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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의 산책 ㅣ 햇살그림책 (봄볕) 38
팻 허친스 지음, 김세실 옮김 / 봄볕 / 2020년 5월
평점 :
원서로만 보았던 <로지의 산책>, 우리말 그림책으로 다시 만났다. 하드커버 표지에 판형도 조금 커지고 번역자도 바뀌었다. 원작은 1968년작, 세월이 흘러도 좋은 그림책은 독자의 사랑을 꾸준히 받는다. 매일 쏟아지는 그림책 신간 속에서도 고전 그림책의 즐거움을 조금씩 알게 되는 요즘이다. 원서 그림책으로 장면을 훑어 넘겨보던 아이는 새로운 그림책을 발견한 듯 한국어 그림책을 더 즐겁게 읽는다. <로지의 산책>은 언어보다는 그림이 서사가 되는 그림책이지만 낯선 언어에 대한 불편함보다 아직은 우리말로 그림책을 보는 것이 더 즐겁고 편안한가 보다. 느긋하게 평화로운 농장을 산책하는 로지와 그런 로지를 쫓은 여우 사이를 흐르는 긴장감, 로지만을 쫓느라 주변을 살피지 못하는 여우의 수난이 계속된다.
아이는 우리만의 <로지의 산책>을 시작해보자고 말한다. 오늘 아침은 유치원까지 로지와 여우가 되어 산책을 하기로 했다. "제목은 세상 구경하는 로지야. 로지는 집에서 나와 길을 성큼성큼 걸어가. 엄마는 여우야 알겠지?" 아이는 로지가 되고 나는 여우가 되어 아이 뒤를 쫓는다. 벌에게 독침을 맞고 꿀을 머리에 잔뜩 부어진 다음에야 끝나는 놀이. 로지의 산책이 로지의 여행이 되고 로지의 여행이 로지의 캠핑이 되어서야 유치원에 도착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이 농장에 나타난 여우처럼 코앞에 닥쳐온 것 같지만 '지금 여기의 삶에 충실한' 하루를 보내야지. 아이와의 짧은 산책을 마치고 나 홀로 산책을 다시 시작한다. 잠시 마스크를 내리고 비온 뒤의 상쾌한 공기는 들이마시고 콸콸콸 쏟아져 내려가는 천변의 물소리도 듣고 숲속의 새소리도 들으며 걸어본다. 오늘 하루도 잘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