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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 세트 - 전10권 - 2003년 개정판
나관중 지음, 김구용 옮김 / 솔출판사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 적 삼국지를 읽으며 대업을 이루지 못하는 유비가 왜 주인공일까 하는 데 의문을 가졌고, 불만이 있었다. 다시 말해 해피엔딩이 아니라서 실망한 거다. 왜 유비가 주인공인가? 촉한정통론이라는 용어를 구사하며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정설인 것 같다. 하지만 실패자였기 때문에 동정을 받은 것이 아닐까? 요즘도 밀리터리동호회등에서 2차세계대전을 이야기하며 명장을 꼽으라면 독일 장군들만 줄줄이 꿰곤 한다. 명장이 그리 많은 데 왜 전쟁에 졌을까? 당연히 승자인 미국 장군들이 더 명장이 아닐까?
그 이유를 저는 실패자에 대한 동정표로 이해하고 싶다. 바둑에서 묘수 3번 쓰고 이기는 바둑이 없다고 했다. 오죽 상황이 어려우면 바둑 한판에 묘수를 3번이나 찾아 내겠느냐는 얘기다. 바둑을 배우는 입장에서는 결과적으로 실패자지만 묘수를 쓰고 패한 사람에게서 더 배울 것이 많다. 세력이 약하고 몰리는 독일이었으므로 그나마 훌륭한 장군들 덕에 그 정도로 전쟁을 수행했을 수도 있고, 우리에게 더 드라마틱한 전사를 남겼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유비도 후세 사람들의 동정을 받아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이 된 것 일 수도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때문에 삼국지연의 같은 창작물에서는 패배자 중심의 새로운 관점에서 보는 것이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그러나 이 관점의 차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유비중심의 관점이 수 백년동안 민중에게 먹혀 든 이유일 것이다. 그러면, 왜 조조가 아니고 유비인가? 혹시 유비에게는 있었는데 조조에게는 없었던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은 덕인 것 같다. 서양은 몰라도 동양에서 제왕의 자질에 대한 키워드는 덕(德)이었던 것 같다. 유방이 항우를 이길 수 있었던 자질도 덕이 아닌가? 물론 유비가 실제로 덕을 지닌 제후였는 지 후세인의 창작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이것이 삼국지연의에서 유비가 주인공이 되었고, 수 백년동안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 잡은 이유라고 본다.
김구용선생의 동주열국지를 읽고 나니, 그 후의 이야기인 삼국지도 다시 읽고 싶어 졌으나, 일부가 품절로 구하기 힘들어 포기했던 김구용선생의 삼국지를 마침 세트로 구할 수 있어 반가웠다. 김구용선생의 삼국지연의는 기존의 유비중심의 삼국지연의를 완벽하게 풀어 주었다. 일설에 의하면 거의 대역 수준이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발매된 H님의 삼국지에 비해 권수는 적지만, 권당 쪽수가 더 많아 실제 분량은 적지 않다. (며칠 사이 기존의 7권짜리 판본이 절판 되고 새로이 10권 세트로 개정되었다고 한다. 책 사자마자 절판이라니 신판에 대한 욕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 한구석에 속은 듯은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오랜 기간 받아들여진 유비중심의 삼국지를 읽는 것은 충분한 의미가 있고, 수 백년동안 독자를 사로 잡았던 것은 바로 삼국지연의 그 자체였기 때문에 오히려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후에 다른 사람의 생각과 비교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또한 이 책에는 고서에 실려 있었을 법한 그림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으며, 고전으로서의 풍취도 느낄 수 있게 한다. 농담 하나.. 조조가 높이 평가 하는 것은 좋은데, 조조를 너무 추앙하다가는 혹시 조조와 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가기 전에 정 맞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