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황금시대‘라고 불린 50년대와 60년대가 그랬다. **금융스캔들도 없고 훌리건도 극렬 서포터도 없고, 관중석에서 *인종차별시위도 없던 시대였다.
*세상은 평화로워 보였고 축구도 그래 보였다. 당시에는 *국가의 자존심, *지역의 자존심이 중요했고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의 목표가 실현되는 것을 보며, 그리고 *선수들의 사회적 신분상승을 목격하고 행복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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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거나 반대로 경제가 급격하게 발전하게 되면 **사회의 모델이 변하게 되고 **사회이동과 **사회통합과 관련해 위기가 발생한다.
**이때 축구가 혼란과 변화에 대한 거부를 표출할 수있는 특별한 장소를 제공했다.
*극우단체가 축구장의 관중석을 점령하고 *켈트십자가나 나치의 철십자가 같은 상징물의 등장 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적 발언이나 행위가 난무하는 것도 이 차원에서 살펴야 한다.
이 현상은 유럽에서 **포퓰리즘이 확산되고 *극우파 정당이 득세하는 것과 괘를 같이 하는 매우 정치적인 현상이다.
이를테면 네오나치 조직이 서포터그룹에 침투해서 *관중석은 *시위의 공간인 동시에 **정치활동의 현장이 됐고, 이집트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표현되는 장이 됐다. 도대체 이떤 이유로 축구장의 일부가 정치의 장이 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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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일부로서 시작된 축구는 (모든 국가에서 축구는 부르주아나 귀족 남자들을 교육하기 위한 일환으로서 발전했다) 재빠르게 *서민층의 *세계관을 표현했고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축구는 처음부터 집단성과, 농촌에서 도시로, 지역에서 국가로 변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사회성의 형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처음에 후원으로 시작됐든 이탈리아, 펍에서 시작됐든스코틀랜드, 영국, 기업으로 시작됐든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조합으로 시작됐든 독일, 오스트리아 간에 축구는 집단의 구성과 통제 전략의 일부였다.
**행동의 극렬화나 정치화는 관습의 조건이 달라졌을 때 나타난다. 우리가 **‘위기‘ (고용시장의 침체, 게토화, 통합의 어려움, 무리들 사이의 갈등으로 인한 불안감 상승)라고 부르는 것과 각 국가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문제(스페인의 프랑코주의의 종말, 공산정권의 몰락, 이탈리아 정부의 위기, 프랑스식 통합모델의 실패)는 축구장에 있는 서포터의 조건, 형태, 내용, 의미를 변화시키고 지역적, 인종적 경쟁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축구는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습관을 만들었고 극렬 서포터들은축구의 변화가 만들어낸 동기와 공간을 활용할 기회를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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