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번 버스의 기적
프레야 샘슨 지음, 윤선미 옮김 / 모모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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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매일 88번 버스를 타야만 하는 프랭크 할아버지가 있어요. 왜냐하면 60년 전 할아버지가 만났던 첫사랑 때문이죠.

프랭크는 20대 시절 배우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꿈을 접고 의기소침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어요.

그러나 기적처럼 첫사랑인 빨간 머리의 그녀를 88번 버스에서 만나게 된 이후, 프랭크는 부모님께 용기 내어 배우의 길을 걷겠다 말하고 연기 학교에 들어가 꿈에 그리던 배우 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자신도 부모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당당히 미대를 다니며 예술가의 길을 걷겠다는 첫사랑의 확고한 모습에 할아버지는 한눈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죠.

첫사랑 덕에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루게 됐지만, 정작 프랭크 할아버지는 첫사랑과 첫 만남을 가진 이후 다신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 까닭은 첫사랑이 연락할 수 있는 번호를 적어준 버스 티켓을 잃어버렸거든요! 당시는 1960년대라 스마트폰이 없어 제대로 연락하지 못했던 시대였어요.

다시 만나자는 두 사람의 약속은 그렇게 지켜지지 못하고 프랭크 할아버지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 채, 60년의 세월이 흐르고 만 것이죠.

이 얼마나 안타까운가요! 아쉬움에 그날 이후 매일 첫사랑을 만났던 88번 버스에 올랐지만, 다시 그녀를 만날 수는 없었어요.

어느덧 할아버지는 연세도 많이 드셨고, 치매도 시작되어 빨리 첫사랑을 찾아야 하는데요! 어느 날 이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리비라는 여인이 프랭크의 첫사랑 찾기를 도와주기로 발 뻗고 나섭니다.

자신도 미술을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꿈을 접고, 20대의 전부를 함께 보낸 남자친구는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고 말아서 엉망진창이 된 마음을 잠시라도 잊어보기 위함이었을까요?

하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마침 얼마 전에 첫 만남이 정말 최악이었던 남자를 만났는데, 그가 프랭크 할아버지의 요양 보호사였던 거예요. 꼼짝없이 그와 자꾸만 마주치게 된 거죠.

그의 이름은 딜런. 반항적인 펑크족 스타일의 무서운 남자는 어쩌다 보니 리비를 따라 프랭크 할아버지를 돕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작부터 삐끗삐끗, 불편하고 껄끄러운 두 사람이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요?

88번 버스의 기적은 리비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휴먼 드라마 소설입니다! 사랑, 추억, 꿈, 성장 등의 주제가 반짝반짝 빛나는 별사탕처럼 다채롭게 흩뿌려져 있어요.

빠져들면 마치 핫초코에 동동 떠다니는 마시멜로를 야금야금 맛보는 기분이 드는 달콤한 소설입니다. 그럼 책에서 어떤 점이 좋았는지 쭉 꼽아볼까요?

우선 꿈을 잃고 방황하며 골치 아픈 상황에 놓인 리비가, 악연으로 시작한 딜런과 점차 사랑을 싹 틔우며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모습이 좋았어요.

딜런은 첫인상이 무서운 남자지만 ‘사실 내 여자에게만은 누구보다 따뜻하지’ 클리셰를 잘 지키는 인물이라, 달달하게 리비와의 서사를 읽어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어요.

스포일러라 비밀이지만, 리비가 놓인 곤란한 상황에서도 개의치 않고 끝까지 함께하고자 했던 모습에서 가장 호감이 갔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프랭크 할아버지의 첫사랑이 누구인지, 중간중간 독백으로 등장하는 페기라는 할머니의 정체는 누구인지 알듯 말듯 독자를 궁금하게 만들어서 끝까지 호기심을 잃지 않고 이야기를 읽어갈 수 있었어요.

또한, 리비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아무리 최악의 상황에 놓였대도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최선의 상황으로 바뀌게 될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어요.

희망은 더디지만 천천히, 그리고 작지만 원대하게 다가온다는 걸 느끼게 해 줬어요. 마치 작은 모닥불이 하나 둘 모여 꺼지지 않는 따스함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가르쳐준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의 권태로움과 주변에서 들려오는 나쁜 소식에 마음이 지친 독자에게 자그마한 위로와 격려가 되어줄 것 같은 다정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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