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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들의 책 ㅣ 폴라 데이 앤 나이트 Polar Day & Night
존 코널리 지음, 이진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08년 10월
평점 :
미하일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 만큼 완성도 높은 성장 판타지다.
주인공 데이빗의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
마치 소년 데이빗의 마음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 같다.
엄마를 잃고 아빠가 재혼하고, 이복동생이 태어났을 때 한 소년이 겪는
충격과 혼란, 질투, (자기 자리를 빼앗길까봐) 두려움, 또 그에 따른 죄책감.
심리 묘사와 현실 상황에 대한 묘사가 리얼해서 책속에 푹 빠지게 된다.
또, <해리 포터>의 역 기둥이나 <나니아 연대기>의 장롱 처럼
[지하정원]은 판타지 세계로 건너가는 훌륭한 매개체다.
등장인물도 전부 개성이 넘치는 데다가,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이를 테면, 꼬부라진 남자(이 세상 모든 이야기를 상징한다. 이 책 최고의 악역을 맡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사람으로 인해 데이빗은 한층 성장하게 된다)라던가, 숲사람(아버지를 상징한다. 데이빗이 판타지 세계로 넘어왔을 때 처음 만난 사람이자 이 세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 기사 롤랜드, 늑대인간(조나단의 악몽), 탱크(데이빗의 악몽), 여자 사냥꾼, 사슴 소녀 등.
스토리도 흥미진진해서 700p의 부담스런 두께도 단숨에 돌파한다.
동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 역시 이 책의 볼거리 중 하나.
충격적인 백설 공주와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은
<고양이 대학살>이나 <루비 레드>,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 류의 책에
흥미있는 사람이라면 볼만하고, 흥미 없었던 사람에게는 새로운 흥미를 길러줄 수 있을 듯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구절이 많다.
[ 이야기는 누군가가 말해주고 읽어주기를 그리고 생명을 얻게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야만 그들의 세계에서 우리의 세계로 건너올 수 있었다. ]
또 인생에 관한 깊은 성찰도 돋보인다.
[산다는 게 뭔지 너도 이미 잘 알겠지. 세상은 네 엄마를 빼앗아갔어.
세상은 너에게서 다른 것들도 빼앗아갈 거야. 두고 봐라.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 네 아이와 연인, 모두 너에게서 빼앗아갈 테니.
네가 아무리 그들을 사랑해도 그들을 지켜줄 수 없어. 그리고 너도 늙고 병이 들겠지.
팔다리가 아프고 눈도 흐릿해지고 피부도 점점 더 쪼글쪼글해지겠지. ]
꼬부라진 남자는 이런 말을 하며 데이빗에게 이야기 세계에서 왕으로 군림하라는
달콤한 제안을 건넨다. 하지만 데이빗은 거절한다. 왜 그랬을까?
데이빗은 이 말이 완전히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미 엄마를 잃었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나뿐만 아니라, 나의 소중한 사람들도 잃게 된다.
인간은 상실을 겪어도, 언젠가 죽어 사라질 존재라고 해도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의미 있는 존재라는 것을 소년 데이빗을 모험을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깨닫게 된다. 두려움을 이겨내고(설령 이겨내지 못하더라도),
좌절과 상실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 그 과정이 바로 '산다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