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 - 무성애로 다시 읽는 관계와 욕망, 로맨스
앤절라 첸 지음, 박희원 옮김 / 현암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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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께서는 ‘무성애’라는 개념을 아시나요? 동성애, 범성애, 이성애의 개념은 익히 알더라도 무성애의 경우에는 조금 생소하게 느껴지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보편적으로 받아지는 타입을 대표로 무성애를 설명하자면, 성욕이 별로 없고 타인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지 못하며 섹스 자체에 지루함과 나아가 혐오를 느끼기도 하는 성향입니다.

다만 여기서 오해를 하면 안 되는 것이 무성애의 범주는 앞선 범주에 한정되지 않고 더욱 다양한 형상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이며, 무작정 섹스를 ‘혐오’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하지만 무성애가 대중적으로 깊이 가시화되지 않은 현재로서는, 성욕과 성적 끌림이 타인에 비해 현저히 낮은 무성애자가 아직까지도 많은 오해와 혼란을 겪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를테면, 그들을 어딘가 ‘결핍’되고 ‘잘못’되어 ‘고쳐야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무성애를 언젠가는 ‘변화’해야 하는 ‘비정상적’에 가까운 성향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해왔던 것 같아요. 성욕이, 성적 끌림이 없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것만 같았거든요.

그러나 이 책을 읽고난 후에는 정말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사람은 성욕과 성적 끌림을 갖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바라보게 하는 유성애적 관점이, 여러 무성애자들에게 깊은 소외감을 주고 굉장히 폭력적인 것이 될 수 있음을 느꼈어요.

무성애자인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가 ‘디폴트’라 생각하는 이성애는 학습•조건•강화된 정치적 제도라고 말이죠. 사회 구조가 이성애를 주류로 여길 수 있도록 되어 있었기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라고요.

같은 맥락으로 유성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해요. 왜 성욕과 성적 끌림을 가지고 있는 것이 그렇게도 당연해야만 했을까요? 우리는 암묵적이게 다수로 채택된 관념에 상처 입는 소수자들은 잘 생각하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그들이 소수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 되레 해당 집단을 공격하기도 하고요.

책은 이러한 부분들을 지적하며, 무성애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가고 있습니다. 책에는 저자와 같은 다양한 무성애자들의 인터뷰가 담겨 있는데요.

그들이 무성애자로서 겪은 경험을 통해 인생에서 느꼈던 혼란과, 그 혼란을 극복하고 자신을 인정한 뒤 끝내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통해 저는 ‘없다’는 것은 결핍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요. 없는 것은 있는 것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다양성 중 하나이고, 이를 고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수용’과 ‘존중’이 필요한 것이라 생각해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성적인 끌림이 없어도, 심지어 누군가에게 로맨틱한 감정을 느낄 수 없어도 그건 잘못된 것이 아니었어요. 고치려고 애쓰거나 상처받지 않아도 되는 거였어요. 그저 그렇게 느끼는 대로 살면 되었던 거죠.

더욱이 꼭 성적인 것에 얽매인 삶이 아니라 운동을 하거나 달콤한 디저트를 먹는 등 나를 채워주는 것들은 참 많이 있음을, 또 사랑하는 관계에서 꼭 성적인 것만이 사랑을 증명하는 절대적 척도가 아님을 알 수 있었어요.

이 책은 기존의 섹슈얼리티(성적에 관한 모든 것)의 내러티브에 훌륭한 반기를 드는 책입니다. 더불어 개개인이 갖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내가 ‘나’로서도 편안하고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역시 세상은 딱 정해진 몇 개의 틀로 막연히 가둘 수 없는 다채로움을 띠고 있는 것 같아요. 그 다채로움을 지키기 위해, 기존의 성적 내러티브를 파괴하면 정말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가 있게 될 듯합니다.

혹시나 알까요, 나도 모르게 느껴왔던 어떠한 억압이 그를 계기로 숨통이 트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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