념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현대 예술의 근거는 **‘버림받았다‘는 실존적 문제로부터 비롯되는 **실향의 감정이다. 다시 말하면 현대의 관념적 예술은 **세계에 제데로 대체할 수 없는 **절망과 무능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세계 속으로 도피해버리는 **나르시시즘 narcissism이다.

이들은 **빈자리를 스스로가 창조한 **대리 실재로 메운다. 브라크 Braque는 "견고한 것이라고 믿어지는 사물을 모방하나고 해서 진실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보면 안 된다"꼬 말한다. 왜냐하면 "물자체란 없고 사물의 존재는 우리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예술가는 *우리 영혼의 명석성의 요구에 대해 *침묵하는 세계를 대신하여 *스스로의 정신적 관념을 조작해낸다. - P301

예술가는 기하하적 추상으로 세계를 대체했다. 따라서 세계는 더 이상 유기적인 것이 아니다. 현대 예술가들의 세계가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주석으로 만들어진 구성성을 드러내고(페르낭 레제), 유리로 만들어진 인위적 도시를 창조하며(파이닝거), 정신이 창조한 기하학에 의해 자연이 쫓겨나는 상황(피카소)이 된 것은 *필연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신이 사라지며 존재도 사라졌다! 무심하고 부조리한 세계에 둘러싸인 인간, 그리하여 뜻 없이 떠도는 인간들의 예술이 *허구와 관념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될 수 있을까?

현실에서의 살밍 전적으로 무의미하고 누구도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는 **존재의 부조리한 불안 속에서 **스스로 관념적 세계상을 구현하지 않는다면 어디로 갈 수 있겠는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원칙은 이상적인 이데아가 될 수도, 신이 될 수도 없었다. 인간은 스스로의 실존을 위해 스스로의 세계를 만들어야 했다.

에드거 모랭이 말한 대로, 인간은 이제 **"하나의 행성을 떠맡았다".

- P302

/ 인간이 끝나는 곳에서 시인이 시작된다.


재현적 요소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예술가는 비밀의 장막에 가려지게 된다. ‘세계는 나의 표상‘인 것 이상으로 공유되는 표상이다. 표상이란 결국 체험을 요구하고 체험 자체가 공감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떠어떠하게 보도록 교육받는다. 그것은 일정 야식의 공유된 시지각을 전제하는 것이다. ‘복숭아빛 뺨‘이란 은유는 우리 모두가 복숭아를 보았을 뿐만 아니라 소녀의 뺨에서 유사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상투적으로 은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대 예술가들은 이러한 **상투성을 혐오한다. **그들이 전달 가능성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사물의 상투적 재현을 거부한 것은 그 **익숙함이 **사물의 본래 모습을 가리기 때문이다.

몬드리안과 말레비치 등의 추상 형식주의자들은 내면의 관념으로부터 무한한 변주를 해대는 *환상적인 구조물을 착안하여 그것으로 **실재를 대체한다.

물론 이것이 한낱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그들 자신이 잘 알고 있다. **현대 예술가들의 야유와 냉소와 자유로움의 기반은 이것이다. 그들은 대기가 좀 더 가볍기를, 그리고 만물이 기존의 시지각이라는 속박으로부터 과감하게 벗어나기를 바란다.

- P303

그러나 추상 표현주의자들은 이와는 다른 방향을 취한다. 그들 역시도 일상적인 실재는 오염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지신의 고안물로 끝없이 대치시키기보다는 물자체로 직접 들이가려는 시도를 한다. 그들은 인간이 자기 이해에 묶여 있는 탓에 실재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지성은 의지를 위한 봉사자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실재를 보기 위해서는 **인간이 되기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끝나는곳에서 시인이 시작된다"고 한 어느 철학자의 말도 이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결국 인간의 지각적 인습은 삶에의 의지와 실천적 요구에의 복종이 전제된 것으로 실재에 대해서는 허구석 인식만을 쌓아온 것이다.

**이제 예술가는 *가상계의 이면에 있는 *물자체를 그려야 한다. 그것 역시도 출발은 철두철미한 실존주의직 대립, 즉 ‘신이 없는 인간의 불행‘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들의 표현적 경향은 일상직인 지성이 실재를 왜곡했으며 인간의 전통적인 오성이 존재를 오염시켰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낡아빠지고 안일한 것이 되어버린 기존 문화에 대하여 정화를 시도한다. 그들은 인간의 **이성이 *대상의 실재를 은폐하고, *표현의 적극성과 자발성을 봉쇄했다고 믿는다. 

소통을 위한 **언어가 오히려 소통을 근원적으로 막고 실재를 드러내기보다는 오히려 *감추면서 *거짓된 관념으로 실재를 삼으라는 요구를 해왔다는 것이다.

- P304

표현적 경향은 정신의 자발성과 적극성으로 이 장벽을 폐기시키려고 애쓰는 경향이다. 이들은 *객관적인 사실이나 사물보다는 오히려 **내면에서 분출되는 과장과 환상 등을 표현함으로써 지성화되고 상투화된 *표현의 구태의연함에 정면으로 맞선다. 

그뿐 아니라 *거칠고 대립되는 강렬한 표현을 구사하고 왜곡된 성과 *일상성으로부터 벗어난 *색채 등을 사용함으로써 **내면에 자리 잡은 불안과 소외를 강조하여 서로 **소통하고자 하는 안타까운 시도를 한다.

*뭉크 Edvard Munch는 원색과 거친 붓놀림으로 *인물과 전경을 좌절, 불안, 고통, 격정 속에 가두어 놓고, *앙소르James Ensor는 현존을 고통스럽고 *환각적인 세계로 대체한다. 

*놀데Emil Nolde와 루오 Georges-Henri Rouaut 역시 거칠고 단순한 붓질로 정신적 공허와 더불어 의미 있는 실재와의 일체를 감동적으로 갈구한다. 

표현주의자들은 이러한 식으로 내적 세계의 자발성만이 실재와 닿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기존의 예술이 사용하던 어법을 폐기해 나간다. 

이들은 인간과 세계 사이의 모든 소통이 벽에 막혀 있다고 생각했으며 지성과 일상적 감각의 껍데기를 벗어던진 내면적 일체만이 새로운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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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를 숨긴다는 것은 정당화될 수 있는 행동에도
비밀스러은 죄악의 효과를 주는 것이었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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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그래요.
속임수를 쓰는 사람이 아니지요.
내 아내는 말이에요.
그러나 이제 전과 같은 사람은 아니오.
같은 사람이 아니지.
자기를 힐책하지 말아요.
그러지 않겠다고 맹세했거든.
힐책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다 할 거예요.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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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옳지 않은 말이었다.
옛날에는 모든 것이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않았다.
인간은 보의 아니게 결정지어져야 하는 존재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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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저에게 저의 길을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저 빌어먹을.....
저의 몽상을 단념하겠습니다!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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