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엄숙한 얼굴 소설, 잇다 2
지하련.임솔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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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만남으로 한국 문학의 근원•현재•미래를 바라보자는 취지에서 기획한 시리즈 ‘소설, 잇다’.
첫 번째 잇다 시리즈인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를 미리 읽어보아 그런지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과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으나 크게 주목 받지 못한 근대 여성 작가의 작품과, 현대에서 사랑 받는 여성 작가의 작품을 엮어 한 권으로 펴냈다.
여느 소설과는 다르게 생소한 근대 소설의 문체가 낯설기도 하면서, 그 새로운 느낌에 되레 매료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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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련 작가의 작품은 인물의 감정선이 참 섬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이야기 속 여성 화자들은 지하련 본인의 이야기를 대변하는 게 아닌지 싶을 정도로 깊다. 인상 깊었던 지하련의 총 4개의 소설 중 2개를 꼽아 이야기하자면.

그의 첫 번째 소설 ‘결별’은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불편을 느끼는 형예라는 여성의 이야기이다. 그는 막 혼인을 마친 그의 절친한 친구 정희로부터 집에 놀러오라는 초대를 받는다.
소위 말하면 염장이라고, 이후 정희는 본인의 연애와 결혼까지의 이야기를 형예에게 말해 주었는데 형예는 그저 기분이 뒤숭숭할 뿐이었다.
여기서 여성의 우정은 보통 시기와 질투의 측면을 강조하는 단편적 시선으로 그려지곤 하는데, 형예가 정희에게 느끼는 감정을 복잡하게 서술한 점이 현실감 있고 좋았다. 좋은 남편을 만난 정희를 마냥 시기하지 않고, 한때 서로의 미래에서 함께하자는 약속을 했던 만큼 돈독한 사이였던 두 사람의 추억을 떠올리며 자격지심과 외로움을 느끼는 부분의 감정선이 참 섬세했다.

두 번째 체향초는 신념을 잃은 채 비굴하게 생을 이어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설의 화자 삼희는 요양차 고향에 들르는데, 한때는 사회주의자로 자신의 신념을 불태웠으나 약해진 몸으로 인해 고향에서 소박하게 짐승과 나무를 키우는 자신의 오라버니를 마주한다.
이전과는 다르게 무력해진 오라버니의 모습에 안타까움과 동정을 느끼는 삼희. 오라버니가 친구인 태일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학하는 모습에 그를 향한 격려를 해 주어도 마음을 변화하게 만들 순 없었다. 결국 삼희는 떠나기로 한 날보다 조금 더 일찍이 고향을 떠난다, 마치 도망치듯. 여러모로 상실감에 씁쓸함이 느껴지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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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임솔아 작가의 바통으로 이어가는 ‘제법 엄숙한 얼굴’.

조선족 영애는 차별을 피하기 위해 한국인처럼 보이는 연습을 했다. 그러나 자신이 일하는 카페 사장 제이는 본인이 외국에서 겪은 인종차별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되레 영애에게 당당히 연변말을 쓰라고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온갖 사투리가 짬뽕된 말투로 말하게 된다.
권위자이자 지식인의 가해, 폭력을 견뎌내야 하는 상황에 대한 갑갑함과 피해자의 침묵, 고요한 절망. 위선적인 태도에 대한 회의를 담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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