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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라이어 (10주년 리커버 에디션) -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
말콤 글래드웰 지음, 노정태 옮김, 최인철 감수 / 김영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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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말이지만 책은 내가 접해보지 못한 세상과 만나게 해준다.

나와 같은 고민을 껴안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가도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그 중 아웃라이어는 성공에 대한 고민,

노력과 재능 사이에서 삶의 진실된 고백을 들을 수 있다.

캐나다에서 하키선수를 선별하는 과정은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말한

‘자기실현적 예언’의 가장 완벽한 예시라고 할 만하다.

이는 ”시작 단계에서 잘못된 정의를 내렸을 때,

다음에 나타나는 새로운 행동이 최초의 잘못된 정의를 올바른 것이 되도록 하는 상황‘을 말한다.

캐나다인은 9~10세 소년 중 누가 최고의 하키선수인지에 대해 잘못된 정의를 내린다.

그들은 그저 해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소년을 선별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 소년들을 ’올스타‘로 대접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처음의 잘못된 정의가 옳은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러한 자기실현적 예언의 그럴 듯한 타당성은

오류가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를 낳는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예언자가 마치

자신이 처음부터 예언했던 그대로인 양 행사하듯이 말이다.

p. 39

단편 웹툰 뮴뮴신이 생각났다.

스포가 될까 링크만 걸어놓는다.

썸네일이 섬뜩해서 걱정될 분도 있겠지만, 내용이 섬짓한 웹툰이다.

읽기 추천드린다.

스포츠에서와 마찬가지죠.

우리는 어린 나이에 똑똑한 아이들을 선별합니다.

우등 독서반도 있고 우등 수학반도 있죠.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거나 학교에 입학하면

교사는 숙달되어 잘하는 것과 정말로 똑똑한 것을 혼동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몇 달 빨리 태어난 아이들은 상위코스에 들어가고 더 좋은 걸 배우죠.

이듬해가 되면 그 아이들이 상위그룹을 형성하고 있고 실제로 더 잘하기도 해요.

다음해에도 마찬가지죠.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나라는 덴마크뿐입니다.

덴마크는, 국가 차원에서 열 살이 되기까지는

아이들을 능력에 따라 분류하지 않는 교육정책을 펼치고 있으니까요.

p. 43

저자는 4개월로 세 반씩 나눠서 학급을 운영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물론 등록과정은 다소 복잡해질 것이다.

그렇지만, 태생적인 차이로 주어진 교육제도 내에서 받는 불이익을 누렸던 학생들에게 기회를 넓혀질 수 있다.

같은 발육단계에 놓인 학생들끼리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다.

내게도 비틀즈에게 있었던 함부르크의 시간을 만들기 전에,

주어지 기회 중 어떤 일을 투자할 지도 생각해봐야 겠다.

무엇을 1만 시간의 법칙에 적용할 것인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공을 개인적인 요소에 따른 결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살펴본 모든 사례는 어떤 것도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내가 발견한 것은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붙잡고

그 특별한 노력이 사회 전체로부터 보상받을 수 있는 시대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의 성공은 그들의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자라난 세계의 산물이다.

결국 졸업생이 현실 세계에서 얼마나 잘 해나가는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인종적 소수자 학생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들이 백인 학생만큼 성공적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연구결과가 보여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미시건 대학의 기준에서 볼 때 인종적 소수자 학생이 백인 학생에 미치지 못하긴 하지만,

사실 로스쿨에 들어올 정도의 학생은 이미 높은 범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충분히 똑똑하다.

단지 상대적 평가기준에 휘둘렸을 뿐이다.

p. 104-105

결국 지능도 어느 지점까지만 관건이 된다면,

그 지점을 넘어선 경우에 지능 외의 것이 관건이 될 것이다.

이것은 운동과 비슷하다.

누군가가 충분히 체격을 갖추고 있다면,

우리는 속도와 경기감각, 민첩성 등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

여기서는 IQ를 대신할 상상력 테스트를 제안한다.

다이버전스로 불리는 물건의 쓰임새를 최대한 많이, 독특하게 쓰는 것을 기준을 삼는 시험이다.

나는 벽돌을 보고

"운동을 겸해 러시안 룰렛을 하고 싶을 때 사용."

이라고 쓴 풀 학생의 답변이 너무 웃겼다.

게다가 구체적으로 (열 발자국을 걸어가 뒤돌아서서 던진다. 단, 회피 동작은 허용되지 않음.)

설명까지 적어놓았다.

그렇다면 실용 지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리는 분석 지능이 어디서 오는지는 알고 있다.

그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유전자로부터 온다.

-

어떤 면에서 IQ는 선천적인 능력의 척도이다.

하지만 실용 지능은 후천적으로 습득해야 하는 지식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지식을 대부분 가족에게서 배운다.

p. 124-125

여기서 부유한 집안과 가난한 집안을 선별해 조사한 관찰 실험이 흥미로웠다.

12 가족에서 나온 방식은 12가지의 다양한 교육 철학이 아닌,

오직 두 가지뿐이었고 계층에 따라 완벽히 나눌 수 있었다.

가난한 집안의 부모는 아이의 관심을 계발해야 할 재능의 징후로 보지도 않고

새로운 흥미를 끌어내기 위해 비용을 댈 수 없는 자신에 대해 한탄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의 기술과 흥미가 아이를 돋보이게 한다는 것만 관심이 있고

이를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자녀를 돌봐야 하는 책임은 지지만,

아이들이 알아서 성장하고 스스로의 재능을 계발하도록 내버려둔다.

이와 대조적으로 중산층 부모는 집중 양육으로 아이를 길렀다.

실험자는 둘 중 어느 한 쪽이 도덕적으로 낫다는 평가를 하진 않았다.

그러나 실용적인 관점으로 봐도 집중 양육은 막대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중산층 자녀는 매우 다양한 체험을 보장받는다.

고도로 짜여진 사회 구조 속에서 움직이는 법을 배운다.

성인들과 편안하게 대화하는 방법도 익히고 뭔가 필요한 게 있을 때 어떻게 말하는지도 배운다.

실험자의 표현에 따르자면 권한에 대한 감각을 익힌다.

중산층 자녀는 자신의 개인적 선호를 충족시키는 것은 물론

어떤 기관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또한 그들은 정보를 공유하고 관심을 요구하는 일에 편안함을 느낀다.

이들이 자신의 선호를 충족시키기 위해 관심을 요구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더불어 규칙을 알고 4학년만 되어도 이익을 얻기 위해 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안다.

심지어 선생과 의사에게 특별한 요청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난한 계층의 아이는 거리를 두고 행동하며 신뢰하지 않고 저항하는 특징을 보인다.

p. 128

어린 나이에도 어른들에게서 자신에게 힘의 균형을 이동시키는데 성공하고

그 전환을 부드럽게 이뤄낼 수 있는 교육.

자신이 특별한 존재이고 계속 존중받는 방식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허세를 부리지 않고 이유를 묻고 자신이 놓인 상황에 대응하는 말하는 방법을

이미 배우고 있는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있다.

출발선상이 다르다,

금수저와 흙수저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했던 문장

’돈으로는 행복을 살 수 없지만, 자전거에 탄 채로 우는 것보단 벤츠에 앉아 우는 게 편하다.‘

맞는 말이다.

세상을 좀 더 잘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과

그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다르다.

아무리 똑똑해도 혼자서는 자기 길을 만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성공에 반드시 필요한 기회는 늘 우리 자신이나 부모에게서 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로부터도 온다.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특정한 시공간 속의 기회로 오는 것이다.

더불어 문화적 유산의 힘은 강력하고 뿌리 깊게 박혀있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까지 세대를 넘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은 물론 탄생시킨 경제적, 사회적 배경이 소멸된 이후에도 살아남는다.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결정하고 우리의 태도와 행동을 결정하는 수많은 것이 놓여있다는 것이

변명이 되기도 하면서, 두렵기도 하다.

이미 갖춰진 나로 만든 것만 같다.

그 속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 자체가 만족스러운지가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무엇보다 1만 시간이 넘는 노-오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자율적이면서 창의적인 데다 노력한 만큼 보상이 돌아오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

그래서 웃으면서 춤을 추는 사람들,

좋아서 계속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던 인터뷰 속 음악가의 모습이

그렇게 빛나보였나.


언어에 관심이 많은 나는 7장 비행기 추락에 담긴 문화적 비밀도 흥미로웠다.

플로리다 항공사의 비행기 추락 사건을 생각해보자.

부기장이 기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면 과연 네 번씩이나 힌트만 주고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는 분명 명령을 내렸을 것이고 그랬다면 비행기는 추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행시간이 더 짧은 조종사가 조종간을 잡을 때

비행기가 더욱 안전한 이유는

경험이 더 많은 조종사가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p. 227

완곡어법이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연차가 낮은 직원이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고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

모든 직장에서의 성공 비결인 것 같다.

이름을 부르면 더 쉬워지지 않을까.

무엇보다 연차가 높은 직급의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종사의 경우 기장이 미리 자신의 권위를 낮추고 들어가

돌려말하지 말고 정확한 단어로 나를 도와달라고 부기장에게 말하는 것이다.

대게 사고의 경우 부기장의 질문에 함축된 제안이 너무 약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 냈다.

하급자는 무조건 상급자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문화적 배경의 강력한 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특정 문화가 위계질서와 권위를 얼마나 존중하는지를 나타내는

권력 간격 지수(PDI)로 나라를 분류할 수 있다.

권력은 그것을 가진 사람이 부끄러워하고 은밀하게 행사해야 할 그 무엇이다.

나는 스웨덴의 한 대학교 교직원이 권력을 행사하려면

권력이 없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다.

-

오스트리아의 수상 브루노 크레이스키는

종종 전차를 타고 출근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나는 1974년에 네덜란드 수상 욥 덴 윌이

포르투갈에서 캠핑카를 타고 캠핑장에서 쉬고 있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권력자들의 이런 모습은

PDI가 높은 벨기에나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거의 보기 어렵다.

p. 237

자신이 하는 일에서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은

출신지의 성격과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

PDI가 높은 문화에서 좋은 조종사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

조종사들의 PDI 상위 5위에 속하는 나라는

국가별 비행기 추락 사고 발생 빈도와 대조하면 맞아 떨어진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2위를 차지했다.

대한항공 괌 사고를 처음부터 언급한 건 이유가 있다.

한국의 문화적 유산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 특히 관심 있게 읽었다.

특히 글로 풀이한 한국어는 굉장히 낯설었다.

비행 전의 예비 모임을 위해 세 명의 파일럿이 만난 자리에서

부기장과 기관사는 기장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이때 부기장은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며 존경어린 말투로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당신을 만나는 것은 처음입니다‘라는 뜻이다.

한국어에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 사이의 관계를 반영해 적용되는 복잡한 경어체계가 있다.

아주 낮춤(해라), 예사 낮춤(하게), 예사 높임(하오), 아주 높임(하십시오) 등이 그것이다.

기장에게 말할 때, 부기장은 이들 중 적절한 표현을 찾기 위해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대화 상대방과의 관계에 엄청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문화를 바탕에 두고 있다.

-

서구인의 의사소통은 언어학자들이 ’화자 중심‘이라고 부르는 원칙,

즉 의사소통이 명확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부정확하게 말한 화자에게 책임을 묻는 원칙에 기반하고 있다.

-

그러나 한국은 다른 많은 아시아 국가와 마찬가지로 청자 중심이다.

대화 내용을 알아듣는 것은 듣는 사람의 문제인 것이다.

-

과장 : 날씨도 으스스하고 출출하네(한 잔 하러 가는 게 어때?).

회사원 김씨 : 한 잔 하시겠어요?(제가 술을 사겠습니다).

과장 : 괜찮아, 좀 참지 뭐(그 말을 반복한다면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지).

회사원 김씨 : 배고프실 텐데, 가시죠?(저는 접대할 의향이 있습니다).

과장 : 그럼 나갈까?(받아들이도록 하지).

p. 247-250

나는 꼭 외국에 나가게 된다면 이 대화가 어떻게 들리는지 물어볼 것이다.

한국의 언어 문화는 서로 상대방의 의중을 섬세하게 짚어가며 말하고 듣는 다는 점에서

미묘하고 일종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무신경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세련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양쪽 모두 상대방의 의중을 떠볼 만한 시간이 많을 때 가능한 것이다.

문화적 유산의 함정에 빠져 있는 내가 새로운 경험,

PDI 낮은 나라 사람으로서 지낼 필요가 있었다.

언어가 그 전환의 열쇠가 되어줄 것이다.

마찬가지로 8장 아시아인이 수학을 더 잘하는 이유에서 언어는 큰 힘을 발휘한다.

숫자체계가 규칙적이라는 것은

아시아 어린이들이 덧셈 같은 기초적인 산술을 훨씬 더 쉽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미국의 일곱 살짜리 꼬마에게 삼십칠(thirty-seven) 더하기 이십이(twenty-two)를 암산하라고 하면,

그 꼬마는 먼저 ’37+22‘처럼 말을 숫자로 바꿔서 계산해야 한다.

하지만 같은 나이의 아시아 꼬마에게 ’삼십칠 더하기 이십이‘를 물어보면

들리는 그대로 암산이 가능해 쉽게 계산한다.

숫자로 바꿔서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p. 265

어떤 언어를 배우느냐가 다시 다른 학문의 배움에 이어진다는 학설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정보화 사회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수학에서 나온다.

빠른 시간 내에 IT 강국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이유도

한국의 산술체계에 있다고 하면 비약일까?

문제해결에 관한 강의를 하는 쉰펠트는 자신의 수업 핵심은

학생들이 대학에 올 때까지 몸에 밴 문제풀이 습관을 떨쳐내는 데 집중한다.

저도 풀지 못하는 문제를 하나 고릅니다.

그런 다음 학생들에게 말하죠.

"이것을 집에서 2주일간 푸는 거다.

나는 여러분의 버릇을 알고 있지.

첫 주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둘째 주에 가서야 손을 대기 시작하겠지.

경고하는데 첫 주를 헛되이 흘려보내면 절대 풀지 못할 거다.

반대로 만약 내가 문제를 주자마자 풀기 시작하면 좌절하게 될 거야.

나를 찾아와 이건 풀 수 없는 문제라고 말하겠지.

그럼 나는 계속 하라고 할 거고,

2주째에 접어들면 여러분은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둘거라고 확신한다."

p. 282

결국 수학은 타고나는 재능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려운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시도하고자 하면 수학도 술술 풀릴 수 있는 학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수학을 어려워하는 구나라고 반가우면서도

내가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꾸만 거리를 두게 된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모든 배움은 보통 사람이 금방 포기하는 것을

몇 시간 붙잡고 늘어지는 끈기, 의지의 산물이다.

무엇을 끝마치는 능력도 능력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한 권의 책을 떼야지 보다 이 책을 하루에 한 장씩이라도 보겠어도 중요한 목표가 된다.

해피투게더3에서 “저는 항상 하루에 몇 시간씩 공부한다는 원칙이 있었다”고 말했던

카이스트 출신 이장원의 말도 여기에 해당되겠다.

저자는 미국의 독자들에게 아시아의 쌀농사에서 비롯된 근면 성실을 본받자고 말한다.

그러나 방학동안 보충수업을 통해 밤늦게까지 자율학습을 실시하는

한국의 전형적인 교육 방식을 겪어온 나로서는 의아했다.

우리는 반대로 서구인들의 평등함과 여유를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렇게 시간을 충분히 주면 좀더 부드러운 환경 속에서 문제를 풀 수 있죠.

저는 헤엄치지 않으면 가라앉게 만드는 기존의 수학교육은 잘못된 접근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방식 아래서는 모든 문제에 대답해야 하고 처음으로 정답을 맞힌 학생이 보상을 받죠.

-

수업이 지체되는 것 같지만 우리는 천천히 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더 많이 외우고 더 많이 이해하게 되죠.

p. 300

충분한 시간이 수학을 가치 있게 만들어 준다.

학생들은 노력과 보상 사이 연관관계를 명확히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꼭 수학이 아니더라도 다른 학문과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서 필요한 말들이다.

성공이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결정과 노력의 산물로만 이뤄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주어지는 기회가 있고, 그 기회를 움켜잡을 힘과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결국 가장 똑똑한 사람이 최선을 다해 성공한다는 신화는

그저 자신이 할 일에 충실했다는 뜻 정도로만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는 각자 고유한 인격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우리가 성장해온 공동체의 문화적 환경을 통해 영향을 받은 것이 있으며,

그 차이는 놀라울 만큼 두드러진다.

개인이 사회 속에서 성공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재능의 평범함과 비범함은 너무도 미묘하게 느껴진다.

하나의 사회와 공동체 안에서 기회와 행운과 노력이 발휘하는 힘은 너무 크다.

실력자의 실력은 온전히 그의 것이 아니다.


열심히 해도 안 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신기한 자기계발서다.

한 권의 책으로 그 날의 기분이 바뀔 수 있다.

운수가 나쁜 하루에 읽었더라면,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든 아웃라이어로 밤을 보내고

기운 내서 한 번 살아보자, 꼭 열심히 아니어도 괜찮다고 마음먹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일반화의 오류가 없는 뻔한 이야기들을 잘 엮어 놓았다.

성공을 개인의 노력으로만 보던 나의 시점을 다르게 보여줄 수 있도록 도와준 시간이었다.

이 책은 사람들에게 1만 시간의 법칙을 알려준 기폭제가 되었기에,

대다수가 역시 노력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저자가 정말 강조한 것은 환경과 전통이다.

대중과 언론과 그것을 보고 들은 내가 이러한 측면을 간과했다.

자기 재능에 대한 이해 없는 노력은 시간 낭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결 같이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우직함이 멋있고 성실함의 본보기가 되는 사람들.

재능을 찾아야 한다는 말은 재능이 없는 사람은 없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존중받아야 할 유일한 이유는

내가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만큼 뻔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를 이루는 것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있는 게 아니라 살면서 영향을 받았던 여러 가지 것들이 섞여 있겠지.

일상적으로 그 안을 헤집고 다닐 수 있는 약간의 자유로움을 준 것 같다.

오로지 자기 탓이나 변명으로 치우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준 것 같다고 할까.

여기서 중요한 건 한 번에 여러 개를 보기 위해 아등바등 대기보다

쉬엄쉬엄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 겠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 내 안에서 형성된 담론 가운데 지금 내게 화두가 되는 것 딱 하나를 잡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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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말이 좋아서
김준태 지음 / 김영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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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 작가님이라고 해야 할까, 교수님이라고 해야 할까.

본 직업이 나무칼럼리스트니까 그럼 이게 맞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솔숲닷컴 운영자라고 해야 하나.

나는 강의에서 처음 뵈었기에 교수님이라고 이 분을 언급해야겠다.

기자로 시작해 방향은 조금 바뀌었지만,

그래도 계속 글쓰기를 일로 삼아온 분이다.

덕분에 나는 대학에 와서 듣고 싶었던 글에 관한 구체적인 새로운 방향을 세울 수 있었다.

특히 시험으로 논술문을 적기 위해 봤던 슈베르트와 나무라는 책에 나온 구절을 가끔 들춰보곤 한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와 가장 흔한 악기에 속하는 피아노의 일 년간의 만남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교수님은 나무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과연 글로 표현해낸 게 그 나무의 전부인지,

제대로 본 것이 맞는 것인지 의문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피아니스트 김예지 님과의 만남이 특별했다.

나무를 본다는 것을 곧 안다는 것과 동일시해도 괜찮은지,

나아가 시각으로 세계를 평가하고 이해하는 것 외

더 현명한 방법은 없을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감각을 압도할 만큼

절대적 영향력을 지닌 시각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고

그게 불가능할 만큼 오랫동안 학습되어온 나의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을 수 있는

시각장애인 김예지의 지혜를 구하고 싶었다.

슈베르트와 나무

목적이 뚜렷한 독서였음에도 읽는 내내 즐거웠다.

지금도 가끔 교수님이 보내주시는 나무편지를 가끔씩 읽는다.

일간 이슬아처럼 구독해서 메일로 받는 글인데,

이슬아 작가와 같이 삶의 반경을 깊고 넓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래서 나무의 말이 좋아서라는 제목이 낯설지 않았다.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그만 아찔하였다.

동백꽃

김유정 작가가 쓴 작품에서 동백꽃은 붉지 않다.

그리고 알싸하고 향긋한 냄새가 난다.

나는 여기서 한 번도 의문이 가져본 적이 없다.

수능 문학 작품 중 감정이 만져지는 몇 안되는 소설이었기 때문에

소작인 아들과 주인집 딸의 상황을 그리기도 바빴다.

이 나무의 말이 좋아서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의문을 가질 수 있었다.

저자는 김유정 작가가 춘천에서 집필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동백 나무의 수목 한계선이 충청도 서천이어서 춘천에서 붉은 동백꽃이 피지 않는다.

그럼 작가는 무엇을 말한 걸까?

바로 생강나무이다.

결국 노란 꽃과 알싸한 냄새를 풍기는 생강나무를 작가는 잘 짚어낸 것이다.

적어도 다섯 번은 봤을 노란 동백꽃의 단어에 시선을 주었지,

이 꽃의 모양과 향기가 제각각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동백꽃을 이해하고 젊은 사랑 이야기를 만났다면,

더욱 절실히 이해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연두의 향연 속에서 마음을 끄는 사진과 문장이 있다.

신록의 계절인 오월의 문단에서 나왔던 구절이다.

겨우 내 조용하던 넒은잎나무마다 물을 길어 올리고 잎눈을 연다.

솜털 뽀송한 연두빛 잎으로 청춘을 부른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보라.”

창공을 가득 메운 신갈나무 잎사귀 실루엣 사이로 민태원의 <청춘예찬>을 만난다.

-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피천득의 <오월>에서도 청춘을 만난다.

p. 59

이런 글의 특성인지, 말투에서 옛 것의 내음을 계속 맡게 된다.

아무래도 묵직한 단어와 문체가 익숙하지 않았는데,

그런 와중에 만난 문장이었다.

자신의 생각에 푹 빠져 있다가 마침내 독자에게 건네는 말과 같아서 반가웠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그 다음 사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머물고 싶은 풍경이 청춘의 시기와 맞아 떨어져 보였기 때문이다.

칠월 숲은 나뭇잎 소리로 분주한다.

하늘을 가득 채운 잎사귀들이 만드는 스킨십이다.

서걱서걱 여름 소리에 마음이 열린다.

p. 79

녹음의 계절, 칠월을 상징하는 어구.

녹색으로 잉태된 여름에 녹색이 또 얹혀 그야말로 녹초가 되는 것이 아닐까.

녹색의 흐름을 따르는 여름의 준엄함에 사람 세상의 위세도 꺾여 느릿하게 움직인다.

마음을 다시 달궈주는 건 숲이 들려주는 노래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하여가>는 충절가 포은 정몽주를 향한 태조 이방원의 유혹이다.

이 대목에서 공생을 떠올린다.

공생은 서로 이득을 주고받고 위기에 합심하는 관계여야 한다.

꽃과 나비, 도토리와 다람쥐처럼 숲에는 수많은 공생이 있다.

하지만 칡의 무차별적 확장을 보면,

이방원과 정몽주의 공생이라는 게 애초에 가당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칡덩굴이 다른 나무를 기어오르는 것은 공생을 빙자한 배신의 전형이다.

더 큰 이득을 위한 적과의 동침, 그리고 배반일 것이다.

p. 108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정말 감탄했다.

식물을 통해 사람의 관계를 미리 짐작해보게 되니 흥미로웠다.

나무는 뿌리로 이웃 나무와 만난다.

서로 긴밀하게 소통하며 심지어 다른 나무 사이에도 하나의 네트워크를 만든다고 한다.

간밤에 추위는 잘 견디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매일매일 안부를 묻고 산다.

신기한 일이다. 어떻게 살아야 덜 힘들고 오래 살 수 있는지 나무는 이미 아는 것만 같다.

그렇게 나무들이 공종의 뿌리를 매개로 함께 물을 저장하고 겨울을 난다.

이웃나무가 배고파하면 자신의 영양분도 보내준다.

(서로 사랑이 깊어 한 몸체가 된 연리목도 있다!)

나무들마다 확정된 각자의 자리를 지키면서 이웃과 끊임없이 공존을 이야기한다.

서로를 위하면서 궁극적으로 자신을 지키는 이타적 공존을 배우게 된다.

그들이 일구어놓은 곳을 대수롭지 않게 걸어다녔는데,

항상 위를 보며 아름다운 빛깔과 소리에 홀리기만 했는데,

마음을 가다듬고 뿌리 사이로 발을 딛게 될 것 같다.

생태와 역사의 조합 말고도 과학을 아우르며 다채롭게 펼치기도 한다.

드높아진 하늘에 청량한 가을바람이 부는 구월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제 낮의 길이도 짧아지고 기온도 낮아진다.

사람의 몸도 이를 알아채고 반응한다.

일조량이 줄어드니 세로토닌 분비도 줄어든다.

대신 반대로 밤이 길어지면서 기분을 가라앉히는 멜라토닌 분비가 증가한다.

세로토닌 멜라토닌 스위치의 정상 작동이다.

아울러 비타민 D 합성도 적어지고, 특히 남자에게서는 테스토스테론 분비도 저하된다.

세로토닌 감소, 비타민 D 감소, 테스토스테론 감소, 멜라토닌 증가.

그러고 보니 모두 울적한 쪽으로 작용하는 기제이다.

생각이 많아지고 고독을 느끼는 멜랑콜리 센티멘털의 시계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p. 122

센치해진다는 표현이 가을에 나오는 건 우연히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계절에 따라 식물과 사람의 몸이 변화를 같이 한다.

잔가지를 뻗어 온기를 공유하는 겨울도 그렇다.

채워야 할 것과 비워야 할 것을 알려주는 계절이기도 한다.

모든 생명이 생각을 정리하며 멈춘 듯 성장한다.

참고 견디며 계속 길을 묻는다.

나와 같은 그들에게 위안을 얻게 된다.


좋아하는 나무도 생겼다.

참나무.

말 그대로 참 좋은 나무라는 뜻으로 순우리말이다.

지금은 참나무 채棌라는 한자가 있지만,

과거에는 참 진眞에 나무 목木으로 쓰였다.

잎, 줄기, 열매 어느 것이든 살아서도 죽어서도 버릴 게 하나 없는 쓸모가 많은 나무라고 한다.

속명도 라틴어로 아름다운 나무를 뜻하는 Quercus로,

동서양 어디에서나 좋은 나무로 인식하고 있다.

나의 이름 중 마지막은 참 진眞을 쓰는데 돌림자다.

갓 태어난 세 아이, 나의 오빠와 나의 여동생과 나에게

부모님이 쓸모 있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을 담고 지어주신 것 같다.

다시 태어난다면 한 그루의 나무가 되고 싶다던,

죽으면 수목장을 하고 싶다던 엄마의 말이 기억난다.

그들의 살아온 방식처럼

사계절 여느 때나 존재의 이유를 답하며 아름답게 살고 싶어진다.

생각을 게을리했다면 존재하지 못했겠지.

세상을 읽고 나아갈 방향을 정하고,

진심을 다해왔기에 나무는 지금을 산다.

p.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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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에서는 천천히 걸을 것 - 율리와 타쿠의 89일 그림일기
배율.진유탁 지음 / 김영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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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이병률 작가를 정말 좋아한다.

중학생 때 끌림이란 책을 읽고 그 후로 그의 책을 계속 모으고 있다.

시인으로 글을 쓰기 시작해서인지 여행 산문집이 따뜻하게 읽혀졌다.

그렇다고 오글거리지도 않고 함께 여행을 다니는 기분이 들어 오히려 시집보다 더 좋아한다.

수능이 끝나고 폭우 속에서 그의 강연을 듣고 권나무라는 가수도 알게 되었는데,

그때의 떨림을 기억하기 위해 바로 글도 남겼다.


 여행 산문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접하게 되고 관련된 다양한 책을 찾아보았지만,

자신의 일상에 정성을 다했다는 느낌이 든 책은 처음이다.

정보를 기대했다면 실망하겠지만,

인터넷에 찾아보기 힘든 율리와 타쿠의 꼼꼼한 일상기록이 더욱 흥미로웠다.

평일에는 집에서 일을 하거나 쉬고,

주말에는 가고 싶은 곳에 가고 평소에는 익숙한 것을 먹다가,

어쩌다 한번씩 새로운 걸 맛보는

태국에서 느껴보는 편안한 나도 타국살이의 묘미를 느끼고 싶다.

생전 처음 와본 나라에서 생기는 익숙함.

아끼는 가게와 좋아하는 음식이 모여 도시에 정이 드는 시간들.

실랑이를 하고 나서야 깨달았던 것은 ‘

맞지 않으면 지나쳐 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털이 곤두서 있는 고양이를 만났을 때를 떠올려보자.

그럴 땐 다정한 교감을 기대하기보단 자리를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티격태격할 시간에 어딘가 있을 기분 좋은 표정의 고양이를 찾아나서야 한다.

그날 공항 어딘가에는 기분이 좋은 운전사가 있었을 것이다.

-

그 이후로 지나칠 수도 있는 문제는 억지로 해결하지 않기로 생각했다.

많은 일이 꽤나 쉽게 간단해졌고, 덕분에 기분 나쁜 일도 없었다.

사려고 집어든 옷이 사이즈가 안 맞다면 맞는 사이즈로 바꾸면 그만이다.

그래도 사이즈가 없으면 다른 어울리는 옷을 사면 된다. ‘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라는 의미로 생각해볼 수 있다.

나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면 될 일이다.

돈므앙 공항에서 택시 운전사를 대할 때처럼.

p. 33

앞으로 겨울마다 치앙마이를 그리워하게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지만

다음 겨울은 지금까지의 겨울들보다는

조금 더 잘 견딜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얼마나 추위가 싫었는지 그새 잊었거나,

한 해 겨울을 건너뛰었다고 마음에 여유가 조금 생겼거나.

둘 중 어떤 이유든, 싫은 것은 가끔 피해가도 된다는 것만은 잘 알게 되었다.

-

무엇보다 ‘언제든 피하려면 피할 수 있다’는 선택지를 가지는 것만으로,

신기하게도 조금 더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긴다.

-

가끔은 싫어하는 걸 피해가는 것,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것.

따뜻한 여름 나라에서 나는,

‘언제나 도망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은 채로

흐리고 추울 다음 겨울을 맞이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p. 206-207

율리와 타쿠의 글을 읽고 있으면 이름을 보지 않아도 누가 썼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위의 글은 타쿠고 밑의 글은 율리다.

문체와 성격이 다른데도,

처음 타국에 발을 디뎠을 때와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며칠 앞두고 쓴 글인데도,

전혀 다른 경험을 두고 썼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생각인 것 같아 신기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라는 태도는

나의 삶에서 거의 없었던 선택지여서

여행을 가면 나도 바뀔 수 있을지,

얼마나 다른 나를 찾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일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내 작업을 하고,

이도 저도 안 되면 잘 놀고’ 라는 계획은 훌륭한 계획이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느슨한 계획은

잘만 사용하면 오히려 무적이다.

틀어질 가능성이 없다.

일을 하면 행운,

작업을 하면 이득,

놀게 되어도 괜찮은 계획.

그저 무엇이든 열심히 오픈 마인드로 임하기만 하면 된다.

더 놀지 못해 아쉬울 것도

더 일하지 못해 아쉬울 것도 없는

느슨하고도 알찬 날들이었다.

나의 새로운 꿈이 생겼다. 디지털 노마드.

유목민처럼 이동하는 삶을 살며 일하는 사람들이란 뜻인데

치앙마이가 일하기 좋은 도시 중 하나라고 한다.

일하기 좋은 환경을 갖춘 외국 도시은 좋은 여행지라는 말도 된다.

집을 구하자마자 외주로 일을 하면서 두 사람이 디지털 노마드에 대해 생각했다는 건

그만큼 마음에 안정을 찾았다는 뜻일 것이다.

물론 프리랜서라서 가능한 생각이었겠지만,

느슨하고 알찬 하루를 더 보내고 싶은 저자의 바람을 잘 보여주는 지점이다.

덕분에 인물탐구에 적었던 나의 오랜 꿈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한 가운데 나무가 있는 큼직한 수영장에 있는 타쿠의 모습은 빛나보였다.

율리의 수영장 관찰일지에서 나도 그 사람들 중 하나였으면 했다.

내가 쓴 글과 여행지를 대하는 태도는 타쿠와 비슷해서 자꾸만 그의 글을 들여다보게 된다.

치앙마이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마음속 울림과 살아가는 것은 전혀 관계가 없다고 본 그의 태도였다.

오히려 일상이란 건 잔잔한 파도인 편이 낫다.

날마다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것도 조금 피곤할 테지.

요컨대 일상에는 시시한 구석이 필요한 것이다.

치앙마이에서는 좋은 쪽이든 안 좋은 쪽이든 무리해서 마음을 크게 쓸 필요가 없었다.

대부분의 일들이 “이런 게 뭐 별일이야?” 정도로 넘길 만 했다.

조금 시시한 구석이 있긴 해도 나는 그런 생활에 더할나위 없이 만족했다.

p. 147

세 달 간 지낸 타국에 묘사도 자주 나온다.

이국적인 풍경은 언제나 신기하고 꼼꼼하게 포스트잇을 붙이며 읽게 된다.

율리가 추천한 사원인 왓 체디루앙과 같은 건축물을 직접 보고 싶고

힘세고 강한 밥이라고 묘사한 스티키라이스와

벌크업 오렌지라는 별명을 선사받은 포멜로도 먹어보고 싶다.

그 중 태국 사람들은 태어난 요일별로 운세를 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성격과 부처상, 행운의 색깔, 방위, 숫자, 동물을 알 수 있는데,

내가 무슨 요일에 태어났는지 처음으로 궁금해져서 찾아보았다.




강렬한 충격을 한 번 겪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자극의 역치가 올라가

웬만한 자극에도 끄떡없게 된다.

모르긴 몰라도 그날의 경험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너그러움 한 방울을 더한 것이 틀림없다.

덕분에 웬만큼 허름한 음식점이나,

길거리 좌판 음식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의도치 않은 충격요법의 효과는 굉장했다.

-

멋진 음식은 영혼조차도 살찌울 수 있다고 믿는 식도락 신봉자로서

치앙마이에서 지내는 동안 즐겁게 식사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세게에서 손꼽히는 진미 중 하나인 태국 음식을 현지 맛 그대로,

싼 가격에, 원 없이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는데

거스를 수 없는 취향 때문에 즐기지 못했다면 돌아와서 얼마나 아쉬웠을까?

p. 223

제주도에서 하늘이와 고기국수를 먹었던 일이 생각난다.

나는 율리와 같이 현지음식을 찾아다니고 맛을 중요하게 여기며 도전하는 편인 반면,

하늘이는 타쿠와 같이 확실하게 보장되어있는 익숙한 맛을 좋아하는 편인 것 같다.

그래도 신기한 건 둘 다 힘든 것도 추억이라고 여기며 사서 고생하는 경험파였다는 점이다.

이른 아침부터 걸어 다니고 점심으로 왼쪽에 있는 김밥천국을 갈 것인지

오른쪽에 허름한 낡은 음식점에 들어갈 것인지 고민을 했다.

하늘이의 만류에도 이때까지 제대로 된 제주도 음식을 먹어본 적 없다고 설득해서 들어갔다.

문을 옆으로 드르륵 열자마자 한눈에 식당이 다 보였다.

구색만 갖춘 부엌에 할머니 혼자 계셨고 나이든 테이블과 의자가 드문드문 놓여있던 곳이었다.

음식을 시키면 어떻게 요리하는지 과정을 다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 둘은 고기국수 두 개가 나오고 첫 입 먹는 순간 대화도 안하고 깨끗하게 다 비웠다.

서로 연신 맛있다고 웅얼거렸고 하늘이는 나오는 길에 비행기 타기 전 여길 또 오고 싶을 것 같다고 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격한 공감을 했다.

이렇게 서로의 접점을 만들고 특별한 유대감을 갖는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다.

이 책의 저자 율리와 타쿠가 그랬을 것이다.

서로 좋아하는 걸 이렇게 저렇게 섞어 두 명의 시간을 보내던 기억들이어서 새롭고 재밌었다.

구름이 가득한 듯 아쉬움이 들던 기분은 비단 날씨 때문이 아니었다.

북적이는 인파 때문도, 사원이 멋지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었다.

새해니까 좋은 구경을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

유명한 만큼 멋있을 거라는 짐작,

화창한 날만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사원에 들어섰으니 눈앞에 뭐가 있었던들 마음에 들었을까.

-

회색빛 하늘 아래 펼쳐진 치앙마이 전경이 아늑하고 친근하게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더운 날이 대부분인

태국에서는 흐린 날을 좋은 날씨라고 부른다 했다.

-

치앙마이가, 왓 프라탓 도이 수텝이, 스님의 축복이,

그리고 사원을 향해 집을 나섰던 나의 선택이 만들어준 새해의 인사였다.

복 많이 받으세요.

매일이 첫날인 듯 좋은 날들을 보내세요.

해피 해피 해피.

p. 132

여행을 다니며 나도 들었던 압박감이여서 공감을 많이 했다.

짧은 일정에 쉬지 않고 무조건 꽉 찬 일정을 채우는 게 알찬 여행일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하루 화려하고 신나지는 않아도 매일이 은은하고 빛나고 안심되는 것.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게 되면 작은 일들을 먼저 알아차리게 된다.

특히 사소하지만 삶에 계속해서 영향을 끼치는 부분들 말이다.

아침을 챙겨먹고 (그것도 직접 요리한 음식들로!)

운동을 하게 된다는 거나. (노을이 지는 수영장에서!)

실수를 하면 웃으며 넘어가게 된다거나.

저도 배워갑니다.

사바이 사바이 사바이.


적당한 길이와 너무 가볍지 않은 무게의 생각들.

힘들이지 않고 담은 사진들과 두 페이지에 꽉 찬 그림들.

웹툰 같은 콘텐츠를 종이로 옮겨오면 아쉬움이 느껴질 때가 많았다.

굳이 돈 들여서 책을 사야할 이유를 못 느끼는 구성이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인스타그램에서 그렸던 열 컷과

두 사람의 생각이 사이사이 들어간 에세이가 책의 소장가치를 높여준다.

마치 아는 사람의 일기를 훔쳐본 느낌이다.

저자가 직접 그린 치앙마이 투어 맵까지

아기자기하고 담담하게 담은 그들의 일기장을 언제든 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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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 나로 존재하는 용기 - 진실한 삶을 위한 실존주의적 처방
고든 마리노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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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넘게 붙들고 있던 책이다.

어렵다기 보다는 온전히 그의 생각을 이해하기 어려워

자주 멈추며 곱씹어서 읽게 되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가장 많은 포스트잇이 붙은 곳은 6장 도덕성이었고

진도가 나가지 않았던 곳은 5장 신앙이었다.

내가 최근에 봤던 레이디 버드라는 영화를 흥미롭게 봤고,

극 중 카톨릭계 고등학교의 학생인 레이디 버드의 감정이 잘 읽혔기 때문이다.

영화 시작 5분 만에 수업에서 수녀님은

‘대표적 신학자인 오거스틴과 아퀴나스와 내가 좋아하는 키르케고르...

아, 그의 러브 스토리를 들으면 너무 멋져서 다들 기절할걸?’ 라고 언급하는데

이 책 240-242쪽 7장 사랑에 간략하게 나와 있다.

자주 갸우뚱 하며 읽었던 부분이었고

특히 파혼 이후의 그의 행동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종교와 사랑에 관한 내용은 우선 제쳐두고 이해했다고 생각한 부분,

깊이 공감한 내용 위주로 다루려고 한다.


삶은 낭만적인 여정이 아니라 힘겨운 고행이라는 사실을,

실존주의자들이 솔직히 인정하고 다루었기 때문에

나도 저자와 같은 이유로 그들에게 끌렸다.

그리고 단순한 불평불만에 넋두리를 늘어놓지 않고

삶을 선물로 보는 관점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고든 마리노가 쓴 키르케고르의 사상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초반에 실존주의적 지혜를 동원해서도

해결책을 찾아낼 수 없었던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전제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시되는 실존적인 지혜들 (불안, 우울과 절망, 죽음, 진정성, 신앙, 도덕성, 사랑)이

피부색과 성별의 차이 없이 모두에게 적절한 지침이 되는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

과연 동일하게 똑같은 유형의 과제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에

키르케고르는 그렇다고 대답할 가능성이 무척 높다고 했고

저자는 이 부분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가령 흑인이 자신을 발견하고 그 자신이 되려면,

백인보다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악의적인 상황과 의심하는 눈빛을 이겨내야

비로소 자신에게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본인에게 허락되지 않는 성찰의 공간에 자신들은 접근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하기가 때로는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런 본질적인 진실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진실에 의거해 행동하는 방법을 아직 모르는 것이다.

p. 47-48

절망에 빠진 사람은 ‘무엇인가’ 때문에 절망한다. - 그 순간에 진정한 절망은, 즉 진정한 형태의 절망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무엇인가’ 때문에 절망할 때, 그는 실제로 ‘자신에게’절망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한다. -

p. 91

6월은 내게 가장 힘든 달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절망을 자꾸 곱씹어야 하는 상황을 만든 한 가지의 일로

해야만 하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2년 간 많은 물을 길어와 비로소 깊고 잔잔해진

이십 대의 생활을 가진지 반년도 지나지 않았다.

올해의 목표를 해야만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균형을 잡고

미뤄두었던 일을 꾸준히 하는 것, 즉 나의 세계 속 방대한 바다의 일부를 빙하로 만드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일로 6월은 없는 달처럼 보냈다.

운동도 가지 못했고 겨울잠 자듯 이불속에 오랜 시간 있어도 머리는 깨질 듯 아팠다.

외주 작업이 두 건이나 들어왔지만 모두 거절했고

그토록 열심히 했던 공부를 손에 놓았다.

지각을 할까봐 뛰는 일도 없었고

그 일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건 멈췄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말하면,

주일 이상 지속되는 부정적인 감정은 심리학적으로 불길한 징후로 생각하라는 주장이 많지만,

그렇다고 당사자가 차분하게 앉아 묵상하며 그 감정을 처리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p. 97

현실 세계에서 허둥대는 친구들만이 아니라,

거울 속에서 용감하는 척하는 친구들까지

“바닥까지 떨어져야 새롭게 시작하며 더 나아질 수 있어!”

라고 단언하는 소리를 적잖게 들었다.

그러나 바닥은 없고,

우리는 항상 더 깊이 추락한다는 걸 알고 있던 키르케고르는

“공허함에서 현기증을 느끼고,

그 현기증에서 최후의 기분 전환을 모색하려는 것이 우울의 소심의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이때 성실한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정신차려! 우울이 절망으로 발전하는 걸 용납하지 마!”

라고 소리칠 것이다.

p. 100

다른 건 몰라도 이 부분은 정말 뼈저리게 공감했다.

물론 지금도 바뀐 건 없다.

누군가를 겁먹게 하는 건 그리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는다.

내가 저지르지 않은 일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화가 자주 날 것이다.

고통에 굴복할 때 우리가 하찮은 존재라는 자각을 받아들일 때

진정한 자유가 밀려온다고 패링턴은 말했다.

받아들이기 힘들어도 나의 일이 되었고 앞으로도 신경써야 한다고 정리했다.

이러한 자각이 에너지를 주진 않았다.

생각만 많아질 뿐이고 몸을 움직이면서 놀아야 한다는 그의 말처럼 운동을 다시 시작했고

불면증을 혹은 겨울잠을 고치려 애를 썼다.

나를 뒤흔든 그 사람이 자신의 역할을 하는 데 실패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나의 실패가 아니다.

그가 쓰러져도 나는 함께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하나 배웠다.

그래도 앞으로 부디 내가 넘을 수 있는 적당한 양의 문제들을 보여주면 좋겠다.

내가 지나치게 강해지고 철들 필요가 없도록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시대정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우리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명확히 해야 설득력이 있다.

나는 미네소타에서, 그것도 주민들이 휴가 계획을 세우고

자식들이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라며,

자신은 요가 수업이나 교회에 나가는 구역에 살고 있다.

이런 성향을 ‘미네소타 나이스’라고 일컫는다.

예컨대 당신이 어떤 사람의 집에 들려 생일 선물을 준다면,

십중팔구 당신이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감사 카드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미네소타 사람들조차 ‘미네소타 나이스’라는 말로

‘미네소타 아이스’를 감출 수 있을까 의심한다.

달리 말하면, 마음속으로는 미네소타 사람들도

반듯한 행실과 예의 바른 행동이 진정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p. 135

내가 ‘진정성’에 대해 고민했던 내용의 핵심을 잘 짚어주었다.

키르케고르는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 반듯하고 충직한 사람이 되는 법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었다.

성실하려면 많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지만 새롭게 알아야 할 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성 또한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한결같은 삶을 산다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단순히 가식적인 행동을 삼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알고 지내는 많은 사람도 결코 가식적이진 않아도

다른 사람의 의견에 냉담할 정도로 무관심하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 나는 그들이 진실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는 진실하다는 것을 진정한 자신이 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니체와 사르트르와 하이데거의 생각에,

우리는 문화와 감정, 경험과 평가 등이 혼란스럽게 뒤섞인 존재이다.

우리는 이런 혼합물로부터 우리 자신을 창조해낸다.

이런 점에서 우리 삶은 하나의 예술 작품과 다를 바가 없다.

-

진정성이 버킷리스트나 자아실현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예컨대 당신은 모든 잠재력을 발현해서 피카소 같은 화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키르케고르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잠재력을 발현한다고 당신이 진실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때 진실한 존재는 당신의 진정한 자아, 즉 신이 당신에게 의도한 자아를 뜻한다.

-

하지만 영적으로 결벽증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키르케고르는 진정성에 대한 다른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전통적으로, 지식은 ‘옳은 것으로 입증된 믿음’으로 정의된다.

키르케고르에게는 ‘옳고 그름’과 ‘입증’보다 ‘믿음’이 더 중요하다.

또 키르케고르에게는 ‘어떻게’가 ‘무엇’만큼이나 똑같이 중요하다.

어원적으로 말하면, 라틴어와 독일어 모두에서 ‘진정성’이란 개념은

무엇인가를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뜻과 본질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p. 146-148

가령 인스타그램에서 어떤 의견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이 아닌,

그 의견을 적극적으로 우리 자신과 관련짓고

행동으로 표현함으로써 우리 생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키르케고르와 저자는 그 믿음을 신과 관련짓고 있다는 점을 염두해두지만,

나는 관계에 대한 믿음으로 보았다.

그래도 자아에 대한 내용은 위와 마찬가지로 동의한다.

키르케고르는 자아를 개별적인 것으로 보고

보편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어떤 학문도 자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만 언급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인생의 경이로움이 있다.

내가 누구인지는 오직 나만이 알기 때문에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학문도 모르는 것을 알고 있는 셈이다.”

p. 178-179

어떻게 이렇게 세련된 표현으로 자아를 정확하게 정의했을까 싶다.

그가 옳다면, 자아에 대한 간결하고 정확한 정의를 기다리기보다

당장 우리 자신이 되려는 과제를 시작해야 한다.

키르케고르의 경고처럼 “첫째로 명심해야 할 것은 모든 인간은 개개의 인간이므로,

개개의 인간이 되겠다고 의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여기서 기독교를 믿는 키르케고르와 저자는 하느님과의 관련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다면 진정한 자아도 배제될 수 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신앙에 관한 의견은 천차만별이고 나 또한 무신론자는 아니지만,

교리와 체제에 묶인 특정 종교에 회의감을 겪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거부감이 든 건 사실이다.

여러 번 읽었고, 물론 계속 읽어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종교와 정치는 친한 사이에서 다루는 주제가 아니라는 말이 있지만,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멀리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키르케고르는 필명을 사용한 글에서 독자의 삶을 편하게 해주기보다

더 힘들게 하려고 깃펜을 잡았다고 말했다.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글을 쓰려고 하고

불편한 영화를 찾아보는 이유와 비슷해서 반가웠다.

우리가 지적으로 성숙해지고 도덕적인 문제를 분별할 수 있게 되면

삶이 점점 더 까다로워진다.

피할 수 없으면 잘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내용은 도덕성에 관한 내용에 나오는데,

이 장에 포스트잇을 많이 남긴 건

키르케고르가 정리한 도덕성의 개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고

니체가 왜 유명한지 알았기 때문이다.

니체는 건강하다는 것을 체력과 정력에 국한하지 않았다.

그에게 건강한 사람은 자유로운 영혼,

즉 군중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기만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각자 자기만의 태양계에서 살아간다.

따라서 그곳에서 그들을 찾아야 한다”라고 묘사했다.

그처럼 자신을 스스로 규정한 사람은

“대기가 없는 별이다.

안쪽을 향해 활활 타오르는 그의 눈동자는

바깥쪽에서는 순전히 겉으로만 차갑고 싸늘하게 보인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자부심을 등에 업고 어리석고 타락한 파도를 이겨낸다.

그는 그런 상황을 혐오하며 그들로부터 멀어진다.” 라고 덧붙였다.

대부분 불멸의 지성이 그렇듯이

니체도 인지 부조화를 용인할 능력이 있었다.

니체는 근본주의적 무신론자였지만,

진실한 신자들이 믿는 신의 존재를 인정했다.

또한 노예 반란이 자체의 결함과 잘못에도 불구하고

내면세계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거리낌없이 인정했다.

모험과 정복을 꺼리는 사람들도 노예 반란 이후로는

자신의 내면세계에서 모험을 추구하고 시도했다.

-

하지만 모든 것을 고려할 때,

니체는 민주적 가치와 결부시켜 노예 반란과 노예 도덕이

우리를 허무주의로 밀어낸다고 판단했다.

니체의 허무주의는 두 극단과 두 관심사,

즉 노동과 쾌락, 일과 오락만이 존재하는 마음 상태를 뜻한다.

19세기 말, 니체는 인간이 권태에 빠져들고,

‘말종 인간’처럼 ‘측은한 안락함’에 불과한 것-

예컨대 슬리퍼, 평면 텔레비전, 액션 영화-을 갈구한다고 묘사한다.

문화가 더욱 개화되고 관료화되자,

지독한 합리주의자이며 원조 페미니스트인 존 스튜어트 밀도 똑같은 불만을 쏟아냈다.

p.204-205

니체는 협력을 미지근한 이상보다 개인의 위대함과 힘, 경쟁력에 더 큰 가치를 두었다는 점에서

비난을 면치 못했다고 언급하는데 더 많은 그의 책을 읽어보고 판단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우선 도덕의 계보학부터 읽어야지!

니체는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철학자였는데,

우리가 두려움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성격이 형성된다고 말한다.

육체적 용기와 도덕적 용기를 동일시하는 것은 실수일 것이다.

그러나 궁지에 빠진 상황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어쨌든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린 적이 있는 사람과 협력할 것이다.

니체는 언어학적 조사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내가 그의 생각이 궁금해진 이유 중 하나다.

도덕과 관련된 표현들의 의미 변화를 분석해서 가치관의 변화를 추적했다.

예를 들어 선한 것이란 단어에는 편화와 관련된 함축이 있지만,

과거에는 전쟁과 관련된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서 밀을 원조 페미니스트의 수식어를 왜 굳이 붙였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그것도 6장 도덕성에서 언급되었고 사랑에 관한 내용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밀과 해리엇의 사랑은 마음이 뭉클하지만,

19세기 여성은 참정권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영국 사회에서 살았다.

여권을 신장하는 건 기득권인 남성의 입장에서 득이 된다는 그의 설득은 잘못된 접근이라고 본다.

양성평등의 실현과 인류애적인 가치가 아닌

권력을 약간 양보해야 우리에게 이롭다는 것,

경제학적인 관점에서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아내를 너무 사랑했고 당시 시대상황을 고려하면 이런 권력 중심적 해석이 당연하지만,

21세기에 글을 쓴 고든 마리노는 이와 같은 수식어를 붙이기 전에 한 번 더 고민해봐야했다.

저자가 직접 글을 쓴 건지, 번역에서 바뀐 단어인지는 모르겠지만,

결혼한 여자를 집사람으로 읽히도록 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가 총명함을 자만하며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어떤 것도 믿지 않을 것이므로 어떤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을 거라고 의기양양해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사랑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속을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우리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그때는 속지 않을 것일까?

우리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속을 수 있다.

진실이 아닌 것을 믿음으로써 속을 수도 있고

진실인 것을 믿지 않음으로써 속을 수도 있다.

p.43-44

내가 생각한 이 책의 최고의 문장이다.

앞으로 자주 생각해보고 싶다.

우리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사랑이 필요하다.

또 다른 사람의 사랑으로 성장하고 그 사랑을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여기서 언급되기에는 너무 광범위한 문제이지만,

인종차별과 억압이 그런 사랑을 방해할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우리의 능력을 크게 훼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키르케고르는 정신의 삶은 정지 상태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무엇이 옳은지를 아는 바로 그 순간에 그것을 행해야 하고

그 후에는 의지는 어떻게 인식된 것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라는 문제가 뒤따른다고 말한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하지 않게 풀어놓은 글을 읽었다.

나를 이루는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과거로 자꾸 돌아가는 내가 두려워지지 않도록 힘을 보태주는 글이었다.

삶의 굴레가 지겹게만 느껴지지 않도록,

어떻게 잘 나아갈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잘 돌아볼 수 있을지를 알려주었다.

단순히 키르케고르를 소개하는 연구서가 아닌

저자가 자신의 생각과 삶을 전달하는 것이 주를 이루고

사상가의 의견을 곁들여서 재미있게 읽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인 것 같았고

내가 느낀 철학이라는 학문이 이런 거라면 부담 없이 계속 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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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지 2019-07-02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과 시작 전에 본 리뷰에 끌려 읽다 보니 어느 새 종 칠 시간이네요. 탐구하는 독서의 힘을 발견합니다.
 
잠시 고양이면 좋겠어 - 왜 그럴까? 어떤 마음일까?
나응식 지음, 윤파랑 그림 / 김영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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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동네 사람들을 알고 싶다면,

그곳에 사는 고양이를 먼저 만나보라.’

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아이의 잘못은 부모에게서 오듯,

나는 세 살 아이에 불과한 고양이의 잘못은 함께 사는 사람에게 있다고 본다.

고양이의 감정 나이는 성묘가 되어도 사람으로 치면 세 살 정도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받을 수 있는 위험에 누구나 노출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타인이 아니더라도 어떤 생명과 함께 살아가면서 아무런 아픔을 느끼지 않고

아무 손상 없이 고스란히 처음에 느꼈던 애정만을 간직하고 있는 건 이상한 일이다.

그때는 관계를, 특히 그 속에서 만족을 느끼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의심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냥줍'

개인적으로 이 표현도 싫어한다.

‘주웠다’는 표현이 고양이를 존중하지 않는 것 같고 그만큼 책임감도 느껴지지 않아서다.

‘길에서 입양’이라는 표현이 좋을 듯 한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

p. 49

저도 동의합니다...

‘냥줍’이라는 표현에 자신의 책임을 지우는 것 같아 불편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하는지에 관한 내용에 단순히 집사, 다묘가정을 위한 독자뿐만 아니라

길고양이와의 관계에 대한 내용도 다뤄주어서 좋았다.

양동이 이론에서는 반려동물의 스트레스를 물로,

반려동물이 참을 수 있는 정도를 양동이로 표현한다.

물이 한 방울씩 모이다 보면 폭포수만큼 많아질 수 있다.

단 한 방울의 차이로 물이 넘칠 수도 있다.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어릴수록 한계 지점까지 이르러 물이 넘치듯 스트레스가 폭발하기 쉽다.

만약 당신이 함께 생활하는 고양이의 연령대가 3~7주령이라면 특히 그렇다.

고양이를 크게 놀라게 한 적 있는가?

갑자기 깨물어서 고양이의 코를 때린 적이 있는가?

바빠서 고양이의 화장실을 제대로 관리해주지 못한 적이 있는가?

이 몇 가지만으로도 이미 양동이 안에 물이 찰랑거릴 정도로 가득 채워졌을 수 있다.

물이 넘치기 시작하면 결국 문제 행동이 시작된다.

p. 105

모든 관계에 갑자기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관심 있게 보고 있으면 대부분 정말 오랫동안 많이 참아주었다고 답하게 될 것이다.

작은 자극이 쌓여 겨우 수면 위로 드러났을 뿐이다.

애초에 고양이가 싫어하는 상황에 노출시키지 않는 배려가 중요한 것 같다.

이 부분은 사람과 비슷한데,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잘 파악하는 게 공존의 핵심인 것 같다.

예를 들어 고양이는 물을 본능적으로 싫어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오래 전부터 사막에서 살았었기에 물에 익숙하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고양이의 경우는 5주만 되어도 스크래칭을 시작할 수 있고

모래를 선택하고 화장실을 가릴 수 있다는 점이 내가 느꼈던 가장 큰 차이였다.

애초에 대소변 교육은 존재할 수 없고 화장실 문제를 신경써주면

자연스럽게 스스로 관리한다는 점을 알고 우린 다른 종이 맞구나라는 걸 크게 느꼈다.

그 다음은 사람이 고양이에 대한 오해를 푸는 것이 뒤따라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양이 털로 기관지에 좋지 않거나 알레르기가 생길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특히 아이가 생긴 가정의 경우 파양까지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심장병 예방에 효과가 있는 연구 결과까지 있고

정확히는 고양이의 타액이 알레르기와 관련이 있다고 나와 있다.

따라서 자신이 알레르기가 있는지 없는지를 미리 알아볼 필요가 있다.

애초에 고양이와 함께 살기 어려운 몸이라는 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건강상의 문제를 넘어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건 새로운 관점이었다.

행동의 변화, 마음의 변화는 건강상의 변화를 동반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특히나 통증을 동반하는 질환은 고양이를 예민하게 만들거나

공격성을 띠게 하거나 한없이 소심한 상태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항상 마음의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는

건강상 문제가 없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p. 133-134

애정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

저자는 자신의 병원에서 지내는 아인, 아톰, 율이 등의 아이들에 대한 내용도 적었는데

아톰이 기억에 남는다.

아파보이는 고양이를 길에서 발견한 보호자가 강한 입양의지를 보이고 치료를 진행했으나,

자신이 없어 병원에 입양을 부탁하여 함께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전염성이 높은 바이러스로 격리 생활을 했고

완치 후에도 구석진 곳으로만 가려고 해서 걱정이 컸을 것이다.

다가와 주기를 2년간 기다려서야 저자는 ‘냐옹’ 소리를 들으며

손에 얼굴을 부비는 아톰을 볼 수 있었다.

사진을 보니 새하얀 윤기 나는 털을 가지고 있었고

등과 얼굴에는 알록달록 갈색 털이 찍혀있었다.

작년에 만난 유월이가 생각났다.

유월에 만나 아기 고양이까지 이끌며 어엿하게 성장한 길고양이다.

저녁마다 차가 자주 다니는 길가 하수구 구석에 앉아 있었는데

1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같은 자세로 가족 모두 나와 바라보곤 했다.

내가 만난 고양이 중에서 제일 작아서 눈길을 끌었다.

무엇보다 공개된 장소에서 무엇을 뚫어지라 쳐다보기 위해

그곳에 계속 앉아있기는 큰 고양이에겐 못 보던 광경이었다.

생존보다 세상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어리고 귀여웠고 걱정이 많이 들었다.

간식도 밥도 가끔씩 챙겨주면서 사이가 가까워졌고 살가워지기 시작했다.

길가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먼저 다가오기도 했는데

무사히 겨울을 넘기고 지금은 터를 잡고

아주 가끔 아기 고양이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톰은 만화주인공 철인 아톰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씩씩하게 자랐으면 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이름 같다.

유월이도 여름의 한낮처럼 생기 있게 지냈으면 좋겠다.

고양이와 사람이 느끼는 감정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반려동물을 의인화하는 건 위험하지만,

생각을 잘 전달하기 위해 이 방법을 쓰고 싶다.

고양이가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바로 이거다.

당연한 욕구를 가지고 있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개인주의이고

자신의 가치관과 예술적 교양을 아주 줏대 있게 잘 가지고 있다.

그런데 주변인물들이 정말 징그럽게 괴롭힌다.

고양이가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독특하고 까다로운 습성을 가졌다고만 생각한다.

본문에서는 고양이는 태어 난지 13주 이전에 사람 손을 타지 않으면

사람에게 강한 공격성을 보인다고 언급한다.

또한 안쓰러워서 길고양이를 충동적으로 입양했다가 어려움을 많이 겪곤 한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말처럼 '넌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을 져야 하는 거야.’

고양이 마음 탐구 영역에서 집사 역량 중급을 받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가능했던 점수 같고

고양이를 키우기 전까지 결코 고급 집사는 받기 힘들 것 같다.

내게 먼저 와준 고양이들이 생각난다.

거침없이 걸어와 곁에 자리를 잡고 앉는 고양이도 있었다.

그들의 행동과 피하지 않는 눈을 보니 이 동네의 인심을 알겠다.

유월이를 보살피는 동네 이웃을 만나기 시작했는데,

정말 고마운 일이다.


EBS <고양이를 부탁해>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알린 나응식 수의사의 고양이 전문서적이다.

방송을 통해 여러 고양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저자는

보호자들이, 사람들이 고양이에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준다.

가장 기본적인 걸 쉽게 생각하지 못하고 넘어가게 되는데, 잘 짚어주신 것 같다.

당연하게도 200페이지 정도에 짧은 분량을 읽고 고양이를 이해했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읽고 과거의 내가 어떻게 동물을 대했는지에 대해 떠올리고 관계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정리하려고 힘을 쏟기보다 무질서 속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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