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령의 삶 - 디지털 세계에서 인간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에릭 사댕 지음, 박지민 옮김 / 김영사 / 2026년 4월
평점 :
기술 비판서의 외향을 띠고 있지만,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선언에 가까운 책 ‘유령의 삶’.
저자는 오늘날의 인공지능과 디지털 환경을 단순한 도구로 바라보지 않고, ‘유령’이라 칭하고 있다. 이 유령은 몸으로 직접 접촉하고 경험할 수 있는 ‘물질적 현실’을 잠식하여 인간의 감각과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이 책의 인상적인 지점은 단순히 디지털 중독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문제는 개인의 과도한 사용을 넘어 인간과 세계의 관계 자체가 재구성되고 있음을 포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실은 이제 직접 경험이 아닌 알고리즘에 의해 가공된 형태로 제시되며, 인간은 세계를 해석하는 주체가 아니라 ‘정리된 결과를 소비하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저자의 ‘프랙털 삼위일체’라는 개념이 특히 흥미롭다. 해당 개념은 기술, 신체, 사회가 서로를 규정하며 반복적인 구조를 형성한다는 것으로, 오늘날 왜 우리가 스크린이라는 디지털적 형태에 고정되어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스마트폰 이후의 인간은 이동하면서도 동시에 멈춰있는 존재, 신체적으로는 움직이나 스크린에 고정된 상태로 존재함을 포착한다.
그는 인간의 언어를 살아 있는 발화로 보았으며, AI의 언어는 통계적 산출물로 규정했다. 만일 우리가 점점 더 많은 사고와 표현을 AI에게 맡길수록, 인간은 더 이상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입력하는 존재’로 남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으나, 실상은 인간 지성의 점진적 축소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한, 디지털 환경이 인간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도 함께 추적한다. 타인은 더 이상 감각적으로 마주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지와 텍스트로 환원된다. 관계는 효율과 기능 중심으로 재편되며, 그 과정에서 온기와 긴장, 예측 불가능성 같은 요소들은 사라진다. 이 지점에서 책은 인간적 삶의 조건 자체를 묻는다.
몸 → 스크린에 고정
선택 → 알고리즘 추천
언어 → 자동 생성
관계 → 기능적 연결
시간 → 즉각적 처리
인간은 ‘살고 있지만’, 과연 ‘인간답게’ 살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불분명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답게 사는 것이란, 직접 몸으로 경험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타인과 부딪히며, 의미를 만들어가는 능력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의 견해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전면 금지를 주장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다소 급진적으로 다가온다. 이 부분은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고, 기술과 인간의 공존 가능성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그가 제시하는 문제를 무시하긴 힘들다. 왜냐하면 그는 디지털 기술의 위험을 ‘기능’이 아니라 더 깊은 차원에서의 ‘존재 방식’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알고리즘이 구성한 세계에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스스로 판단하고 경험하는 삶을 유지할 것인가? 앙리 베르그송이 말한 ‘엘랑 비탈’(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생명의 추진력)을 회복하라는 그의 요청은 다소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그 핵심은 분명하다.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효율적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 본 도서 후기는 출판사의 제공을 받아 읽고 솔직히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