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신이시여, 저를 도우소서. 저를 이 고통에서 구하소서.
/ 1715년 8월 30일, 임종을 앞둔 루이 14세의 기도 중에서 - P114
대관식을 마친 루이 14세는 왕관을 쓴 채 *3천 명의 몸을 만져주는 은총을 베풀었다. *대관식을 치른 프랑스의 왕은 *치유 능력이 있다고 믿었기에 병든 자들은 그의 옷깃이라도 스치기를 염원했다. 왕은 하늘의 신을 대신해 지상을 다스리는 자, 무슨병이든 낫게 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가진 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죽어갈 때 신 외에는 아무도 그를 구원해줄 수 없었다. - P115
그중에서 가장 최고의 보직에 해당하는 궁내관이 되면 왕에게 알현을 청하는 이들을 알아서 선별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 생겼다.
*누구를 방에 들이고, 누구를 방에 들이지 않을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자리였기에 자연히 궁내관에 줄을대기 위한 눈치작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아무리 풍족한 지방 영지가 있다고 한들 왕궁에서 직책을 맡지 못하면 다른 귀족들의 청탁을 받는 지위는 누리지 못했다.
반면 영지가 없어도 궁정의 좋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 그 자체만으로도 권력을누리며 살 수 있었다. 궁정 직책에 따른 월급도 월급이지만 권력을 쥐면 재물은 저절로 따라오기 마련이었다.
직책에 따라서는 왕이 하사하는 영지도 받을 수 있으며 더 높은 귀족으로 신분 상승도 가능했다.
트레무아유 공작 집안은 삼대가 궁내관을 물려가며 맡았다. 그동안 가문의권위는 궁내관이라는 자리 때문에 저절로 지켜졌다. *마찬가지로 왕의 가발 담당이나 의상 담당 시종관이 공석이 되면 앞다투어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것이 루이 14세의 통치 비밀이다. *아침마다 수백 명이 동원되는 기상절차를 치르는 이유는 *귀족에게 자리를 만들어주고, *그 자리에 어울리는 작은 권력을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직책이라는 틀 안에 귀족을 가둔 셈이다.
*조직이 정교해지고 직책이 세분화될수록 그 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 **대기업에서 직책을 나누고, 직책에 따른 책임을 강조하는 것과 하등다를 바 없다.
루이 14세는 이렇게 ‘루이 14세‘라는 **국가적 대기업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정점에 모든 시스템을 조정하고 결정하는 유일한 인물로 자신을 세웠던 것이다. - P124
왕족들이 베르사유 성과 주변에 정착하자 그다음엔 대영주와 귀족들, 부르주아들이 성을 둘러싼 일대에 땅을 사서 집을 짓기 시작했다.
관료와 시종들, 하인들을 비롯해 각 분야의 *장인들과 고급품을 취급하는 상인들까지 베르사유로 따라왔다.
마을은 금세 다양한 상권이 형성되면서 당대의 황금 부동산으로 떠올랐다.
- P144
당시에도 베르사유 성은 소문난 관광지였다. 누구나 마음껏 드나들 수 있었는데,
*모자와 검 같은 최소한의 격식만 갖추면 보통 사람들도 베르사유 정원을 거닐고 화려한 갤러리를 구경하며 왕과 궁정인들의 하루를 관찰할 수 있었다.
성 입구에는 돈을 받고 즉석에서 검과 모자를 빌려주는 가게들이 성행했다.
왕이 사는 궁전을 아무나 가서 볼 수 있다는 점은 왕의 일가 친천이나 권세가 있어야 의관을 갖추고 겨우 궁궐에 출입할 수 있었던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이는 왕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이 달랐기 때문인데, **당시 프랑스인들에게 왕은 만인의 아버지였다.
심지어 루이 14세가 집무실에서 업무를 볼 때는 실내화를 빌려 신고 왕의 침실까지 구경할 수 있었다. - P146
베르사유가 꼭 한 번 찾아가봐야 할 정도로 유명했던 이유는 그곳이 프랑스 정치 권력의 중심지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 유럽 사회에서 새로운 문화, 첨단의 유행이 발원하는 살실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사진이나 방송이 없던 시대, 당시 베르사유에서 시작된 첨단 문화는 판화 형태로 온 유럽에 전파되었다.
요즘으로 치면 고급스런 잡지나 최신 트렌드를 보여주는 패션지처럼 이런 판화들은 당대인들에게 큰 사랑은 받았따.
왕국의 모든 이들을 줄 세워 신분에 맞는 자리를 정해주던 태양왕의 죽음은 곧 해방을 뜻했다.
**엄격하고 딱딱한 예절, 왕권을 과시하기 위해 벌인 지난한 전쟁, 신문부터 대자보까지 모든 매체를 검열한 완고함...
파리로 돌아온 귀족과 왕족들은 온몸으로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느꼈을 것이다.
**‘로코코 rococo‘란 바로 이러한 활기와 희망을 반영한 문화를 말한다.
미학이나미술사 책에서는 로코코를 이러니저러니 어렵게 설명하지만 **결국 로코코란 내일을 근심하지 않는 낙천성, 가볍고 우아한 곡선, 축제에서 만난 미지의 여인, 왠지 애잔한 로맨스, 날아오를 듯이 가벼운 형태, 연애편지를 기다리는 달뜬 마음 그리고 새로움에 대한 열의 같은 것이다.
한껏 부풀어 오른 치마처럼 가벼운 파리의 문화에 도취된 사람들에게 태양으로 날아오르는 아폴론을 묘사한 그림이나 상아와 귀갑 같은 고급 재료로 장식된 권위적인 가구 같은 루이 14세 스타일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무거움으로 다가왔다. 루이 14세라는 긴 겨울이 마침내 끝나고 바야흐로 봄이찾아온 것이다. - P166
**살롱에서 벌어지는 교양의 향연단면도,
신기한 과학의 세계보다 문학에 심취해 서로 의견을나누며 오후를 보내고 싶다면 살롱을 찾아가면 된다.
**원래 살롱salon‘이란 말은 *천장이 돔 형태로 된 공간을 가리키는건축 용어로 오늘날의 *거실처럼 손님을 맞이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공간이었다.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살롱이란 말에는 ‘살롱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사교적인 의미가 추가되었다.
사교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여인들이 자기 집 응접실에 **예술가나 철학자, 학자를 초대해 담소를 나누는 모임을 살롱이라 부른 것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독서클럽이나 미술 동아리 같은 분위기의 모임이다.
명망 있는 지식인이 아니더라도 사교계의 유명 인사 혹은 특별한 외모나 재능으로 다른 이들의 관심을 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롱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 P229
18세기 파리의 부르주아나 귀족들은 과학, 천문학에서부터 철학까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토론과 대화를 즐겼다.
주로 세무, 금융, 법률 분야 등에 종사해서 많은 돈을 모은 **부르주아들은 *재력 위에 *지적 교양이나 예술적 취향 같은 우아한 미덕을 더하고 싶어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사회의 주류 세력으로 등장하는 *18세기 이전까지 *그림을사고 시를 음미하며 예술을 논한 문화인은 *대영주와 귀족, 왕족들뿐이었다.
그러나 *높은 사회적 지위를 *동경한 부르주아들이 *돈으로 귀족 작위를 사고 *귀족의 교양을 추구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나 학자 같은 전문직에종사하는 부르주아들이 늘어나면서 *교양에 대한 이들의 열망은 18세기를 ‘호기심과 발견의 세기‘로 만드는 데 크게 일조하게 된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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