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미술사 - ‘정설’을 깨뜨리고 다시 읽는 그림 이야기
박재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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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에 대해 잘 알지 못 하는터라 내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두 번째 미술사」 는 부담없이 잘 읽히는 재밌는 책이었다. 책을 잡고 한 번도 내려놓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가장 처음에 소개하는 것은 고흐인데, 나처럼 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누구나 알고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통해 책에 몰입하게 했다. 닥터 후라는 드라마에 고흐가 미래로 와서 자신이 미래에는 사랑받는 화가가 되었고 자신의 작품들 역시 많은 이들에게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음을 보고 감격하는 장면이 있었다. 이 장면은 숏폼과 릴스로 재가공되어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널리 퍼졌었다. 저자는 과연 정말 고흐는 살아 생전 작품을 하나 밖에 팔지 못했던 것인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풀기 시작한다.


고흐가 죽고 동생 테오도 일찍 죽게 되었을 때, 테오의 아내는 어땠을까? 그간 시아주버님께 후원했던 돈도 만만치 않았을 것인데 빛을 볼만하니 죽어버리고, 남편도 죽고 생계는 책임져야 하고. 그녀가 야무지게 브랜딩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생계유지뿐 아니라 지금 이렇게 고흐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거장으로 기억될 수 있었을 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예술계의 라이벌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로워한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이야기처럼. 하지만 실제 이야기는 더욱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에게 자극이 되고 서로에게 한계를 뛰어넘는 성장의 가능성을 보게 하는 존재. 존중하고 우정을 나누며 대화하며 서로의 존재 덕분에 자신이 갈 수 있었던 한계를 뛰어넘는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게 하는 존재. 나는 이런이야기가 더 좋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고 기억되는 작가들은 브랜드가 잘 구축되어 있는 이들이다. 예술이 뛰어난 경지에 이르는 것만큼이나 자신을 브랜딩하는 것도 중요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파트도 너무 재미있었다. 대리석을 조각하는 것 뿐 아니라 그는 자기 신화를 조각하는 것에도 천재적이었다. 현대에서도 이런 식의 아티스트 신화 전력은 유효하니까.


다 읽고 나서 느낀 것은 재밌다는 감상이었다. 만들어진 신화와, 시간이 흐르면서 뒤얽힌 오해, 잊혀졌다가 시대적인 흐름에 맞아 다시 기억되고, 이름을 다시 붙여 작품의 가치가 달라지는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정설인 첫번째 미술사 보다 이 두번째 미술사가 훨씬 더 흥미진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보여지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들보다 그 이면과 맥락에서 읽을 수 있는 인간 보편성을 더 즐기는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프롤로그에서 말하듯 누가 역사에 남고 누가 사라지는가는 단순히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와 사회가 어떤 이야기를 선택해 기억하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에 아직 끝나지 않은 미완의 이야기들이 있음을 쉽고 편안하고 즐겁게 알게 하는 좋은 책, 두 번째 미술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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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주
강성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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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단일한 생명체였다. 하나가 아프면 다른 하나가 고통을 느끼고, 하나가 살면 다른 하나도 생명을 얻었다. 나무들은 땅에 깊이 뿌리 내리고, 가인들의 외침을 통과시키며 아이들을 품에 안았다. 잎맥을 타고 흐르는 아이들의 붉은 피가 뿌리 깊이 스며들었고, 숲은 오랫동안 생명의 성전을 이어온 방식 그대로 뿌리와 뿌리를 연결하여 그것에 맞섰다. 그 순간, 신은 콘크리트 성전 안이 아니라 숲 안에 있었다. 십자가와 제단이 아니라 나무뿌리에, 가지 안에, 작은 잎사귀 안에 있었다. 254p

만약 유림에게 신이 있다면, 그건 벽돌집에서 숭배하는 절대자나 창조주가 아니라 제 안에 유유히 깃든 신이었다. 260p

잃어버린 시간들이 산기슭 너머에서 이곳으로, 죽기 전에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아이들을 향해 고요히 행진해 오고 있었다. 280p

어지럽다. 혼란스럽다. 몽롱하다. 뭔가에 취해 갑자기 미로 한 가운데로 뚝 떨어진 것 같았다.

파사주는 그런 책이었다. 장르가 판타지인가 싶기도 할 정도로 사건을 명확하게 묘사하기보다는 감각적으로 흘러간다.벽돌집에서 도망친 두 아이 해수와 유림의 이야기가 어지럽게 파악된다.

파사주의 서사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지만 아이들, 특히 유림의 감정을 독자로 하여금 느끼게 하기 위한 실험적인 의도같은 것이 있는 것일까? 책장을 넘기며 아이들의 여정을 따라가는 입장에서는 사건의 전후 관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최대한 빠르게 멈추고 혼란스럽게 이리저리 바뀌는 이미지와 분위기들을 붙잡게 된다. 어쩌면 저자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조각난 듯한, 미로를 헤매는 듯한 느낌을 주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각을 감각 그대로, 감정을 감정 그대로 느끼는 것이 서툴기 때문이 아닐까. 벽돌집의 이야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상당히 불쾌한 경험이 될 것인데 이미지가 연속적으로 펼쳐지며 방어할 틈도 없이 불쾌한 감정과 감각이 날 것 그대로 전달된다. 해수의 의문, 유림의 불안, 아버지 선생님이 언급되거나 등장하는 대목에서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역겨운 어떤 것.

앞서 읽었던 소설 말뚝들과 비슷한 인상을 받은 것은 장편 시같다는 것이다. 몽타주처럼 이어진 이미지의 폭풍, 머리로 파악하기 전에 파고드는 감정과 감각. 벽돌집에서 아이들이 겪은 체험이 역순으로 배치되어 어떤 불길하고 불쾌한 예감과 함께 그 모든 것들이 무례하게 들이닥치는 느낌이 들었다.

파사주는 독자에게 하나의 정답을 주기보다, 아이들이 겪는 혼돈과 두려움을 체험하게 만드는 미로 같은 공간에 초대하는 데 목적이 있는 듯하다. 그 미로가 즐거운 탐험으로 느껴질지, 끝없는 방황으로 느껴질지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래도 나는 제목에서, 그리고 죽기 전엔 죽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유림의 모습에서, 벽돌집 옥상에서 지상으로 내려간 유림의 새로운 여정은 그 모든 무례함과 역겨움, 불안과 슬픔을 깨트리고 나아가는 모습일 것을 믿어의심치 않을 수 있다.

길고 지난한 애도를 마치고 나면 그렇게 새롭게 나아가게 된다고, 죽기전에 죽지 말라고 해수와 유림이 내게 말한다. 나도 그들에게 죽기 전에 죽지 말라고,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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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세계 세계의 검찰 - 23개 질문으로 읽는 검찰 상식과 개혁의 길
박용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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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느낌이 드는 표지의 책, 검찰의 세계 세계의 검찰을 받아들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검찰에 대해 내가 굳이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알아야 할까, 하는 것이었다.

책을 펼쳐보니 들어가는 말, 어쩌다 검찰 상식이 우리 사회의 필수 교양이 되었나. 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비단 독자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현대 문명은 철저하게 분업화되어 있다.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리라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이루어진 세계다. 그런데 정말로 어쩌다 검찰이 이 모양이 되어 시민들 모두가 검찰 상식에 대해 알아야 하게 되었고 우리 검찰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하게 되었을까. 도대체 내가 내 자리에서 내 일을 열심히 하는 동안 검찰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리고 왜 그랬던 것일까.

검찰 개혁은 '선량한 검사'가 아닌 '최악의 검사'를 전제로 출발해야 합니다. 검찰은 애초 불공정하고 정치적이며 부패하기 쉽고 조직 이기주의에 매몰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런 최악의 검찰조차 검찰권을 올바르게 행사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 제도를 설계해야 합니다. 27p

딱딱하고 재미 없을 것이라는 인상과 달리 책은 아주 친절하고 술술 잘 읽힌다. 검찰개혁을 ‘최악의 검사’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지적은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는 속담을 떠올리게 한다. 까마귀 무리에 백로가 들어가서 까마귀가 백로의 영향을 받는 것보다는 백로가 까마귀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선량한 검사, 이상적인 검사, 좋은 사람은 사실 흔하지 않다. 인간은 우리가 꿈꾸는 것처럼 이상적이고 훌륭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까마귀도 백로인 척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비단 검찰이 아니라도 도화지같던 이가 어떤 조직에 들어가 그 분위기에 물드는 일들은 비일비재하여 찾아보기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도 하다.

잘못 기소될 경우 피고인이 입는 피해는 더욱 클 수밖에 없습니다. 중대 범죄를 수사하는 기관일수록 편파적이지 않고 공명정대해야 할 필요성도 그만큼 커집니다. 80p

아니면 말고 식의 내부 고발을 당해본 입장으로 이 말에 깊이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일단 기소되는 것만으로도 피고인에게 큰 타격이 갈 수 밖에 없고, 조사를 받고 끝끝내 무죄를 받게 되더라도 피고인의 시간과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는 보상받을 수 없다. 애초에 이런 경험을 하게 되는 것부터가 매우 폭력적인 일인데, 잘못한 게 없는 상황에서 편파적이고 공명정대하지 않은 일처리를 겪게 되면 인간 문명에 대한 염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기소prosecurtion와 박해persecution는 영어 철자가 비슷합니다. 기소에 약간의 왜곡과 조작만 가하면 누군가를 박해하는 수단으로 변한다는 점을 보여 주는 듯 합니다. 현실과 철자법의 묘한 일치입니다. 87p

검찰권의 분산과 제한 등 구조적 검찰 개혁이 하나의 답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권한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아무리 정밀하게 제도를 다듬어도 빈틈은 있기 마련이고, 그 틈을 비집고 권력의 독버섯은 자라기 마련입니다. 사후적으로 독버섯을 발견하고 솎아 낼 장치가 필요합니다. 105p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떤 기관이나 개인이 권력을 가진다고 말하는 것이 정말 기괴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각자가 맡은 역할에 따라 조금씩의 권한을 가지고 있을 뿐, 그것이 권력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배우가 부여받은 역할을 자기 자신과 혼동하면 안되는 것처럼. 검사들 역시 자신들이 맡은 직책에 따른 권한을 적절한 견제 아래 행사해야 하는 것이지 권력이라 착각하니 작금의 상태가 된 것이 아닐까.

권력이 사유화할 때 권력 행사의 원칙은 사라지고 권력 그 자체만 남습니다. 그 권력은 더 이상 문명의 산물이 아니라 야생 동물의 포악함이 됩니다. (중략)'권력은 어디에서 오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모든 권력자와 권력 기관에 뼛속 깊이 각인시켜야 합니다. 군, 검찰 등 권력 기관의 사유화가 더 이상 불가능하도록 물샐틈 없는 민주적 통제장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115-116p

서용주 맥 정치사회연구소장은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서 헌법에 권력이라는 단어는 국민한테만 쓰인다고 말했다. 권력과 권한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입법과 사법, 행정은 일정기간 위임된 권한이라는 것부터 분명히 알아두어야 한다. 분명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 권한자들이 스스로를 권력자로 여기는 것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되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자신이 가진 것이 권력이 아니라 위임된 권한이라는 것부터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검찰총장의 퇴임 뒤 공직 취임과 정당 가입을 제한하는 검찰청법 조항은 결국 위헌 결정을 받았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검찰총장을 비롯한 모든 검사가 이에 대한 확고한 소신 아래 구체적 사건의 처리에 있어 공정성을 잃지 않음으로써 확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할 제도적 해법을 찾는 대신 개별 검사들의 소신에 맡겨두자는 것인데, 독자 여러분은 동의하십니까? 118p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는 어떨까? 무소불위의 권력 집단이 되어버린 검찰의 모습. 임기를 마치지 않고 사퇴하여 정치에 투신하는데도 내부적으로 아무런 비판도 반성도 없이 아첨하기 바쁘다. 권한이 아닌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사실상 정말 권력을 발휘하고 있다보니 이런 모습들은 더 공고해지고 있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검찰 전체를 하나의 검사동일체로 묶어버렸습니다. 검찰총장 한 명이 전국의 모든 검사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모든 사건에 개입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었습니다. (중략) 민주 국가에서 정부 기관은 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구성원 각자가 제자리에서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법률에 맞게 수행해야 합니다. 각자의 자율성과 전체적 통일성이 조화를 이루는 게 성숙한 민주 국가의 공적 조직 원리입니다. 150-151p

대학과 중용에서는 군자는 혼자 있을 때 더 신중하고 조심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사람들 대부분은 소인에 불과하며 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할 뿐이기에 삶을 살아가며 가장 어려운 일은 나 자신에게 정직하고 나 스스로를 경계하며 속이지 않는 것이다. 남들이 볼 때는 스스로 경계할 수 있는 사람들도 홀로 있을 때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저자는 거듭 제도적으로 이런 것들을 보완할 수 있는 검찰개혁이 되어야 함을 끈기있게 다른 나라의 검찰제도들을 소개하며 설득하고 있다.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검찰이 내부 비위에 대한 처리 권한까지 독점한다면 특권 계급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원석 전 검찰총장은 인사청문회에서 "내 손이 깨끗해야 남의 죄를 단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더러운 손'으로 법 집행을 하는 공직자가 있는데도 쫓아낼 수단조차 없다면, 국민이 그런 공직자한테 계속 수사·기소를 당해야 한다면, 더 이상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습니다. 법치주의도 더럽혀집니다. 244p

결국 이 책은 검찰만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 일반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통제할 것인가라는 보편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의 선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경우에도 제도가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길이라는 점을 다른 나라의 제도들을 소개하며 환기시킨다. 검찰개혁 뿐 아니라 우리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권한과 권력을 혼동하지 않고 스스로를 경계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검찰 상식이 우리사회의 필수교양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거기서부터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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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전쟁 - 제국주의, 노예무역, 디아스포라로 쓰여진 설탕 잔혹사
최광용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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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같은 현실을 감내하면서도, 노예들은 인간으로서의 본능과 의지를 발휘해 다양한 방식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가장 먼저 실행했던 선택지는 단연 도망치는 것이었다. 물론 도망치다 붙잡히면 가혹한 처벌을 받거나 목숨을 잃을 위험이 컸지만, 많은 이들이 그 위험을 감수했다. '이렇게 죽든 저렇게 죽든'이라는 절박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87p

「설탕전쟁」 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올린 것은 고진감래였다. 쓰디쓴 고생 끝에 달콤한 즐거움이 온다는 사자성어이다. 그러나 쓰디쓴 고생을 하는 이들과 달콤한 즐거움을 누리는 이들이 같지 않았기에, 나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받아간다'는 속담을 함께 떠올려야 했다. 설탕을 얻는 게 이리 고된 일인 지 내가 어찌 알았으랴. 그저 마트에 가서 덜렁 집어들고 값을 치르면 되는 것인 줄 알았지,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그것을 수확해 즙이 마르기 전 짜내어 끓이고 자갈같은 설탕결정체를 만들어내는 수고를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 없는 것을 좋아하고 꿈꾸는 것을 이상주의자라고 부른다면 나는 이상주의자이다. 세상의 불공평함과 불공정함을 뼈저리게 알지만 그래도 내가 권한 가지고 있는 선에서는 최대한 공평하고 공정하기를 바란다. 적어도 누군가의 삶이 타인의 삶을 위해 도구처럼 소모되지 않는 세상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앞서간 많은 이들의 피와 땀으로 일구어진 21세기의 세상에도 가난한 자들, 권력 없는 자들은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편안함을 위해 자진해서 도구가 되어 소모되며 삶을 연명해나가야 한다.

설탕의 역사가 노예의 역사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설탕전쟁이 설탕을 확보하고자 하는 나라들끼리의 전쟁일까 어렴풋이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설탕을 생산하기 위해 착취당하던 노예들과 착취하고자 하는 이들간에도 질기고 질긴 전쟁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죽든 저렇게 죽든'이라는 처참한 현실과 절박한 심정으로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이 생산한 설탕의 달콤함을 그들은 알 수 없었다.

탁 트인 바다라면 어디든 좋다. '유럽의 발코니'라 불리는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네르하 앞 지중해도, 쿠바 바라데로의 카리브해도, 우리나라라면 제주도 모슬포의 푸른 남해도 좋다. 아름다운 해변에서 한 손에는 럼주를 들고 입에는 코히바 시가를 문 채, 바닷빛을 머금은 푸른 연기를 천천히 허공에 날리며 하루 종일 늘어져 있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삶이라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중략) 쿠바 사탕수수 농장에서 럼이 탄생했듯, 세계 각지의 술들 또한 삶의 깊은 고단함과 눈물 속에서 빚어졌는지도 모른다. 167p

아름다운 해변, 럼주와 코히바 시가, 그런 것들을 즐길 수 없는 삶의 고단함과 쓰디쓴 눈물 속에서 빚어진 세계 각지의 술들. 술은 단순한 유흥이 아니었다. 삶을 견디기 위해 일시적으로라도 이지를 흐리게 하고 다 놔버리는 순간들이 필요했던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보레는 설탕을 생산한 첫해에 1만 2000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약 300만 달러에 달한다. 게다가 이 시기의 설탕은 '백색의 금'으로 불리며 식품 보존제이자 의약품으로까지 그 쓰임이 넓어지고 있었다. 단기간에 막대한 부를 축적해 자본가의 상징이 된 보레는, 이후 정치에 입문해 뉴올리언스 시장이 되기도 했다. 201p

‘백색의 금’이라 불린 설탕은 한순간에 사람들을 자본가와 권력자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그 부와 명예는 수많은 노예들의 땀과 희생을 기반으로 세워진 것이었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수많은 노예들의 고통으로 보레는 뉴올리언스 시장이 되기도 하고 자본가의 상징으로 이름을 남겼다. 노예들의 고통 끝에 그에게 달콤한 부와 명예가 함께 했다. 가슴에 턱, 하고 무거운 바윗돌이 얹히는 기분이 들었다. 나의 삶이 보레보다는 노예들쪽에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묵묵히 참고 견뎌냈더니 달콤한 백색의 금은 커녕 채찍질이 날아오는, 참고 견딜 것 조차 없었던 이가 달콤한 보상을 얻는 것을 옆에서 지켜봐야만 하는 비참한 삶.

한편, 미국에서는 목화와 설탕이 기존의 담배나 커피를 제치고 미국 남부의 양대 산업으로 부상하며 초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게다가 '조면기cotton gin(목화에서 씨앗을 효율적으로 분리하는 기계)'가 발명되어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노동력 수요 또한 급증했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의 노예제 폐지 움직임으로 노예 수급이 원활하지 않게 되자, 미국은 결국 많은 노예를 밀수입하기에 이른다. 자연히 노예의 가격은 급등했고, 이로 인한 손실을 메우기 위해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212p

미국의 흑인노예, 라는 단어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목화밭이 떠오르는데 설탕 역시 미국 남부의 양대산업으로 많은 노예들을 필요로 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이 구절에서는 나도 모르게 얼굴을 한껏 찡그리게 됐다. 그들이 얼마나 착취당했을 것이며 얼마나 불합리한 대우를 받았을 것인가. 살아있는 사람이었던 그들은 얼마나 울어버린 뒤에야 눈물도 메말라버렸을 것인가. 그들의 삶에 즐거운 순간이 얼마나 되었을까.

오늘날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음악 장르인 재즈, 블루스, 리듬 앤드 블루스, 로큰롤은 모두 목화밭이 있던 미국 남부에서 태어났다. 우리가 자주 즐겨 듣는 이 음악들은 수백 년 전 흑인 노예들의 고통과 맞닿아 있다. 213p

오늘날 전 세계인이 즐기는 재즈와 블루스, 리듬 앤 블루스, 로큰롤. 이 모든 음악이 흑인 노예들의 절망과 희망이 뒤섞인 노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역시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듣고 즐기는 음악조차 사실은 수백 년 전 고통받던 사람들의 목소리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고진감래라는 말을 다시금 곱씹어본다. 쓰디쓰게 고생한 이들이 달콤한 즐거움을 누리는 세상이 언젠가는 오고 말까? 요즘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이 없다고 걱정하던데 너무 똑똑해진 아이들은 이미 알아버린 게 아닐까? 그야말로 설탕전쟁이다. 감래하기 위해 열심히 고진하고는 있지만, 이 전쟁에 이길 자신이 없어서 왠지 모르게 쓴 웃음이 난다. 왠지 모르게 술이라도 한 잔 마시고 노래 한 곡 불러야 할 것 같은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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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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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괜찮았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세상이 장에게 유독 가혹하게 구는 것 같았다. 냉정하게 생각해봐도 정말 그랬다. 121p

정말 유감스럽게도 나는 나와 상관없는 것이 동요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어떤 식으로든 내가 감정적으로 동요된다면 그것은 나와 무관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장이 느닷없이 납치를 당하고 바지에 똥오줌을 지릴 때에도 나는 멀찍이서 타인의 불행을 관람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신고를 바로 하지 않았다 은근하게 책망하고 탈출하지 못한 것도 문제삼던 경위와 나는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이 문장에 눈길이 가 닿았을 때 나는 장에게 한 걸음 다가가 장의 이야기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선에서부터 나는 괜찮았던 적이 없었고, 세상은 유독 내게 가혹하고 야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타인들은 나와 달랐는지, 타인들도 나처럼 그러한지 알지 못한다.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애초에 노력하지 않으면 타인들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이렇게 외면하면 눈물이 멈추네요."

"맞아요. 울고 싶지 않으면 잘 숨어 있어야죠."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무엇을요?"

"이렇게 계속 살아가요? 말뚝들이 불쑥불쑥 나타나고, 그러면 하염없이 울고?" 188p

적어도 말뚝들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런데 말뚝들이 등장하고,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눈물을 쏟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그러기를 포기했다. 이 소설은 아주 긴 시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아주 긴 꿈과도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말뚝들은 사람의 심장에 박힌 대못같은 상처일까? 느닷없이 퍼붓다 멈춰버리는 불행일까? 그런 것도 그냥 멈춰버렸다. 생각하면 울고 싶어졌다. 이유를 모르고 감정을 느낄 때마다 세상은 나를 나무랐고, 대답할 길 없는 감정과 이해받을 수 없는 감정에 대한 슬픔이 진흙탕처럼 흐트러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주 오래오래 걸려서야 「말뚝들」 을 완독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강처럼 흘러 한자리에 모여든 이유는 울기 위해서였다. 우는 사람은 답답하지 않았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았다.203p

사람들은 모두들 저마다의 불행을 얼마간 가지고 있다. 누구나의 심장마다 대못같은 상처가 박혀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도 그에 대해 토로하지 못한다. 우리는 술에 취해 잊혀질 것을 보장받을 때에나 속얘기를 꺼내고, 만취를 핑계로나 겨우 조금 울었다. 말뚝이 내 앞에도 나타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염없이 울고 나면 답답하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예전에 연기를 배울 때 선생님은 내게 이 사람들이 왜 이 말을 하는 지에 대해 생각하라고 했다. 나는 시덥잖은 이유들을 댔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이런 말들을 굳이 왜 할까 생각했었다. 선생님은 이 말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선생님의 가르침은 11년을 지나서야 내게 와 닿았다.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말뚝들 앞에서 사람들도 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울 수 있다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고, 말을 할 수 있다면 답답하지 않다.

함께 울었다. (중략) 해가 저물 때쯤 동상 받침대에 올라서 있던 말뚝들이 무슨 신호나 낌새도 없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처음부터 그 자리가 텅 비워 있던 것처럼. 210p

그렇게 사람들도 동물도 말뚝을 수거하러 온 사람들도 함께 해가 저물 때까지 울고 나서, 처음부터 상처받지 않았던 것처럼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말뚝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직 울기도 전이지만 내 가슴에 박혀있는 대못들 중 한 두 개정도는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주변을 보니 사람들이 울고 있었다. 바로 옆 사람은 가슴을 치며 거의 통곡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없었다. 열성적으로 우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모두가 합심해 가짜 울음을 울다니 믿기지 않았다. 장은 심하게 모욕당한 느낌을 받았다. 말뚝 앞에서 무너지듯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의 마음이 그곳에서 실시간으로 조롱당하는 기분이었다. 222p

그리고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다시 사라졌던 대못이 박히는 기분이 들었다. 아프고 답답했다. 가짜 울음을 우는 사람들에게 모욕당한 느낌, 조롱당하는 기분을 느끼는 장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불행의 본질은 이해할 수 없게 내버려두어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가끔은 불행의 본질을 이해하게 내버려두지 않는 가짜울음소리가 다른 사람의 불행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을 할 때 차라리 울지 않고 무덤덤한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짜로 울음을 울고 가짜로 위로한다면 그것은 그들에 대한 모욕이고 조롱일 뿐이니까. 그렇다고 매번 모두에게 자판기처럼 진짜 울음을 울 수 있을만큼 내가 풍요로운가 하면 또 그렇지가 않다.

그때의 모든 일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었다. 아마 영원히 그럴 게 틀림없었다. 장이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뿐이었다. 그에게 빚졌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 빚으로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이 세상은 망해버린다. 301p

최근 「붉은 시대」와 「역사의 쓸모」를 읽으면서 큰 울림이 있었는데 이 구절에서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빚져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명랑한 이기봉의 투쟁없는 짧은 삶」에서도 그랬듯이 그렇게 빚졌다는 생각으로, 자아를 타자로 삼키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서로 빚졌다고 생각하고 무임승차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 않으면 이 세상은 망해버리고 말 것이다.

"나는 장석원이야. 장, 석, 원. 너희 아빠 친구야." 301p

말뚝들이 내 앞에 성큼 와 서 있었다. 장이 이름을 드러냈다. 나는 장석원에게, 김홍 작가에게, 「말뚝들」에 빚을 졌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비로소 울 수 있었다.

​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완독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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