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가들 - 마르크스에서 시진핑까지, 세계공산주의자들의 삶과 죽음
김학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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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셰스쿠는 이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공포정치의 도구들을 발달시켰다. 그 핵심은 보안대로, 8만 명의 군인과 10만 명의 무장경찰관으로 구성됐다. 그들은 대체로 죄수를 비롯해 과거를 감추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로,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선발됐다. 그래서 자신들에게는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차우셰스쿠에게 맹목적이면서 광란적으로 충성하게 만들었다. 이들 가운데 어떤 부대는 차우셰스쿠가족을, 어떤 부대는 당요인들을, 어떤 부대는 정부요인들을 경호하도록 상시배치되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부대는 투옥과 고문을 전담하고 있었다. 그들은 물론 완전히 초법적인 존재로 국가 안의 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 보안대와 긴밀히 연결된 기구가 내무부였다. 이들은 보안대와 함께 전 국민의 10퍼센트에 가까운 2백만 명 정도를 공식적·비공식적 정보요원으로 썼다. 편지검열과 전화도청은 일상생활의 일부였다. 불법적인 체포와 투옥은 여기저기서 쉽게 이뤄졌다. 그래서 1980년대에 들어서는 많은 국민들이 해외탈출을 꿈꾸게 됐는데, 탈출하다가 잡히는 경우 경찰의 맹견들에게 산 채로 먹히는 일도 드물지 않을 정도였다. (375)

 

 

 

중국의 대내외적상황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정립된 마오쩌둥의 이론들과 전략들은 중국공산당의 희생과 발전에 큰 도움을 주었다. 1937년에 4만 명 수준이던 당원의 수가 1941년에는 80만 명 수준으로 늘어난 사실이 그것을 말해주었다. 그러나 양적 팽창은 질적 저하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는 19411월부터 19422월 사이에 정풍운동당내투쟁을 개시했다. 명분은 질적 저하를 방지한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마오에 반대하는 세력을 제거한다는 정략적 목적에서 진행됐다. 2년 동안 계속된 이 운동은 상대방을 서로 밀고하는 가운데 보안조직을 담당한 세력에 의해 고문과 살해가 자행됐고 그 과정에서 자살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28인의 볼셰비키그룹의 우두머리였던 왕밍은 군중 앞에서 자아비판을 하는 수모를 당했다. ‘생래적 악한으로 불리던 캉성은 보안조직을 이끌면서 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혔다. 결과적으로, 이 운동은 마오쩌둥1인지도체제를 굳히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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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격찬의 홍수 속에서 유일한 예외가 있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미국공산당의 혹평이었다. 미국공산당은 이 책[에드거 스노, 중국 위의 붉은 별]을 금서로 지정했고 아울러 미국공산당에 연결된 어떤 단체도 이 책 광고를 싣지 못하도록 조처했다. 미국공산당은 소련의 지령을 받았음이 확실했다. 소련이 이 책을 배척하는 데는 까닭이 있었다. 이 책은 우선 중국공산당이 소련의 지원을 받지 않은 채 독자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해왔음을 강조했는데, 그것은 세계꽁산주의운동을 소련이 홀로 지도해왔다는 주장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이 책은 이어 중국의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이래라 저래라 지시해 중국공산당을 여러 차례 어려움에 빠뜨렸던 코민테른을 비판했는데, 그것은 코민테른으로 하여금 그토록 변덕스럽게 움직이게 만든 스탈린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트로츠키는 이미 1920년대에 중국혁명에 대한 스탈린의 잘못된 정책을 매섭게 비판했었다. 미국공산당은 이 책을 트로츠키추종자에게 매수돼 쓴 것이라고까지 음해했다. (629)

 

 

 

래티모어는 일본의 아시아침략을 맹렬히 비판했다. 그는 유럽에서 나치독일과 파시스트이탈리아가 침략전쟁을 확대하게 된 것도 일본의 아시아침략이 처음부터 저지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의 뿌리를 일본제국주의의 아시아침략에서 찾았다. 이러한 시각에서, 그는 일본제국주의와는 어떠한 형태의 타협또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그가 일본의 아시아침략을 그렇게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일본이 아시아를 침략하는 시발점이었던 한반도침략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안은 것은 우리로서는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그가 한민족은 일제의 패망과 동시에 독립해야 한다고 명백히 주장한 사실은 정당히 평가돼야 할 것이다. 이 시점에 미국에서 한민족의 독립을 옹호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사실에 유의하며 그의 주장은 더욱 빛난다고 볼 수 있다. (654)

 

 

 

소련이 붕괴되면서 그동안 기밀로 분류됐던 소련의 공식문서들이 공개되기 시작했는데, 코민테른 시절에 동지들을 밀고한 노사카의 스파이행위들도 공개된 것이다. 코민테른 지령에 따라 미국에 두 차례 잠입해 활동했던 시기에는 코민테른과 미국 모두를 위해 이중스파이 노릇을 했다는 자료들도 공개됐다. 심지어 패전 직후 연합국의 일본점령기에도 연합국최고사령부의 첩자로, 또는 미국의 첩자로, 이중플레이를 했다는 자료들도 공개됐다.

(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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