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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피로한가 - 제로섬게임과 피로감수성
김정희 외 지음 / 르몽드코리아 / 2024년 3월
평점 :
급격한 경제발전, 무한경쟁, 성과주의, 비교문화 등 한국인이 피로한 이유는 이미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에 대한 해법 또한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다만 해법을 알고 있음에도 그 누구도 앞서 해결하려 들지 않고, 그저 동화처럼 이상적인 이야기로만 남겨둘 뿐이다.
이 책도 그렇게 우리들이 이미 아는 이야기를 담은 ‘그저 그런’ 피로에 대한 이야기와 대부분이 아는 해법에 관한 이야기일 뿐인가 싶었지만, 그런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결을 지닌 책이었다.
피로를 이야기하는 책이지만, 읽는 독자가 피로를 덜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 우리에게 놓인 피로한 상황을 어떤 식으로 해결하면 좋을지 제시함으로써 ‘또 다른 피로’를 주는 것이 아닌, ‘단지 있는 그대로의 피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뿐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따른 감상은 독자 저마다의 입장에 맡겼다.
그러니 아홉 작가가 말하는 아홉 편의 피로를 주제로 한 글에 어떤 감정과 생각이 일든, 그건 독자의 몫이 되었다. 결론에 ‘정답’이 없는 글들이라 여유롭게 유영하듯 ‘책멍’을 할 수 있었다고 느낀다.
책은 한 손에 가볍게 쏙 잡히고 의외로 얇다. 처음엔 책 두께가 꽤 두껍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수많은 활자에 이미 잔뜩 피로한 독자를 위한 배려일까. 필요한 최소한의 활자만 담백하게 담겨있다.
책에서 마음에 들었던 글은 시지프스 2023였다. (36P부터 45P까지.) 고대 그리스 신화의 인물 시지프스는 큰 바위를 짊어지고 산 정상에 오르지만, 이내 그 바위는 정상에서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그럼 몇 번이고 그 바위를 다시 짊어지러 왔다갔다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인데, 끔찍하게 반복적이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신의 형벌이다.
그러나 알베르 카뮈는 이러한 시지프스의 모습을 신의 형벌에 대한 저항,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자 하는 인간상의 모습으로 보았다. (이 글을 읽고 도서관에서 알베르 카뮈 작품을 싹 대여했다. 시지프 신화는 꼭 읽어 봐야지.)
시지프스의 모습은 지루한 일상과 하기 싫은 일을 감내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네의 모습이다. 이렇듯 시지프스의 이야기를 끌어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에 투영하여 글을 이어가는 방식이 재미있어서 인상 깊이 읽혔다고 느낀다.
비록 나는 오늘도 피곤하고, 내일도, 그 모레도 피곤할 예정이지만 그럼에도 피로를 주제로 한 다양한 글을 읽어보며, ‘나만이 피로한 건 아니야’라는 자그마한 위로 내지 격려를 받을 수 있었다.
무겁게 읽고 씹어 삼켜야만 하는 피로한 독서만 하던 와중에, 과자처럼 맛있고 가볍게 오독오독 씹어 넘기는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