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서와 오경
<오경>은 시경, 서셩, 주역, 춘추, 예끼를 말한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사라진 책들을 *한나라 초기에 다시 수집하는 과정에서 이본들이 많이 출현하였다.
그 이본들을 비교 정리하여 대체로 *한나라 말기가 되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시경, 서경, 역경의 텍스트가 확정된다. - P15
<시경>은 중국 고대의 시가집이다.
주나라 초기인 기원전 11세기 무렵부터 춘추시대 중기인 기원전 6세기 무렵까지 약 500년 동안의 시가들을 모아 놓았다.
여기에 실려 있는 305편의 시는 원래 모두 노래의 가사였다.
이 노래 가운데, 반이 넘는 160수가 민요이며 나머지는 연회와 왕실의 제사에 사용된 노래들이다. - P16
<서경>은 고대의 문헌자료이다.
전설적인 구주 요와 순으로부터, 하 은 주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군주와 현명한 신하들의 교훈적인 말씀들이 대부분이다. - P16
<역경>은 <주역>이라고도 하는데, 원래 점을 친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다.
그러나 64괘 384효로 구성된 전체의 틀이 우주와 인사의 원리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간주되면서 유가 경전의 하나가 되었으며, 현대에는 중국 고대철학의 중요 자료로 취급되고 있다. - P17
<춘추.는 공자가 편찬한 노나라 242년간의 역사사 기록이다.
공자가 기존에 있었던 노나라의 역사 기록인 <춘추>를 일정한 기준으로 다시 정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P17
<예기>는 유가의 중요 이념인 예의 이론과 실제에 대한 모음집이다.
예는 개인의 생활에서부터 국가의 통치까지, 봉건사회 전반에 걸친 제도와 규범, 나아가서는 문화의 집합이다. - P18
이 5종의 서적은 모두 공자와 관련되어 있다.
시경과 서경은 공자의 정리를 거쳤고, 주역의 십익에는 공자의 <주역>에 대한 해설들이 실려 있다.
춘추는 대체로 공자의 저술로 인정되고 있고, 에기는 ‘인‘과 함께 공자 사상의 두 기둥인 ‘예‘와 관련된 문헌이다. - P18
공자의 손길과 이념을 간직하고 있는 이 책들은 한나라 초기부터 중시되었으며, 한/위/진의 여러 학자들이 주석을 붙이고, 당나라의 공영달은 주석에 다시 주석을 붙여 <오경정의>를 편찬하였다.
이처럼 경전에 *주석을 달면서 성립한 학문이 바로 **훈고학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8한으로부터 당에 이르기까지의 유학을 훈고학이라고 한다.
당나라 때까지, 아니 *성리학이 태동하는 송나라 때까지 *유학의 교과서는 *<오경>이었으며, 논어와 맹자는 참고서쯤 되었다. - P18
당나라가 망하고 5대(五代)의 혼란기를 잠시 거친 뒤 후주(後周)의 절도사였던 조광윤(趙匡胤)은 쿠데타를 일으켜 송나라를 세웠다.
*무력으로 등장한 *송나라는 또 다른 무력의 쿠데타를 예방하기 위해 *문치(文治)를 내세우고, *과거제도를 정비하여 새로운 인재의 선발에 주력한다.
당나라에도 과거제도가 있었지만 최종 선발권을 가지고 있었던 이부(吏部)는 가문의 배경이 없는 인물을 합격시키지 않았다.
어쩌다 합격이 되더라도 *문벌 출신이 아닌 경우는 권력의 핵심부에 참여하기가 어려웠다. 송나라가 정비한 과거제에 따르면, 고시관들이 응시자의 필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내용을 베껴 쓴 답안지를 가지고, 채점하도록 하였고, 응시자의 이름도 채점이 끝난 뒤에 확인토록 하였으며, 최종 합격자는 황제 앞에서 한 차례의 시험을 치른 뒤 석차가 결정되었다.
황제가 자신을 보좌할 인재를 직접 선발한 것이다. 황제는 당연히 문벌이 아니라 답안의 우열을 가지고 석차를 매겼다. 과거의 문제는 여러 유형이 있었으나 *기본은 *유학적 소양이었다.
- P19
그러므로 이처럼 *엄격한 실력 본위의 과거를 거쳐 중앙에 진출한 관료들, 즉 **신진사대부(新進士大夫)들은 *〈오경)을 통해 유학적 소양을 쌓은 교양인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정권 참여의 길을 열어준 *유학은 이제 *학문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새 시대를 만들어 가는 **정치이념이 되어야 했다.
게다가 *불교와 도교가 이론적으로 정밀해지면서 유학의 상대적인 *이론 결핍에 대한 위기감도 고조된다. 여기서 유학은 한 번 변한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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