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도어 프라이즈
M. O. 월시 지음, 송섬별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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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부의 작은 마을인 디어필드에 나타난 기계 하나로 벌어지는 소동을 담은 이야기. 2달러만 기계에 넣으면 내가 이룰 수 있었을 ‘신분’과 ‘운명’을 알려준다고 한다면, 호기심에서라도 지나칠 수 없지 않겠는가.

아이러니하게도 2달러는 행운의 지폐로 알려졌지만, 이러한 행운의 2달러를 기계에 넣음으로써 안온했던 일상에 균열을 얻는 인물들이 존재한다.

본작의 주 등장인물 중 하나인 더글러스 부부가 그러하다. 남편인 더글러스는 본인의 늙은 신체, 취미의 부재, 성과 부족 등으로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는 사십 대의 역사 선생님이다. 아내인 셰릴린도 더글러스와 비슷한 맥락으로, 안정적인 일상에서 괜스레 불안함을 느껴 무언가 새로운 변화를 갈망한다.

남들이 보기에 행복하고 실제로 당사자들도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늘 완벽을 향한 갈망과 결핍에 시달리는 인간으로서 ‘내가 잘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막연한 고뇌를 품곤 하지 않은가. 그 부분을 두 부부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와중에 그러한 완벽함에 가닿을 수 있었을 나의 가능성을 알려주는 기계가 무료한 인생에서 등장하게 된다면, 이 얼마나 자극적이고 호기심이 일게 되는가.

더글러스는 비교적 그 기계를 허무맹랑한 존재로 취급하지만, 셰릴린은 더글러스 몰래 그 기계에 자신의 운명을 물었고 ‘왕족’이라는 신분의 가능성을 알게 됐다.

이를 계기로 두 부부의 안온했던 일상에는 조금씩 균열이 생겼고, 때마침 아내를 줄곧 사랑해왔던 듀스라는 인물의 등장으로 이래저래 두 부부의 신경을 긁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역경과 갈등을 겪더라도, 끝내 잘 풀어내어 휴먼 드라마적으로 마무리 짓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운명을 알려주는 기계에 대한 언급이 나오길래 판타지 소설인가 싶었는데, 그것보다는 이야기의 주제를 더욱 극대화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고 보면 될 듯하다.

제이컵, 토비, 트리나, 피트 신부 등을 둘러싼 미스테리한 이야기도 전체적인 이야기에 긴장감을 주었다. 옴니버스식으로 여러 인물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에, 별개의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부산하다는 생각은 않았다.

미스테리한 이야기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저자의 전작 ‘마이 선샤인 어웨이’가 떠올랐다. 그 작품은 이전에 한 번 읽어본 적이 있는데 오랜만에 비슷한 작품 감성이 새록새록 떠올라 반갑고 좋았다. 전작에 비교하면 본작은 분위기가 비교적 밝다. 전작은 내용이 상당히 무거운데, 재밌으니 추천한다.

총체적으로는 작은 종이 쪼가리에 적힌 내용 하나 때문에 인간이 참 쉽게 흔들릴 수 있구나 싶은 이야기였다. 나라고 해당이 안 되는 이야기도 아니고, 당장 엠비티아이나 조그마한 운세 하나에도 의미부여를 하니 할말이 없다.

나는 생각해보면 운명이 싫다. 뭘 하든 애초에 모든 게 정해져 있다는 게 참 구속적이고 심지어는 폭력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종이 쪼가리에 나온 단편적인 키워드 하나에 휩쓸려서, 주변에 있던 소중한 사람들과 환경을 망각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이 바로 그 점을 말하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내 주변의 사람들, 내 주변의 환경이 부쩍 회의적으로 느껴지는 날. 더 좋은 운명으로 살 수 있었을 거라는 기대와 아쉬움에 가지고 있던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까지 전부 놓쳐 버리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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