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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미술사 - ‘정설’을 깨뜨리고 다시 읽는 그림 이야기
박재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평점 :
미술사에 대해 잘 알지 못 하는터라 내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두 번째 미술사」 는 부담없이 잘 읽히는 재밌는 책이었다. 책을 잡고 한 번도 내려놓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가장 처음에 소개하는 것은 고흐인데, 나처럼 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누구나 알고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통해 책에 몰입하게 했다. 닥터 후라는 드라마에 고흐가 미래로 와서 자신이 미래에는 사랑받는 화가가 되었고 자신의 작품들 역시 많은 이들에게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음을 보고 감격하는 장면이 있었다. 이 장면은 숏폼과 릴스로 재가공되어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널리 퍼졌었다. 저자는 과연 정말 고흐는 살아 생전 작품을 하나 밖에 팔지 못했던 것인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풀기 시작한다.
고흐가 죽고 동생 테오도 일찍 죽게 되었을 때, 테오의 아내는 어땠을까? 그간 시아주버님께 후원했던 돈도 만만치 않았을 것인데 빛을 볼만하니 죽어버리고, 남편도 죽고 생계는 책임져야 하고. 그녀가 야무지게 브랜딩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생계유지뿐 아니라 지금 이렇게 고흐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거장으로 기억될 수 있었을 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예술계의 라이벌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로워한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이야기처럼. 하지만 실제 이야기는 더욱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에게 자극이 되고 서로에게 한계를 뛰어넘는 성장의 가능성을 보게 하는 존재. 존중하고 우정을 나누며 대화하며 서로의 존재 덕분에 자신이 갈 수 있었던 한계를 뛰어넘는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게 하는 존재. 나는 이런이야기가 더 좋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고 기억되는 작가들은 브랜드가 잘 구축되어 있는 이들이다. 예술이 뛰어난 경지에 이르는 것만큼이나 자신을 브랜딩하는 것도 중요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파트도 너무 재미있었다. 대리석을 조각하는 것 뿐 아니라 그는 자기 신화를 조각하는 것에도 천재적이었다. 현대에서도 이런 식의 아티스트 신화 전력은 유효하니까.
다 읽고 나서 느낀 것은 재밌다는 감상이었다. 만들어진 신화와, 시간이 흐르면서 뒤얽힌 오해, 잊혀졌다가 시대적인 흐름에 맞아 다시 기억되고, 이름을 다시 붙여 작품의 가치가 달라지는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정설인 첫번째 미술사 보다 이 두번째 미술사가 훨씬 더 흥미진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보여지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들보다 그 이면과 맥락에서 읽을 수 있는 인간 보편성을 더 즐기는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프롤로그에서 말하듯 누가 역사에 남고 누가 사라지는가는 단순히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와 사회가 어떤 이야기를 선택해 기억하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에 아직 끝나지 않은 미완의 이야기들이 있음을 쉽고 편안하고 즐겁게 알게 하는 좋은 책, 두 번째 미술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