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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비서들 - 상위 1%의 눈먼 돈 좀 털어먹은 멋진 언니들
카밀 페리 지음, 김고명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멍청했나 싶어요.
그렇게 큰 빚을 지면서
대학을 나오고도 제대로 된 진로 계획이 하나도 없었다니 말이에요.
근데 그땐 날 이끌어줄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우리 부모님은 영어는 아예 까막눈이에요.
내가 대출 서류에 서명할
때 그놈의 숫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한테 알려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땐 마냥 다 잘될
줄로만 알았어요.
내가 나한테 투자하고
있으니까 잘하고 있는 줄만 알았죠."
(165p.)
표지부터 화려한 이미지의 <도둑비서들>은 언론대기업 타이탄의 여비서들이
자신의 학자금 대출 상환을 위해 회사공금을 횡령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쫄깃한 이야기다.
표지 아래 작은 글씨로 젊은 '흑수저'들의 환상을 충족시키는 통쾌한
풍자소설,
상위 1%의 눈먼 돈 좀 털어먹은 멋진 언니들, 이라는 수사를 보고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말하려하나하는, 막연한 추측을 했는데 나도 학자금 대출을 상환하려고 노력했던 시기가 있었고 그래서 그
마음이 어떨지 알겠어서 더 관심이 갔던건 사실이고 책 소개를 보면서 한국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고 해외에서도 젊은이들은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것을
알고 내용이 궁금해졌다.
소설에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여자가 세상에는 손만 뻗으면 거머쥘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자신들의 행동은 절대 도둑질이 아니었음 말하면서 시작한다.
처음은 로버트 회장의 비서 티나 폰타나가 눈먼 회삿돈을 자신의 학자금 대출을 전액 상환하는데
쓰게 되고 이것을 타부서의 비서인 에밀리가 알게 되면서 티나에게 그녀의 학자금 대출 또한 해결해 주지 않으면 횡령을 회사에 알리겠다고 협박한다.
어찌보면 작은 횡령?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에밀리 말고도 또다른 여비서들과 주변 몇몇도 이와 관련된 내용들을 알게 되어
그들의 입을 막기 위해 티나의 공금횡령 빈도수와 금액은 커질 수밖에 없게 되는 상황을 보면서, 심장이 쫄깃했다!
금액이 커지면 커질수록 불안감은 커지고 들킬 확률도 높아지는건 당연하니까..
어디서 이런 깡이 나왔는지 모르지만, 소설 속 그녀들은 회사 공금을 횡령하는데 별로 거리낌이
없다. 어떤 이는 부의 재분배 측면이라 생각하고 아예 이것을 전문적으로 활용해 비슷한 처지의 여자들을
도와줄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까지 만들었는데 티나의 남자친구의 가벼운 입으로 인해, 자신들의 처음 의도와는 상관없는 사회 공익성
프로그램으로 언론에 보도되어 점점 판은 커지고 결국 이들이 속해있는 기업인 타이탄 회장, 로버트의 귀에까지 들어가 법무팀의 조사를 받게
된다.
"이 나라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를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대학을
나와서 열심히 일하면 중산층으로 남부럽잖게 살 수 있다던 말이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지난 30년 동안
정치와 경제 지형이 변하면서 현재의 20대와
30대가 중산층이 되겠단 꿈을 이룰 가능성은 부모 세대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적어졌습니다.
우리가 게을러서,
직업의식이 투철하지 않아서, 과소비에 취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진짜 이유는 바로
우리가 이 시대의 피해자이기 때문입니다." (258p.)
학자금 대출로 대변되는 현시대 청년들의 문제를 다룬 조금은 가벼운 소설로 생각했는데,
읽는 동안 의외로 사회문제를 다루고 그것을 젊은이들에게 인지시켜 주고 싶어하는 작가의 노력이
보였다.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러니 너무 주눅들어 살 필요없다고. 조금씩 바꿔가면 되는거라고.
_366페이지라는 두께와 달리 가독성이 좋아 딱 두번 정도 끊어 읽고 마지막장까지 왔다는건 그만큼 작가가 재미있게 글을 썼다는 거겠지싶어
이력을 확인했더니 도서 전문 기자로도 도서관 사서로도 일한 경력이 있는 이였다. <에스콰이어> 편집장의 비서로 있을 때
<도둑비서들>을 집필했다고 하니 실제 일하며 그린 비서들의 모습이 어색하지 않게 표현됐고 이 소설이 첫 작품이라고 하는데 다음
책은 또 어떨지, 어떤 소재로 찾아올지 기대된다.
한편으로 이 소설이 재미있게 느껴졌던 것은 아마도 번역가의 힘도 컸던것 같은데,
시대에 뒤떨어지는 교과서적인 번역문체가 아니라 우리가 현실에서 사용하는 말투를 그대로 가져와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것이 소설 곳곳에 보여 보다 생동감 있었고
번역가의 이름대로 글에 맛깔난 고명을 잘 얹어 번역된 유쾌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