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클하면 안 되나요?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4월6번째책

멋있는 남자의 긴 손가락, 늠름한 팔뚝만 뭉클한 게 아닙니다.
뭉클함이란 뜻밖에 단순하답니다.
한 번 더 말하죠.
뭉클함이란 건 단순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이미 뭉큼할이 없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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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 단추를 누르는 내게 살짝 머리를 숙이고 가는 남성의 뒷모습에! 이런 사소한 일에 뭉클하는 여자들 꽤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던 것은 조금 전 역 엘리베이터에서의 한 컷 탓.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가는 중에 ‘열림‘ 단추를 누르고 있는 내게 마지막에 내린 청년이 말했다.
˝고맙습니다.˝
정말로 자연스러운 그 어조는 그런 말에 익숙해 진 탓 이리라. 아아, ‘열림‘ 단추, 누르길 잘했다!
그 청년이 산 복권이 언젠가 당첨되기를 빌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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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 안에서 문고본 책 읽는 남자에게 눈이 간다고, 편집자들은 종종 말한다. 원래 책을 좋아하는 그녀들은 역시 책을 좋아하는 남자에게 끌리는 습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느 출판사 책일까?‘ 하는 궁금에서 오는 호기심일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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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남자가 멋있어 보이는 것은 손에 넣을 수 없는 아우라를 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가까이에 있는데 멀다. 이야기 속을 어슬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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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 손잡이에 매달려서 책을 읽는 남자를 멍하니 바라 보았다.
바로 얼마 전의 일. 지하철에서 눈앞에 앉아 있던 삼십대 샐러리맨은 최고였다. 읽고 있던 문고본 책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았던 그는 드디어 다 읽고 나서 책을 탁 덮었다.
앗, 이제 이쪽 세계로 돌아오는 건가.
생각했더니 간발의 차도 없이 가방에서 하권을 꺼냈다! 통근하면서 하권까지 준비하다니, 넘보기 어려운 남자에도 정도가 있지. 얼핏 보아서 평범해 보이는 그가, 동경하던 선배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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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대의 남자 점원은 담담하다고 할까, 묵묵히 일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별로 친하게 말을 나누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 할아버지는 자신이 피우는 담배를 기억해주는 걸 기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자상한 청년이다. 그걸 발견한 늦가을의 한낮, 나는 기분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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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불쾌할 일 없는 최강의 말일지도 모르는 ˝조심해요.˝
단골 가게에 데리고 갔을 때, ˝계단 가파르니까 조심해요˝ 하고 돌아봐주면, 때에 따라서는 좋아하게 될 가능성도 있으니, 별로 좋아해주길 바라지 않는 여성에게는 그런 말 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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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기니 이따금 밑줄을 그어놓았다. 볼펜으로 그은 거친 선.
나도 곧잘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어서 기분은 안다. 그러나 그 책은 누구에게도 빌려주지 않는다. 어디서 마음이 끌렸는지 알려지는 게 쑥스럽다. 내 내면을 내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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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뭉클이란 단어를 써본적도 들어본적도 없는 것 같다.
세상을 그렇게 각박하게 살고 있지는 않은 듯 한데 말이지.

마스다미리의 책을 읽고 있자면, 정말 감수성많고 수줍음이 많은 평범한 여자의 일기장을 읽어보는 듯한 기분이다. 너무 평범한데 읽고 나면 여운이 짙다.

앞으로는 뭉클하다는 단어를 자주 써보도록 해야겠다.

쉬는날인데 비가 온다.
저녁에 시집을 읽을 수 있게 되어서
뭉클하다.

#다음엔뭐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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