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 한국문학 번역가 안톤 허의 내 갈 길 가는 에세이
안톤 허 지음 / 어크로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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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분야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인 부커 상에 대해서는, 2016년 한강 작가님의 채식주의자 작품이 해당 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통해 처음 그 존재를 알게 됐어요.

갑자기 부커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어느 도발적이고 통통 튀며 까칠한데 재미있는 에세이 한 권을 읽게 된 까닭인데요.

이 에세이의 저자인 안톤 허라는 분은 무려 이 권위 있는 부커 상 최종 후보에 한국 책을 두 권이나 올리셨다고 해요. 정보라 작가님의 <저주토끼>와 박상영 작가임의 <대도시의 사랑법>이 그 주인공이었죠.

그래서 자연스레 어떤 분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이전에는 크게 알지 못했던 번역가의 삶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런데 오 마이갓, 여러모로 제 예상과는 다른 이미지와 이야기에 충격과 충격의 연속이었어요. 우선 안톤 허라는 이름 때문에 한국계 외국인일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스웨덴에서 태어났어도 한국에서 학교를 모두 나온 네이티브셨어요.

게다가 나긋나긋한 인상(별명인 무서운 분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어요)으로 조용하고 순박하며 수줍음이 많으신 문학 소년이시지 않을까 했는데 아니었어요.

자신에게 무례하게 구는 갑의 의뢰와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고, 번역가를 얕잡아보는 이들에게 거침없는 비판을 쏘는 그 당돌한 모습이 굉장히 반짝반짝하셨어요.

또한, 번역이라는 분야의 이야기도 얼핏 알 수 있었어요. 특히 한국문학을 영어로 번역하는 한국문학 번역가의 대우와 현실에 대한 내용이 인상 깊었어요. 제대로 대우받고 일하는 직업일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조금 충격적이었어요.

전 지구를 통틀어 세 명 남짓 전부인 한국문학 번역가의 업계에서는, 일 년에 한국문학 작품이 열 권만 외국에 출판이 되어도 많다고 여긴대요.

인지도 낮은 한국문학, 영미권 출판계의 백인 우월주의, 언어와 문화적 거리 등의 까닭으로 우리가 느끼기에 정말 좋다고 생각하는 작품들이 세계적으로 뻗어갈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것이죠.

게다가 보석 같은 작품을 반짝반짝 닦아서 세상에 선보이는 멋진 직업인 번역가를 언제든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 취급하는 분위기도 곳곳에 만연한다는 사실이 마음이 아팠어요.

더욱이 문학작품을 번역하기 위해서는 번역가가 스스로 한국 출판사를 설득하고, 미국 출판사에 제안서를 내밀고, 영미권 미국 인플루언서와 독자들에게 호소하고 호소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니. 앉아서 일이 뚝 떨어지는 그런 게 아니었던 거예요.

저라면 일찍이 나가떨어지고 말았겠지만, 그런 현실에도 꿋꿋하게 몇 십 년을 걸쳐 분투한 끝에 번역가, 그것도 한국문학 번역가의 길을 걸어온 저자가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내 갈 길 간다, 그래서 인생을 망쳐도 내 손으로 망친다는 그 용기 있고 굳건한 저자의 정신이 제 마음을 쿵쿵 두드리는 것만 같았어요.

K대의 법학과에 진학했으니 많은 돈과 명예를 갖고 살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지만, 저는 어째선지 지금의 저자의 모습이 더 빛나고 멋있게만 느껴져요.

아마 그건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이 가시밭길에 모자라 압정까지 고루 뿌려져 있는데도, 그래도 난 이 길이 좋으니까 뭐든 덤비라는 마인드 때문이겠죠.

그런 이유로 이 책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버리지 못했던 제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어요. 이십 대가 나름대로 유리한 점이 있다고 하셨죠. 저는 그 문장을 읽고 이십 대의 유리한 점이 일단 뭐든 부딪혀볼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했어요.

부딪혀서 어딘가 박살 나고 깨지더라도, 내가 부딪힌 것에 대한 결과에 후회만 남는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안 부딪히고 피한 것보다는 훨씬 나을 거라고 믿어요.

그래서 저는 조금씩 부딪히고 박살난 준비를 시작하려고 해요. 아플 것 같아도 좋아하는 일에 뛰어드는 거니까 마냥 슬프지만은 않네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부커 상 후보에 오르는 성취를 거둔 저자처럼, 저도 저만이 가고자 하는 길의 부커 상 후보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 에세이는 번역가에 대한 삶도 살짝 엿볼 수 있지만요. 내가 하는 일이 맞는지, 좋아하는 일에 망설이고 있는 분들께도 뭔가 큰 추진력이 되어줄 책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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