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폴리 근처의 절벽에 우뚝 서 있는 ‘로도스 기사의 성’ 유적에는 익명의 무덤이 있는데, 거기에는 "이곳이 아니었다"라는 비문이 적혀 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나는 그 말에 대해 생각했다. 그 말은 너무나 분명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우리가 참고 견뎌야 하는 모든 미스터리를 포함하고 있다.-35쪽
눈물의 위로도 받지 않은 채 나는 메마른 눈으로, 죽음이 그녀를 영원히 삼켜버리기 전 과거의 모습을 잠시나마 온전하게 간직하려고 마지막 몸부림을 쳤다. 죽음이 죽이는 것은 우리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우리 자신의 목숨이 아니기 때문이다. 죽음이 우리에게서 영원히 가져가는 것은 그들에 대한 기억이다. 흐려지고 희미해지다가 마침내 사라져버리는 모습이며, 바로 그때 우리도 죽기 시작한다.-318~3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