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느 교실의 멜랑콜리아 - 흔들리는 어린 삶에 곁이 되어 줄 수 있을까
박상아 지음 / 북트리거 / 2025년 8월
평점 :
스물네 살,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전하리라는 기대를 안고 교직에 입문한 저자가 막상 현실로 맞닥뜨린 교실 속 아이들의 모습을 기록한, ‘어느 교실의 멜랑콜리아’.
가정에서 전혀 관심 받지 못하는 아이가 비행을 일삼아 부모 대신 경찰서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아 해명하고, 누구도 챙겨주지 않아 몸에 맞지 않는 작은 옷을 입고 다니던 아이를 위해 나눔 장터를 헤집고 다니며, 알고 싶지 않았던 아이들의 경제적 어려움과 가정사를 속속들이 마주치던 순간들.
여러 번의 가정 방문, 학부모 이혼 상담, 공허한 눈빛의 아이들을 교실로 데려오기 위한 수십, 아니 수백 번의 시도들. 그것이 교직의 첫 시작이었다.
이 책은 학업 성취도, 성적 지표와 같은 가시적인 수치만으로는 볼 수 없었던 아이들의 그림자를, 저자가 교사이자 어른의 시선으로 옆에서 생생하고 복합적으로 면밀히 담아냈다.
어른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며, 그것이 자신의 언어인 듯 사용하는 아이, 하리보 젤리 간식 한 봉지도 소중히 여기는 아이, 줌 수업 화면에서 생활의 어려움을 은연 중에 보이는 아이, 계절과 몸 크기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다니는 아이, 경계선 지능 장애로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 등등….
그런 아이들의 그림자에 고스란히 드리운 여러 불평등. 거기서 느껴지는 씁쓸함과 답답함까지. 그 감각을 저자는 무겁게 느끼며 우리가 마냥 가시적으로 보이는 점수를 쌓는 일에 아이들을 몰두하게 하는 동안, 정작 가르침보다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보살핌을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상기하게 한다.
점점 내 밥그릇 하나 챙기기 어려워지고 있는 시대이다. 버거운 세상살이에 다른 이를 배척하는 태도와 미래에 대한 냉소가 넘친다.
그러한 세상의 어른들은 빈곤과 결핍을 노력 부족으로, 지식과 경험 부족을 희화화로 치부한다. 이런 어른들이 만연한 세상과 사회를 보고 자라난 아이들 역시 똑같은 어른으로 자라날 확률이 높다.
어째서 요즘 아이들이 문제 많은 골칫덩이로 자라나고 있는지, 단순히 아이들 자체만을 두고 악마화하기 이전에 일찍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과 사회를 보여주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한다.
‘낳음 당했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어쩌면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선택할 수 없는 사회 구조와 가정의 상황 속에 ‘던져진’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강렬히 조명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언제나 밝고 성실하며, 사회가 원하는 기준을 충족하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그 요구는 정작 아이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과 돌봄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은 채 던져지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불편한 진실을 우리 앞에 꺼내놓는다. 교실이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드러나는 아이들의 상처와 그림자는, 결국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의 모순을 비추는 거울이다. 아이들의 말투 하나, 옷차림 하나, 눈빛 하나 속에 어른들의 책임이 겹겹이 스며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 책은 단순히 한 초등 교사의 기록을 넘어, 어른 된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다가온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그리고 그들이 우리를 따라 어른이 될 때,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막연히 출생률을 걱정하며 아이를 낳으라고 재촉하기 전에, 이미 태어난 아이들이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먼저이지 않을까. 그것이야말로 아이들이 낳음 당했다는 체념이 아니라, 태어나길 잘했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으리라.
어른도 포기하고 떠나는 세상에서, 지금도 태어나고 자라고 있는 흔들리는 어린 삶들을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을 해볼 수 있었던 도서였다.
제공에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