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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각자의 책을 읽는다 ㅣ 읽어본다
장으뜸.강윤정 지음 / 난다 / 2017년 12월
평점 :
새해 첫날 아침에 서가를 둘러본다.
올해는 또 어떤 책들이 이 서가를 채울까.
아직 쓰이지 않은 많은 책에 대해 상상해보다가
한 권의 책 앞에서 눈이 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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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함께 서점에 가서, 함께 책을 고르고, 며칠 간격으로 나란히 책을 읽고, 두 사람이 모두 읽고 나면 이야기를 나눈다.
물론 자주 그러는 것은 아니다.
취향이 다르고, 읽는 속도가 다르며, 내가 자주 게으름을 피우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말을 나눌 때는 정말 행복하다.
“이 책은 어때?”
“아, 그거 나도 보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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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단 한 번도 말은 내 안에 머문 적이 없다. 말은 나의 입술 바깥에서 처음 생겨나 주변의 공기를 흔들고 이내 사라진다. 말이 사라지는 동안 우리는 그것을ㅡ순간의 진실을ㅡ붙잡으려고 애쓴다. 앞선 말에 이어질 말들을 불러내느라 진실로부터는 점점 멀어지면서도. 말은 사라지면서 말의 잔상은 그 순간의 나를 박제한 것처럼 남는다. 그것이 나 자신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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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연을 듣고 있자니, 과연 한 권의 책이 그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자신이 없어졌다. 하지만 결국 그가 선물하고자 하는 건 자신의 마음일 것이다. 책은, 주는 마음과 받는 마음이 잘 닿을 수 있게 완충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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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어느 순간 책을 덮고 생각에 잠긴다. 나 자신의 마음속을 거니는 듯한 생각들이다. 이 책을 읽을 때면 늘 그렇다. 같은 장면에서 멈춰 서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결말을 알고 싶지 않은 책이란, 과거 속으로 던지지 않고 더 오래 곁에 두고 싶은 그런 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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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맞서 싸우기 위해 고른 책을 읽는 게 내 일과 중 그 어느 때보다 비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때라는 점. 묘하게 자조적이고 자학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시간 운용 같아 기쁘다. 천천히 읽는 것을 두려워 말고 다만 차분히 끝까지 읽는 데만 집중해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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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이 쌓여가며 공유하는 많은 것들 가운데 책에 관한 경험의 공유만큼 일상적이면서 특별한 것이 또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낄 만큼. 마침 나도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이다. 처음으로 남편이 나보다 먼저 읽는 키냐르. 설레고 기대된다. 우리가 함께 키냐르를 읽는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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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직업병처럼, 서점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한다. 우선은 무탈히 존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시간이 쌓여야 한다는 것. 그럴수록 그 공간에 출판의 흐름과 지역의 개성과 다년간 독자들의 취향이 녹진녹진 배어들어 그 자체로 소소하면서 장구한 이야기를 품은 미디엄이 되리라는 것. 너무 금방 잊고 잊히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이 시대에, 곳곳에 테이프레코딩 되듯 시간을 품고 기록하는 곳이 있어준다면 든든하고 좋겠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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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두 권짜리 책. 굉장한 소설이었고 한동안 압도되었지만 다시 읽을 리는 없다. 읽은 책을 다시 읽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깊이 있는 새로움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러기에 사놓고 읽지 못한 책, 빌려두고 읽지 못한 책, 만들고 있는 책과 연관된 책 등등이 너무 많으니까.
그저 당신을 부러워한다. 그 책을 지금 이 순간 생생하게 읽는 당신을. 이미 나도 경험했지만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그 느낌을 지금 이 순간 느끼고 있는 당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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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에 이 책은 서점 진열대에서 독자들에게 선을 보일 것이다. 그때 독자 누구도 이 책을 만든 사람을 떠올리진 않을 것이다. 책의 표지를 여러 방향에서 그려보고, 원고의 사소한 실수들을 잡아나가고, 서점에 보낼 책의 소개문을 쓰고, 인쇄소의 소음 속에서 마침내 첫번째로 만들어진 책을 손에 쥐며 다양한 가능성을 가늠해보는 작은 숨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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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소설은 너무나 쉽고 일상적인 말들만을 사용한다. 나 역시 한 문장도 고르지 못하고 책을 덮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좋았다. 이 책에는 빛나는 구절들이 많다. 다만 그것이 맥락 속에서만 빛날 뿐이다. 우리 인생 대부분의 행복들이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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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여러 번 살고 여러 번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공간에서, 아무 소리도 없으나, 책을 읽는 내안에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즐겁다. 오로지 나만 아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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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나니 조용히 마음속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일렁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마음이구나. 느끼는 감정은 달라도 생각하는 건 비슷하다는 걸. 단순히 독서일기가 아닌 책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음에 더 고마웠다. 더 할말이 많은 책이지만 글자수 한계가 있어 여기서 줄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