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의 유통기한 - 어느 젊은 시인의 기억수첩
이지혜 지음 / 이봄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가끔 문장을 써놓고 물끄러미 바라다봅니다. 다르게 기억하고 싶어 문장을 바꾸었다가, 이건 기억을 왜곡하는 거구나 싶어 다시 지우개로 지웁니다. 그렇게 솔직한 문장들을 써내려가고 내 마음의 소리를 듣다보니 시를 쓰게 되었죠. 그동안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문장을 써왔다면 시는 나를 잘 들여다보기 위해 써왔다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시란, 나만의 언어로 써내려가는 가장 솔직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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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잘 ‘지내는‘ 나를 보며 잘 ‘지나온‘ 것이 많았는지 생각해본다. 시간이라는 숲에서, 숲을 빼곡하게 메운 나무 무더기들 사이에서 나는 잘 지나고 있었는지. 나무에 물을 주지 않아도 잘 자라 숲을 이룬 건지, 아니면 조금 더 많은 햇살을 비춰줘야 했는지. / 산문_기억의 숲에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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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는 않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누군가의 감정이 그렇고 마음이 그렇고 결국 누군가가 그렇다. 짝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 거다. 늘 그 사람 옆에 있는데 왜 나는 투명인간 같은 건지. 나는 늘 머물고 있는데 왜 눈에 띄지 않을까. 그러다 그가 사라지면 어쩌나 불안해서 사라지지 않을 방법을 찾았엇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기억해보고 남겨보고 곱씹어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잊힐까 겁이 났다. / 산문_달의 마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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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해지기 위해서는 완연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 일을 똑바로 바라보고, 뚜렷하게 인식하고, 서로 비슷함을 깨닫는 시간. 그 후 서서히 무뎌지는 우리를 만날 수 있다. 자꾸 넘어지지 말기를, 차라리 넘어지는 데 대수롭지 않아 하기를. / 산문_그렇고 그런 일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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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할 기회가 올 때. 성격은 각각 다르지만 그때마다 느끼는것이 있다. 모든 시간, 사건, 추억을 쉽게 쓰고 지울 수는 없을까라고.
마음에 무언가를 담는다는 일은 다음 무언가가 오기 전까지 잊지 않겠다는 약속일지도 모르겠다. / 산문_지우면서 기억한다는 것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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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어느 시간이 아니라 어느 조각으로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아직 추억을 통째로 가지지 못한 사람이다. 꽃잎 하나 가졌다고 향을 가질 수는 없듯이. 다시 모든 것이 각도를 맞추어 잠시 그때가 되는 각도를 희망하지 않기로 했다. / 산문_조각의 유통기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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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이별은 정상적인 순서다. 우리는 늘 이별 앞에서 보통의 사람일 뿐. 누구에게나 특별한 무언가가 되고 싶지만 사랑이라는 지표 위에 점 하나를 찍는 일인데 뭐 그리 특별할까. ‘잊을 수 있을 만큼의, 잊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 이 말을 써놓고 한참을 생각했다. 너와 내가 만나 잊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내지만 지나보면 안다. 잊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기에 사실 우리는 뻔해도, 보석이란 것을 / 산문_흔한 보석 같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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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펼쳤던 책을 보면 어느 구간이 낡아 있다. 많이 읽은 페이지일수록 그렇다. 다시 책을 덮어보면 그 구간에 작은 틈이 보인다. 함께한 시간이 많을수록 그 구간은 간격을 조금씩 만들어두는 것 같다. 시간이 갈수록 개개의 반이 아름답다는 걸 알아가면서 서로의 자리를 조금 내어주게 되는 것은 아닐까. 소중한 당신의 자리를 더 만들어주는 것. 우리는 이렇게 영원히 반이 되는 걸까. / 산문_아름다움을 지켜주는 선에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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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시집을 어려워하셨던 분들이라면 시와 산문을 통해
조금 더 쉽게 접근하실 수 있을거라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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