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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기완을 만났다 (리마스터판) ㅣ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평점 :
"#로기완을만났다 를 쓰면서 #공감 을 믿게 됐다." 라고 저자 조해진이 말했다.
#공감 이란 '대상을 알고 이해하거나, 대상이 느끼는 상황 또는 기분을 비슷하게 경험하는 심적 현상'이라고 한다.(두산백과)
작품의 화자인 김작가는 다큐멘터리 작가로 타인의 아픔을 진심으로 공감하고자 애쓰던 자신이 '소재'화 하여 업무로 다루는 모습에 환멸을 느낀다. 설상가상으로 다큐의 효과를 최대화하려는 계획으로 시일이 미뤄진 틈에 다큐의 주인공 10대 소녀는 악성 종양을 진단받는다. 선의가 악의가 되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뽑아 뒤흔든 가해자이자 악인이 되어버린 화자는 삶의 이유를 잃어버렸다.
화자는 우연히 탈북자 로기완의 일기 속 한 문장을 보고 무작정 그의 흔적을 밟는다. "그의 고독과 불안까지도 끌어안은 채 이 거리를 부유하고 있다는 일체감"을 느끼며, "그의 일기를 읽으면서 그의 삶을 배워가고 있는 사람" 김작가는 어머니의 시체를 판 돈으로 매일, 매 순간 "살아 남아야하는" 로기완의 고통과 아픔, 슬픔과 절망에 가닿기 위해 애쓴다. 자신이 그러했고, 어떻게, 왜 살아가야 하는지 수없이 질문했을테다. 벨기에 브뤼셀의 로기완의 삶에 진심으로 공감한다면 그처럼 화자도 다시 삶을, 삶의 목적을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화자가 로기완의 흔적을 따르고 결국 만날 수 있도록 돕는 박윤철 역시 잊을 수 없는 아픔과 죄책감을 가진 인물이다. 김작가와 로기완, 로기완과 박윤철, 박윤철과 김작가 이 셋은 결국 당신, 나 그리고 우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런지. 타인과 당사자는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진심을 다해 공감하더라도 타인은 결코 당사자에게 가닿을 수 없다. 어느 누가 감히 가족을 잃은 사람의 슬픔을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럼에도 진심을 담아 건네는 위로는 그 사람에게 가닿고 싶은 바람, 상대를 걱정하고 염려한다는 마음, 애정을 갖고 생각한다는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누군가(내가) 곁에 있다" 라는 의미일 것이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탈북자 로기완과 한국인 김작가는 그저 이방인일 뿐이다. 열악한 생존조건과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둘은 당사자로서 존재하며 또한 타인으로 존재한다. 화자를 따라가며 독자는 로기완의 또다른 제3의 타인으로 작품을 배회하고, 다시 당사자로서 내 삶을 반추한다. 작품의 결말에 화자는 로기완의 삶을 통해 자신에게 위로를 건네며 화해하고 삶을 되찾는다. 그리고 당사자로서 로기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건낸다. 비록 당사자와 타인은 결코 맞닿을 수 없지만 상대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서로의 타인'이 되어준다면, '우리' 라는 이름을 공유할 수는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