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ft 1848-2000 - 미완의 기획, 유럽 좌파의 역사
제프 일리 지음, 유강은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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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확산에는 중요한 초국가적 차원이 존재한다. 민주주의는 대부분 18세기에서 현재까지 지평을 확대하는 일련의 범유럽적인 국면들에 의해 일국의 국경을 넘어서 형성되었다. 현대 유럽 역사에서 이와 같은 초국가적인 헌법 제정의 순간이 다섯 차례 있었고, 이 순간들은 다가올 수 십 년의 한계와 가능성을 정해주었다. (31)

 

앞선 시기에도 사회주의자들은 이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자신들의 호소를 확장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계급정치'의 지반에 의지한 채 다른 중요한 인구 구성원들을 사회주의 지지층에서 효과적으로 배제했다. 노동계급의 남성성이라는 강하게 젠더화된 이상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정치가 축소되면서 여성을 차별하고 배제한 것이 이러한 결과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38)

 

사회당과 공산당이 없었다면 민주주의는 애초에 출발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1860년대와 1960년대 사이에 두 정당은 광범위한 민주주의의 진전을 이끄는 활발한 중심을 형성했다. 이것이 바로 다시금 불러내서 정당한 평가를 제시해 마땅한 사회주의의 역사이다. (40)

 

카를 마르크스와 1860년대에 시작된 사회민주주의 전통은 음모적 전위집단과 이들의 반란에 대한 환상을 결정적으로 거부했다. 지배계급에 의한 반혁명적 폭력에 맞서 무장으로 혁명을 방어할 필요성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그러나 1871년과 1917년 사이에 사회주의 정당들의 지배적인 혁명정치 모델은 거역할 수 없는 의회 다수파를 장악한다는 민주적 약속을 중심으로 정해졌다. 앞선 시기의 봉기 전통의 영웅적 행동과 비극적 한계를 보여준 1871년의 파리코뮌Paris Commune이 핵심적인 분수령이 되었다. 파리코뮌의 실패는 음모의 지평을 넘어서는 민주적 방법의 필요성을 보여주었다. (65)

 

엑소더스는 경제 관제고지보다는 지방의 창의적 실천에 초점을 맞추는, 협동에 기초한 사회주의 경제학의 다른 전통을 환기시켰다. 지역사회에 기초한 계획의 탈집중화된 모델을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사회를 부흥시켰으며, 노동과 일상생활을 잇는 새로운 연결고리를 구체화했다. 민주적 계획은 좌파가 다시 집권하기만 하면 적절한 기획을 제공했다. 1990년대의 세계화된 경제에서 각국의 정부가 운신할 여지는 줄어들었지만 그렇더라도 창의적인 공공투자 전략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871)

 

급진주의의 진정한 가능성은 사회주의 정당들 자체가 아니라 두 가지 새로운 정치공간에서 발견될 터였다. 첫 번째 공간은 지배적인 사회주의 정당들과 소규모 좌파 사회주의 정당 및 녹색당을 연결시켜 주었다. 두 번째는 의회영역과 의회 외부 사회운동 사이의 폭넓은 연계였다. (888)

 

사회민주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의 상호적대가 초창기 파시즘의 승리에 파국적으로 기여했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게다가 전쟁기간 중에 잠시 협력하긴 했지만 1989~91년 이후에야 두 세력은 비로소 분열을 완전히 극복했다. (994)

 

'좌파'를 사회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더욱 넓고 엄격한 틀, 나아가 그것의 모든 사회·경제·문화·개인적 차원과 동일시함으로써 20세기 마지막 30년의 사회주의 위기로 인해 야기된 무력감에서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주장한 것처럼, 사회주의가 민주주의의 최고의 성취를 이루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지만, 민주주의의 가능성은 언제나 사회주의의 범위를 뛰어넘었다. 이러한 사실은 특히 1968년 이후 시기에 분명해졌다. (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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