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서 가능한 날들이었다
정기린 지음 / 달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그런데 당신, 그거 아세요? 뒷모습만으로도 사람들은 자기 인상이라든지 분위기라든지, 그런 걸 꽤 말하거든요. 그래서겠죠,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씨익 미소 짓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어요. 뒷모습만으로도 살아온 시간은 어떠했겠으며 살아가는 모습은 또 어떠할지를 얼추 가늠케 되는 사람들이 있듯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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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 한들 몸을 벗어난 정신으로써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차원의 이치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가장 근본적이고도 주된 임무란 육체와 정신의 선순환을 도모하여 영혼이 거듭나고 마침내 격상하도록 정진하는 일이겠으며, 절은 그 양자를 두루 정제하고 단련시키기에 최적화된 방법 가운데 하나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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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설움을 차곡차곡 쌓아두었으니 오늘은 울음이 되어 터져나오려는 모양이구나 싶은 불안을 감지하게 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자신을 잃고 허둥대다 꼭 한 번은 실수를 하기 때문에, 그 불안은 또한 두려움이기도 하겠다. 여하튼 그런 날이 오면 하루가 다 가기 전에 어떻게든 울어보려 안감힘을 쓰는데, 언제부턴가 그럴 때마다 눈물은 쏟아내지 못하고 가슴만 부여잡거나 헛구역질만 하다가 끝나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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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이만큼 먹고 보니, 별일이 아닌 것들에도 마음은 이토록 쓸쓸하여 바닥에 쓸리고 마는 것이다. 단 하루라도 사내답게 제대로 운 날이 있다면 그해는 제법 잘 보낸 것이라, 그렇게 믿으며 아마도 젊었던 날들을 살았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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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이 아니면 안 되겠노라고, 그러니 나를 믿어달라고 이토록 간절했으면서도, 정작 당신에게는 나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그건 도대체 무엇인지 여태껏 깊이 고심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나라는 사람, 이렇게나 어처구니없고 마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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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세월에 도대체 무얼 하며 여기에 이른 것인지, 자신의 삶을 두고 하나의 이야기를 엮어내려 하면 막막하기가 그지없습니다.
다만 진실로 행복하고자, 그럴 수 있도록 행복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나와 우리는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고찰하는 데 어림잡아 이만 시간쯤은 거뜬히 쏟아부어온 사람이겠노라, 이제 와 당신에게 지나온 날들을변명할 따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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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영원을 기약하지도 청하지도 않아요. 바라는 것은 오직 단 하나, 지금 이 순간입니다. 오직 그 속에서만, 우리는 바야흐로 만남도 헤어짐도 없는 영원을 살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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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살아온 날들과 이미 쓰인 것들 말고도
내게는 앞으로 만들어나갈 세계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니,
그것들로 한 시절 그대를 살게 하는 이가 되기를
청해보아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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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는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말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온전히 깨우쳐야 마땅하겠노라는 깨달음을 다시 한번 되새겨봅니다. 아무래도 지금으로써는, 내가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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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받고 훑어 보았을 때는 내가 좋아할 만한 책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래도 읽어보자 해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글을 넘길 때마다 이 책은 제대로 다 읽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훑어봐서는 이 책의, 이 글의 깊이를 도저히 알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 읽어보고 나니 알겠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도대체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사람을 사랑했을까 하는 마음을 다는 아니어도 조금이라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이 책 뒷 편에 적혀있다.

이 편지는 끝내 부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당신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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