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카이퍼 - 리처드 마우가 개인적으로 간략하게 소개하는
리처드 마우 지음, 강성호 옮김 / SFC출판부(학생신앙운동출판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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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헤르만 바빙크, B. B. 워필드와 더불어 세계 3대 칼빈주의 신학자라 불리는 아브라함 카이퍼(1837-1920)는 전 생애 동안 다양한 직책과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목회자로, 대학 설립자와 신학교수로, 국회의원으로, 정당의 당수로, 네덜란드의 수상으로 일했다. 그러면서도 ‘10개의 머리와 100개의 손을 가진 사람이라는 별명답게 전 생애 동안 220여 권의 왕성한 저술활동을 했다. 이러니 아브라함 카이퍼를 하나의 잣대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아브라함카이퍼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카이퍼파리처드 마우는 매우 간략하고 개인적인 관점에서 카이퍼 신학 입문서를 내 놓았다. 만찬이 부담스럽다면 우선 가벼운 전체만 맛보라는 식이다. 그러면서도 카이퍼의 문화 신학에 대해서 매우 일목요연한 가이드를 제공한다.

책의 구성은 매우 단순하고 부담 없다. 1부는 카이퍼의 문화 신학을 개략적으로 소개하고, 2부에서는 21세기에도 카이퍼의 사상이 여전히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다각도로 묻는다. 그의 대답은?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다는 카이퍼의 영역주권사상은 여전히 의미가 있으며 다원주의가 팽배한 21세기에 성경적 대안으로서 더욱 가치가 있음을 제시한다. 개인적으로는 카이퍼의 사상을 넓게 조망해보며 생각을 확장해 봄직한 세 개의 퍼즐 조각을 건졌다.

첫 번째 조각은 카이퍼파가 바빙크의 온건함을 배워 갱신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제안이다(121). 칼빈주의와 다른 기독교 전통을 비교함에 있어서 매우 적대적이었던 카이퍼에 비해 바빙크는 매우 온건하고 관대했다. “그리스도의 삶은 매우 풍성해서, 그 완전한 영광을 딱 하나의 형태나 한 교회의 담벼락 안에서만 나타내는 것은 아니기때문이었다(126). 칼빈주의는 분명 위대한 기독교 전통의 주류이긴 하지만,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분명하게 사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 않은가? 다른 기독교 전통과의 대화의 문을 열어 카이퍼의 사상을 발전시키자는 저자의 제안은 매우 고무적이다.

두 번째 조각은 약화된 영역을 위해 교회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183). 사실 카이퍼는 문화적 순종이라는 전체적인 틀에서 교회의 역할을 상당히 제한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갈수록 약화되는 가정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보완하기 위해 교회가 뛰어들어야 할 필요가 대두된다. 교회 목회자로서 흔들리는 가정들을 보며 고민했던 부분과 맞닿아 있는 저자의 주장은 큰 공감을 이루며, 이는 교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일에도 부합하기에 그 의미가 크다.

세 번째 조각은 카이퍼의 영역주권사상이 십자가 아래에 있음을 확인한 점이다(203). “모든 것이 내 것이라는 외침을 잘못 이해하면 자칫 정복주의와 힘의 논리로 오도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영토의 주인 되신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신 구세주요 섬김의 주이셨다. 예수님을 따르고자 한다면 주 예수님께서 명령을 내리실 자리를 쟁취하신 골고다 언덕으로 가는 길을 기억해야 한다(204). 삶의 전 영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외치는 교회는 십자가 아래에 있는 교회여야 한다. “내 것이라는 카이퍼 사상은 테레사 수녀의 옷을 입고 있다.

주어든 세 조각의 퍼즐은 지금 여기서 고민하는 문제들이다. 다름을 틀림으로 보려는 오만이 자꾸만 꿈틀거리는 현실 속에서 여전히 교회에 대해 고민하며 사랑하는 목회자이기에 그러하다. 결국 아는 만큼 본 것이고, 내가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읽음이다. 그래서 카이퍼와의 짧은 만남에서 주어든 세 조각의 퍼즐은 울림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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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적 제자도
존 하워드 요더 지음, 존 C. 누겐트.앤디 알렉시스-베이커.브랜슨 L. 팔러 엮음, 홍병 / 죠이선교회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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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마치 우리 속에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얼음 도끼와 같은 것이어야 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말이다. 얼음 도끼 같은 책. 사실 이런 책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급진적 제자도』는 나에게 그런 책의 하나로 꼽힐 것 같다. 더욱이 메노나이드 신학자요 성경적 평화주의 해석자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존 하워드 요더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면, 이 책에서부터 시작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 같은 요더의 문외한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요더의 여러 에세이들과 설교들을 편집한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가볍게 여기진 말라. 그의 메시지는 얼음 도끼 같으니까.

이 책을 편집한 세 명의 편집자는 책 제목에 급진적이란 수식어를 붙인 이유에서부터 설명을 시작한다. 그것은 극우나 극좌와 같은 한쪽에 치우친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 기원에 있어서의 뿌리곧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또한 그리스도에 관해 선포하는 메시지의 뿌리에는 십자가와 부활이 있다. 편집자들은 이 책을 통해 십자가와 부활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깨닫는 근원적 안목을 갖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익숙한 그리스도나 부활절에 잠깐 거론되는 십자가와 부활 말고, 날것으로서의 그리스도와 그분이 행하신 십자가와 부활을 대면해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자신의 삶을 돌아보라 한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한 마디로 불편하다. 그리스도께 순응하고자 한다면, 세상에 대해 불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세상이 불편할 수밖에 없는 복음적 부적응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았다. “나의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좇을 만큼 하나님의 돌보심을 충분히 신뢰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83). 엄중한 부르심 앞에 교계와 교회에서 벌어지는 잡다한 모든 일들이 단순한 말장난뿐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성경이 얼마나 위험한 책인지 아는 자가 제자이다.”

이 책은 거울로 삼아봄 직하다. 가끔 들여다보면 고치고 다듬고 반듯하게 해야 할 부분들이 여럿 보일 것 같다. 또한 요더의 다른 책들로 발돋움하기에 적절하다. 한 마디로 곱씹어봄 직하다. 비록 불편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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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을 선교적으로 읽으면 두 모델이 보인다
손창남 지음 / 죠이선교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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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라는 말이 현실 깊숙이 다가온다. 몇 년 전 교회에 등록한 한 여집사님은 사업상 몽골에 나가있는 남편 집사님과 오랜 기간을 떨어져 지내는 상황이었다. 현재는 일년의 2/3를 몽골에서 생활하며 한 여름과 한 겨울에만 이곳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한 동안 출석하던 어떤 가정은 아내가 조선족 출신인 다문화 가정이었다. 그리고 현재 청년 중 한 명은 태국 여성과 교제 중이다. 교회 위층에 있는 공장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있어서 아침 저녁으로 얼굴 인사를 한다. 그는 무슬림이며, 한국 여성과 결혼하여 두 딸을 둔 아버지다. 교회 아래층에 있는 어린이집에서는 등원하는 다문화 가정의 어린이들을 위해 다문화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학교 앞 전도를 나가보면, 외국인 어머니나 아버지를 둔 아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이미 다민족 사회이다.

인도네시아 선교사였고, 현재는 OMF에서 동원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손창남 선교사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의 다변화에 따라 선교모델도 변화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그것도 사도행전을 풀어서 우리가 미쳐 간과하고 있던 뿔푸리 선교 모델을 선보인다. 그 동안 사도행전을 통해 주로 읽었던 선교 모델은 사도 바울과 바나바의 조직적이고 의도적인 모델(이하 -바 선교 모델)이었다. 이 모델에 따라 교회에서는 선교사를 파송하거나 후원하고, 열정적인 일부 신자들을 중심으로 단기선교를 계획하곤 했다. 그러나 저자는 사도행전에 이 외에도 한 가지 선교모델이 더 있다고 말한다. , 사도행전 8장과 11장에 등장하는, 핍박을 피해 흩어진 신자들을 통해 이루어진, 비조직적이고 자발적인 풀뿌리 선교 모델이다. 오히려 풀뿌리 선교 모델이 있었기 때문에 안디옥 교회가 세워질 수 있었고, 안디옥 교회를 통해 바-바 선교 모델이 태동되었음을 생각할 때, 풀뿌리 선교 모델이야말로 바-바 선교 모델의 모판인 셈이다.

-바 선교 모델이 일부 특정한 사람을 통해 이루어지는 선교 모델이라면, ‘풀뿌리 선교 모델은 교회 구성원 모두가 선교 실천가로서 살도록 이끄는 방식이다. 21세기 다문화 사회인 한국 상황에서 풀뿌리 선교 모델이 교회 안에 활성화될 때, 그 파급효과가 얼마나 폭발적일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몽골에서 일년의 2/3을 살고 있는 여집사님이 그곳에서 선교사적인 삶을 산다면,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다문화 가정의 신자들이 한국에 들어와 있는 고향 사람들을 향해 선교사적인 삶을 산다면, 신자들이 이웃하고 있는 다문화 가정을 향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감 없이 실천한다면, 생각만으로도 초대교회의 역동성이 꿈틀거린다. 생각을 조금만 달리해도 선교현장이 문 밖에 와 있음을 알 수 있다.

풀뿌리 선교 모델의 당사자들은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저들은 교회의 아무런 지원 없이도 자신들이 흩어진 곳에서 자연스럽게 복음을 나누고 교회를 형성했다. 저들은 선교사적인 삶을 살기 위해 특별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고, 모교회로부터 지도를 받은 것도 아니다. 그저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을 유지하며 기회가 되는 대로 복음의 증인이 되었다. 그 결과 사마리아 교회가, 안디옥 교회가, 로마 교회가 세워졌다. 그 외에도 다양한 교회가 저들이 흩어진 지역에서 생성되었다. 무엇이 저들을 선교사적인 삶을 살도록 만든 것일까?

저자는 고난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63). 혹독한 핍박 속에서 초대 교회의 흩어진 신자들은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지닌 교회 공동체를 경험했고, 공동체의 동일한 DNA를 가지고 흩어진 저들은 곳곳에서 복음을 확산시켰다. 뜨거운 불구덩이 속에서 정금이 제련되듯이, 고난을 통해 신자들의 믿음은 더욱 순수해졌다. 예루살렘 교회가 그러했고, 문화 혁명을 통과한 중국 교회가 그러했으며, 캄보디아, 베트남, 그리고 구한말 조선과 일제 강점기의 한국 교회가 그러했다. 저자는 핍박이 없는 교회의 상황을 오히려 우려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손해가 아니라 도리어 유익이 되는 순간 신앙의 순수함을 평가할 기준은 사라지고, 기독교 타락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며, 신자들의 신앙은 약해지는 경우가 있다(65).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비교적 신앙생활이 용이한(?) 한국 상황에서 교회는 풀뿌리 선교 모델로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 없는 고난을 일부러 만들 수도 없지 않은가? 저자는 진실한 신앙 양심을 가지고 살려면 어느 시대나 말로 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종교의 자유가 확실히 보장된 사회이다. 이 책의 아쉬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저자는 사도행전을 탁월한 이야기로 풀어서 두 개의 선교 모델을 설명한다. 이야기는 쉽고 충분히 공감된다. 그러나 익숙한 -바 선교 모델을 설명하기 위해 할애한 지면을 차라리 풀뿌리 선교 모델을 어떻게 교회에 정착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더 깊이 다루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가 정말 설명하고 싶은 21세기 선교 모델이 풀뿌리 선교 모델이라면 의당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선교 모델의 변화는 단순히 모델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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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손님 - 예수님이 우리 집에 오신다면 IVP 그림책 시리즈 8
데이비드 짐머만 지음, 이지혜 옮김, 최정인 그림 / IVP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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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시절, 한 동안 교회를 자주 빠지던 시기가 있었다. 교회 선생님은 그런 나를 위해 <파인애플 이야기>라는 작은 그림책을 들고 찾아오셨다. 그것은 아름답고 예쁜 그림책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직수입한 듯한 이국적인 흑백 그림으로 채워진, 책 가운데를 스테플러로 꾹 눌러놓은 소박한 책자였다. 대신 선생님은 표지 안쪽에 알록달록 색연필로 예쁘게 꾸미시고 선생님의 마음을 담은 짧은 편지로 나를 격려해주셨다. 아마도 그것이 내 인생에서 처음 선물로 받았던 책이 아니었나 싶다.

이런 이야기 책이 다 있구나.” 선교사님과 원주민이 파인애플을 사이에 두고 갈등을 벌이는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표지 안쪽을 예쁘게 꾸미고 꼭꼭 눌러쓰신 선생님의 손편지가 무덤덤한 소년에게는 고맙고 한편으로는 쉽게 교회를 빠진 것에 대해 죄송했다. 선생님의 사랑을 담은 작은 그림책을 통하여 심기일전한 나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게 되었고, 지금은 목회자가 되어 다른 사람의 신앙을 격려하고 있으니, 참으로 세상은 살고 볼 일이다.

그림책 <뜻밖의 손님>은 내가 처음으로 받았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예쁘고 아름다운 책이다. 마음의 상처를 입고 관계의 문을 꼭꼭 닫고 살아가는 주인공을 찾아오신 예수님은 조금씩 그녀의 집을, 그녀의 대인관계를, 그리고 회사생활을 바꾸기 시작하신다. 그녀와 함께 살아주시는 예수님 때문에 그녀는 점점 더 그녀다워진다. 외롭고 쓸쓸한 삶이 풍요롭고 충만한 삶으로 바뀐다.

가볍지만 멋진 책이다. 이제 사랑을 담은 손편지를 꾹꾹 눌러 담아 전해지기만 한다면, 제목처럼 정말 누군가에게는 뜻밖의 손님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나처럼 당신에게도.

 

 

* 이 서평은 출판사가 책을 제공하여 독자가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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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으로 나서는 믿음 - 위험, 모험 & 용기의 신학 끌어안기
마이클 프로스트.앨런 허쉬 지음, 김선일 옮김 / SFC출판부(학생신앙운동출판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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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지금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것 즈음은 삼척동자도 알 듯하다. 그런데 이 책은 이러한 현상들이 복음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 처하게 만든 제도화되고 인습화된 교회로부터 탈피할 기회라고 역설한다.

이것을 위해 저자는 경계성코뮤니타스라는 낯선 단어를 들이민다. 경계성은 앞으로 일어날 상황을 견뎌야 하는 불편과 격동의 상황이다. 그리고 코뮤니타스는 모험적 사명을 통해 연대감을 경험하는 공동체적 현상을 말한다. 경계성은 코뮤니타스를 촉진시킨다. 함께 어려운 일을 겪고 나면 서로간에 끈끈한 무엇인가가 생기지 않는가? 교회가 경계성-코뮤니타스를 형성할 때, 비로소 원래 의도된 교회로 나아가게 된다. 한 마디로 야성을 회복한 교회가 되는 것이다.

경계성-코뮤니타스를 형성했던 공동체의 예는 믿음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을 필두로 초대교회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 문화, 사회 속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재향군인회, 스카이다이버들, 9.11사태를 경험한 뉴욕 시민들에 이르기까지 경계적 상황 속에서 친밀감을 경험한 그들은 모두 코뮤니타스가 되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회의 네 기능, 곧 예배, 공동체, 제자도, 선교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 교회는 더 이상 조직 원리로서 예배를 중심으로 다른 기능들을 해석할 것이 아니라, 선교적 관점에서 예배, 공동체, 제자도를 재해석해야 한다. 저자는 이러한 사고의 전환이 예배나 공동체, 제자도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촉진시킨다고 역설한다. 선교적 교회관이 교회의 기능을 회복케 하여 야성을 가진 교회로 만든다.

이 책은 부흥의 단초를 잃은 교회에게 속성으로 배우는 부흥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체질을 바꾸고 본질을 회복하라 요구한다. 그 시작은 내가 속해 있는 지역 공동체에서부터이다. 마음 문을 열고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지역 사회의 필요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경계성-코뮤니타스의 첫 걸음을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다양한 선교적 부르심에 응답하라고 조언한다. 안전을 추구하다가는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이란 경고와 경계적 상황으로 들어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저자의 충고는 충분히 공감이 된다. 다만 그 시작과 끝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하는 숙제가 남는다. 결국 모험으로 나서는 믿음만이 경계성-코뮤니타스를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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