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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을 선교적으로 읽으면 두 모델이 보인다
손창남 지음 / 죠이선교회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다문화’라는 말이 현실 깊숙이 다가온다. 몇 년 전 교회에 등록한 한 여집사님은 사업상 몽골에 나가있는 남편 집사님과 오랜 기간을 떨어져 지내는 상황이었다. 현재는 일년의 2/3를 몽골에서 생활하며 한 여름과 한 겨울에만
이곳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한 동안 출석하던
어떤 가정은 아내가 조선족 출신인 다문화 가정이었다. 그리고 현재 청년 중 한 명은 태국 여성과 교제
중이다. 교회 위층에 있는 공장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있어서 아침 저녁으로 얼굴 인사를 한다. 그는 무슬림이며, 한국 여성과 결혼하여 두 딸을 둔 아버지다. 교회 아래층에 있는 어린이집에서는 등원하는 다문화 가정의 어린이들을 위해 다문화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학교 앞 전도를 나가보면, 외국인 어머니나 아버지를 둔 아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이미 다민족 사회이다.
인도네시아 선교사였고, 현재는 OMF에서 동원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손창남 선교사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의 다변화에 따라 선교모델도 변화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그것도 사도행전을 풀어서
우리가 미쳐 간과하고 있던 ‘뿔푸리 선교 모델’을 선보인다. 그 동안 사도행전을 통해 주로 읽었던 선교 모델은 사도 바울과 바나바의 조직적이고 의도적인 모델(이하 ‘바-바 선교 모델)이었다. 이 모델에 따라 교회에서는 선교사를 파송하거나 후원하고, 열정적인 일부 신자들을 중심으로 단기선교를 계획하곤 했다. 그러나
저자는 사도행전에 이 외에도 한 가지 선교모델이 더 있다고 말한다. 즉, 사도행전 8장과 11장에
등장하는, 핍박을 피해 흩어진 신자들을 통해 이루어진, 비조직적이고
자발적인 풀뿌리 선교 모델이다. 오히려 풀뿌리 선교 모델이 있었기 때문에 안디옥 교회가 세워질 수 있었고, 안디옥 교회를 통해 바-바 선교 모델이 태동되었음을 생각할 때, 풀뿌리 선교 모델이야말로 바-바 선교 모델의 모판인 셈이다.
‘바-바 선교 모델’이
일부 특정한 사람을 통해 이루어지는 선교 모델이라면, ‘풀뿌리 선교 모델’은 교회 구성원 모두가 선교 실천가로서 살도록 이끄는 방식이다. 21세기
다문화 사회인 한국 상황에서 풀뿌리 선교 모델이 교회 안에 활성화될 때, 그 파급효과가 얼마나 폭발적일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몽골에서 일년의 2/3을 살고 있는 여집사님이
그곳에서 선교사적인 삶을 산다면,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다문화 가정의 신자들이 한국에 들어와 있는 고향
사람들을 향해 선교사적인 삶을 산다면, 신자들이 이웃하고 있는 다문화 가정을 향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감 없이 실천한다면, 생각만으로도 초대교회의 역동성이 꿈틀거린다. 생각을
조금만 달리해도 선교현장이 문 밖에 와 있음을 알 수 있다.
풀뿌리 선교 모델의 당사자들은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저들은 교회의 아무런 지원 없이도 자신들이 흩어진 곳에서 자연스럽게 복음을 나누고
교회를 형성했다. 저들은 선교사적인 삶을 살기 위해 특별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고, 모교회로부터 지도를 받은 것도 아니다. 그저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을
유지하며 기회가 되는 대로 복음의 증인이 되었다. 그 결과 사마리아 교회가, 안디옥 교회가, 로마 교회가 세워졌다. 그 외에도 다양한 교회가 저들이 흩어진 지역에서 생성되었다. 무엇이
저들을 선교사적인 삶을 살도록 만든 것일까?
저자는 ‘고난’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63). 혹독한 핍박 속에서 초대 교회의 흩어진
신자들은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지닌 교회 공동체를 경험했고, 공동체의 동일한 DNA를 가지고 흩어진 저들은 곳곳에서 복음을 확산시켰다. 뜨거운 불구덩이
속에서 정금이 제련되듯이, 고난을 통해 신자들의 믿음은 더욱 순수해졌다. 예루살렘 교회가 그러했고, 문화 혁명을 통과한 중국 교회가 그러했으며, 캄보디아, 베트남, 그리고
구한말 조선과 일제 강점기의 한국 교회가 그러했다. 저자는 핍박이 없는 교회의 상황을 오히려 우려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손해가 아니라 도리어 유익이 되는 순간 신앙의 순수함을 평가할 기준은 사라지고, 기독교 타락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며, 신자들의 신앙은 약해지는 경우가
있다(65).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비교적 신앙생활이 용이한(?) 한국 상황에서 교회는 풀뿌리 선교
모델로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 없는 고난을 일부러 만들 수도 없지 않은가? 저자는 진실한 신앙 양심을 가지고 살려면 어느 시대나 말로 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종교의 자유가 확실히 보장된 사회이다. 이
책의 아쉬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저자는 사도행전을 탁월한 이야기로 풀어서 두 개의 선교 모델을
설명한다. 이야기는 쉽고 충분히 공감된다. 그러나 익숙한
‘바-바 선교 모델’을
설명하기 위해 할애한 지면을 차라리 풀뿌리 선교 모델을 어떻게 교회에 정착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더 깊이 다루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가 정말 설명하고 싶은 21세기 선교 모델이 풀뿌리 선교 모델이라면
의당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선교 모델의 변화는 단순히 모델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