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현상의 상대성과 애매성에 기초한 이 세계의 모델인 소설은 전체주의적 세계와는 양립할 수 없다. (...) 이것은 정치, 도덕적일 뿐만 아니라 존재론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유일한 진리 위에 기초한 세계와 소설의 애매하고 상대적인 세계는 각기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전체주의적인 진리는 상대성과 의혹과 질문을 제거하고, 따라서 그것은 내가 소설의 정신이라 부르는 것과 어울리지 못한다. - P27
세계가 덫으로 바뀌는 이러한 변화에 있어서 결정적인 계기는 아마 1914년의, 이른바 (역사상 최초의) 세계 대전이었을 거예요. 사실은 가짜 세계 대전이죠. 그 전쟁은 유럽에만 국한되었고 그나마 유럽도 전부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나 ‘세계적‘이라는 형용사는, 이제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일도 더 이상 국지적일 수 없다는 사실, 모든 재앙은 전세계에 파장을 미치게 된다는 사실, 따라서 우리는 점점 더 외부에 의해, 어느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고 또 점점 우리를 서로 닮아 가게끔 만드는 상황에 의해 결정되리라는 사실 앞에서의 공포감을 한층 더 웅변적으로 표현해 주죠. - P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