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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클래식 클라우드 38
이강영 지음 / arte(아르테)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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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매 주말 문화재 답사 목적으로 경주에 다니느라 행복했지만, 단 한 가지 아쉬운 건 주말에 가까운 도서관이나 집 뒷산 아래 조망 좋은 단골 카페에서 책읽는 시간을 거의 잃어버렸다는 거다. 그래도 나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독서 시간 총량의 법칙을 지키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언젠가 부터는 잠 깬 후 아침 독서 루틴을 만들었다. 아침 잠이 점점 없어져 가는 게 동인이었다. 누구의 방해도 없는 여명기의 출근 전 1~2시간은 책 읽기 더 없이 좋은 시간이다.
최근 약 2주 가량 그 아침 시간에 진주 경상대 이강영 교수님이 쓴 아인슈타인 전기를 읽었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은 어떤 책이라도 부피의 부담감이 있기 마련인데, 저자 이름 석자만 보고 시작했다. 엊그제 아침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는데 그 기분을 뭐라 표현할 수 없었다. 통칭하여서는 ‘감동’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런 표현만으로는 이 책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하겠다. 그 역시 과학자이면서 과학적 글쓰기의 귀재라고 할 수 있는 저자가, 역사상 최고 천재의 전기를 우리말로 쓴 것이 적확히 잘 맞아 떨어졌다고 해야 할까. 단 1페이지도 놓칠 수 없는 충만감과 흥미진진함의 연속이었다. 548페이지의 전기에서 마지막 한 장 까지 이런 재미를 맛보기는 어렵다.
20대 중반에 구 소련의 국립연구소에서 나온 두 권 짜리 마르크스 전기를 읽은 적이 있다. 사상의 지지 여부를 떠나 역사 인물의 전기로는 내 생애 최고의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작은 활자가 빽빽했던 책에 밑줄을 가득 그었고, 여백을 간단한 소회와 궁금증으로 매웠다. 그 책은 여러 번의 책장 정리에도 버리지 않고 내 책장 어느 구석에 꽂혀있다. 그 후에는 한 동안 전설적인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저작물을 찾아 읽은 기억이 있다. 뭐 대단한 전기 독서 편력도 아니지만 이제 이 아인슈타인 전기를 맨 위에 놓겠다.
역사인물의 전기를 재미있게 쓴다는 게 쉽지 않다. 저자의 수준에 따라 사료의 단순한 짜깁기가 되거나 검증 불가능한 호의적인 감상문이 되기 십상이다. 그 대상이 과학자라면 그의 과학적 성과를 설명해야 하는데, 그 난이도를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저자의 핵심 역량이 될 수 밖에 없다. 대상의 전문적 성과는 일단 접어두고 그의 일생이 궁금하다면 그냥 넘어가는 페이지가 많을 수도 있으나, 그가 낸 성과물의 가치가 과학사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지라도 알면, 그의 다른 일생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고 남다른 감흥을 받을 수 있다.
저자 이강영 교수님은 과학자의 성과물을 대중들에게 탄력적이고 품위있게 풀어내는 능력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탁월하다. 물론 과학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독자로서 이해의 한계는 있을 수 밖에 없지만 그런 점까지 염두에 두고 서술하고, 문장을 지루하지 않게 하기 위해 곳곳에 특유의 유머코드도 숨겨 놓고 있다.
일자리를 찾아 동분서주하던 아인슈타인의 실업자 시절,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 막스프랑크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들은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26세 청년의 특허청 공무원 시절, 첫 부인 밀레바와의 불안불안 했던 결혼과 이혼 과정, 호의적인 부름이든 도피 목적이든 한 곳에 오래 정착 하지 못한 빈번한 이주 시절, 노벨상 수상식 대신 일본 투어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 작은 에피소드 하나 하나, 인생을 바꾸는 서사들, 급변했던 당대의 역사적 배경 등 잠시도 한눈을 팔지 못하게 했다.
그중에서도 무척 흥미로웠던 부분은 일반상대성이론의 결과물인 중력장 방정식 도출 과정에서 나온, 당대의 수학자 힐베르트와의 미묘한 관계였다. 일반상대성이론이 애초에 아인슈타인이 오랫동안 연구한 성과물이고 이후의 과학을 바꾼 이론이므로 경쟁이라고 하기에는 맞지 않는데, 중력장방정식 도출 과정에서 그런 뜻밖의 뒷이야기가 있었다는 건 일반 독자에게는 무척 생경하고 놀라운 것이었다.
두 번의 세계전쟁이 있었고 인류 문명사적으로도 가장 격변하던 시대의 이야기인 만큼 많은 걸출한 인물들이 나온다. 아인슈타인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멋진 인생 단편들을 만날 수 있는 건 이 책이 주는 아름다운 덤이다.
흥미로웠던 인물 중에 루마니아 출신의 수학자이면서 평생 아인슈타인과 교류를 한 모리스 솔로빈이 생각나고, 세기의 과학자들의 단체사진으로 유명한 솔베이학회를 연 사업가 솔베이, 별빛이 태양 중력에 의해 휘어지는 현상을 관측하여 일반상대성이론을 실험적으로 검증한 에딩턴, 아인슈타인의 미국행을 결정하게 한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설립자인 백화점 재벌 밴버거 남매가 특히 인상에 남는다. 그리고 아인슈타인 사후, 부검을 집도하여 누구의 하락도 받지 않고 뇌를 꺼낸 토마스 하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이면서도, 일상의 희노애락을 멀리 하지 않았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유쾌하였으며, 생계를 걱정한 청춘, 평범한 가장, 소박하고 건전한 생활인으로 살다가 ‘숭배도 두려움도 없이 떠난’ (책의 에필로그 제목) 그를 이렇게 기리는 것 이상 더 할 수 있는게 뭐 있겠나.
부록으로 된 아인슈타인 연표까지 다 읽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너무 먹먹하고 아쉬워서 한동안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한번 더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올라오는 책이 드문데, 이 책이 바로 그렇다.
이 탁월한 전기를 읽은 감상을 이렇게 까지 밖에 남기지 못해 죄송하다. 저자에게도, 아인슈타인 선생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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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클래식 클라우드 38
이강영 지음 / arte(아르테)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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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쓴 천재 과학자의 전기. 거의 완벽하게 재현된 아인슈타인의 일대기와 그 시대의 역사, 주변인들의 관계가 철저히 사료에 의해 기술되었고, 500페이지가 넘는 두께지만 문장이 매우 아름다워서 끝까지 책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근래 보기 드문 탁월한 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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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사람이 미워졌습니까 - 공감불능 시대의 마음 탐구
박선화 지음 / 한길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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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화 작가는 이미 페이스북과 언론 칼럼을 통해, 세련되고 힘 있는 글을 보여주고 있는 분이다. 사람의 마음을 탐구하는 전문가의 시선과 현실에 발을 딛고 사는 대중의 시선을 아우르며, 우리 사회의 복잡한 현상과 난제들을 자신만의 목소리로 쉽게 설명해내는 능력을 가진 대체 불가의 작가다.


같은 사람이 쓴 SNS의 글, 신문의 글, 책의 글은 각기 글쓴이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지만, 그 글들이 독자에게 닿았을 때의 느낌은 모두 다르다. SNS 글은 뇌에서 손끝으로 직진하는 날 것 그대로의 활달함이 있고, 신문의 글은 몸통만 정형하여 보여주는 각 잡힌 절제미가 있다. 책은 자유와 절제를 아우르면서 작가가 가진, 고유하면서도 깊고 내밀한 세계로 이끌어 준다. 그 세계를 통해 독자는 작가의 끝없는 지적 모험과 폭넓은 문화적 취향을 따라가기도 하지만, 작가의 집요한 탐구 정신과 남다른 체험으로 부터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생생한 현실을 목격하기도 한다.


크고 작은 이슈가 넘쳐나서 지루할 틈이 없는 나라, 작으면 작은 논쟁이 크면 큰 논쟁이 벌어진다. 사실, 논점에 웬만큼 정통하지 않고는 전방위에서 터져나오는 공격과 방어의 틈바구니에서 어느 쪽이든 군말 없이 잠재울 수 있는 설득력을 갖추기는 어렵다. 편견, 오독, 논리비약, 확증편향과 싸우는 일은 피곤하고 소모적이다. 말과 말 아닌 것이 부딪치는 싸움에서 결국 터져 나오는 말이 그래 니 말이 맞다.” 이다. 무지와 고집은 꺽이지 않으라고 존재하는 것이라는 용맹함 앞에서는 백약이 무효다.

그래도 누군가는 끊임없이 무게의 추를 조절하며 합리와 부조리, 현실과 이상, 관념과 실질, 왼편과 오른편의 세계에 대해 집요하게 설명하고, 적어도 세상이 그런 식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는 최소한의 당위를 담담하게 진술할 수 있어야 한다.


고층 건축현장에 높이 솟은 거대한 크레인, 그런 크레인에는 웨이트라는 장치가 있다. 우리말로 하자면 무게추, 균형추라고 할 수 있다.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크레인 긴 붐대 반대편에 시루떡처럼 생긴 강철 덩어리가 몇 겹으로 장착되는데, 200톤급 크레인에 필요한 웨이트의 무게만 70톤을 넘는다. 크레인이 클 수록 웨이트의 무게도 늘어난다. 크레인의 크기에 비해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로 작아서 멀리서 보면 그런 게 있는지 조차 모르지만 그게 없으면 크레인은 홀로 지탱하지 못한다박선화 작가의 글을 볼 때마다 나는 거대 크레인에 설치된 웨이트를 생각한다.


그 웨이트는 사회 일반을 향해 작용하기도 하지만, 더 큰 기능은 글을 읽는 독자를 향한 작용이다. 모든 의견은 자칫 극단으로 흐를 수가 있다. 많이 배운 사람이든 그렇지 못한 사람이든, 자신의 제한된 경험치에 사회적 압박이 가중 되면 놀랄 정도의 편향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런 일이 내 속에서 일어날 때, 혼란스럽고 스스로에게 경책 할 수 밖에 없으나 그런 식의 내적 붕괴를 저 쪽에서 강한 무게로 잡아주는 글이 바로 박선화 작가의 글이다. 그런 글을 휴대폰만 열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건 행운인데, 책이 나왔으니 책으로 보자. 이제 다이닝 레스토랑에 앉은 것처럼 여유를 가지면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시간을 두고 찬찬히 음미해 보자.

 

그리고, 괜히 끌린 한 단락.


외로운 인생길에 내 편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내 편은 한통속에 갇힌 사람이 아니라 경계를 드나드는 자유로운 사람이어야 할 것 같다. 진정한 인류애를 고민해야 할 위치에 있는 존재들이라면 더욱 자신의 위치를 중심이 아닌 경계에 세우는 노력을 쉼 없이 해야 한다. 배타적인 형제애와 신념은 담합이 되고, 굳건해질수록 더욱 강력한 악이 되기 때문이다. 사랑하려면 홀로 서야 한다.’ (191)

 

, <언제부터 사람이 미워졌습니까> 제목 한 번 잘 지었다. 언제부터인지, 왜인지는 모르겠고 요즘 내가 그렇다. 나만 그렇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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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 번째 이름은 연아입니다 - 가난하거나, 아프거나, 술 취했거나, 미치지 않으면 나를 만날 수 없다
신아현 지음 / 데이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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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불안, 연민, 두려움, 처연함, 답답함, 외로움, 분노, 희망, 기쁨, 다행.. 일어날 수 있는 인간의 모든 감정이 적나라하게 느껴지지만 그 모든 감정을 누르는 하나의 느낌을 말하자면 바로 '먹먹함'이다.


책은 사회복지 최일선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례들의 옴니버스식 묶음으로 보이지만크게는 작가와 주인공들의 이야기 두 갈래이고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결국 그 모든 이야기들이 하나로 붙어 있음을 알게 된다.

 

저마다 거칠고 애잔한 사연을 가진 주인공들의 인생사가 온갖 감정을 숨길 수 없게 사정없이 올라오게 하고, 책을 쓴 작가의 일상과 인생이야기도 남의 일이라 할 수 없을 만큼 우리가 겪거나 알고 있는 현실에 바싹 붙어 있다. 작가의 이야기만 떼놓고 보면 수년 전 출간되어 큰 이슈가 되고 영화로 만들어진 <82년생 김지영>이 떠오르기도 한다.

 

숨을 죽이고 읽을 수 밖에 없는, 우리 시대 복지 정책 최후의 보루에서 벌어지는 전쟁 같은 현실들의 기록이다. 그 전쟁에서 이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받지만, 때론 의외의 지점에서 감동과 위로를 나눈다.

 

노인빈곤율, 자살율 세계 최고라는 통계는 숫자 속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 같은 저부담 저복지 국가에서 물려받은 재산이 없고, 사고나 노화로 노동능력이 없어지면 생존은 문자 그대로 전쟁일 수 밖에 없고 국가는 한정된 재원으로 그들이 최소한의 삶을 버티도록 책임져야 한다. 그 복마전같은 현실이 맞닿는 지점에서 누군가는 국가가 되어 일생을 던져야한다.

 

그 종잡을 수 없는 전쟁 같은 일상을 수행하는 사람을 우리는 공무원이라 부르는데, 현장에서는 주어진 공무를 넘어서고 제도로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넘쳐난다. 작가는 월급받으며 자기 성격에 맞고 좋은 일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사회복지 공무원이 되었다고 했으나 일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현타를 느끼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베테랑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성장하면서 무수한 제도적 한계와 싸우고 불가근불가원의 험난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면서 창의적으로 찾아내고 이루어낸 성과들은 대단하고, 눈물겹게 고맙다.

수혜자들을 문서 속에 있는 업무 대상으로서 타자가 아닌, 존엄성을 가진 한 개인으로 존중하고 상상으로도 그들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는 이뤄내기 어려운 성과들이다.  


죽음의 공포까지 느낄 정도로 막장까지 겪은 청년 공무원 시절을 지나, 여전히 힘들지만 마치 보살도를 수행하듯 내공을 올리며 공무의 힘을 슬기롭게 펼치는 어느 중견 사회복지공무원의 일상과 인생사가 처절하면서도 아름답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주제의 성격에 맞게 어조는 시종 담담하지만, 문장은 책에서 보이는 작가의 외향적인 품성만큼 활달해서 단숨에 읽히는 힘이 있다.

책 안읽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출판물은 무수하게 쏟아진다. 옥석을 가리기 어려운 출판 홍수속에서 같은 시대,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사람으로 마땅히 알아야 할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읽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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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 세계 - 6가지 물질이 그려내는 인류 문명의 대서사시
에드 콘웨이 지음, 이종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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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세계
/에드 콘웨이 /이종인 역/인플루엔셜

너무 평범하게 존재하면서 세상을 만들고 유지시키고 있는 여섯가지 물질 이야기.
모래, 소금, 철, 구리, 석유, 리튬.
이 물질들뿐 아니라 그와 밀접히 연결된 다른 물질과 사물들의 과학사, 문명사, 산업사이며, 실물 경제학이자 미래학이다.

각 물질의 원천에서부터 인류 문명사에 들어오고, 현대의 평범한 사물들 속에 깊이 안착해서 그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하게 이를 때까지의 빅히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그 물질들의 공급망을 추적하다보면 세상이 얼마나 조밀하게 엮여있는지 알 수 있고, 그 복잡한 공급망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무너지거나 허약해질 경우 세계의 산업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절망적일 수 있다.
흔하디 흔한 모래도 실리카 함량이 높은 프랑스 남쪽 퐁텐블로숲에서 나오는 백사가 아니면 유리의 재료가 되지 못한다.
근대의 유리기술은 현대의 반도체기술만큼이나 복잡하고 비밀스러워서 국력의 지표가 되기도 했다. 1차대전 무렵 영국은 고성능 망원경 렌즈를 만들지 못해 적국인 독일에서 수입했다.

고대 소금길의 역사, 전통이 크게 변하지 않은 철재련 현장 , 편재된 구리산지의 영향력, 여전히 공고한 중동중심의 석유공급망, 콩고의 비극이 내재된 리튬이온전지.. 이 물질들의 생산과 공급망을 현미경처럼 들여다 보면 마치 복잡한 도미노처럼 엮여 있어서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한 생산과 공급, 최종 소비까지 한 두 사람이 그 전모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이 물질들은 인류 문명사와 함께 발을 맞추어 점점 더 많은 기능을 하게되고
복잡한 제품을 평범하게, 비싼 재료를 저렴하게 하면서 보편적인 풍요를 가져왔지만 현대에 이르면서는 기후위기를 가속화시킨 물질로 간주되어 속히 무언가로 대체되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단순하지 않다. 이 물질들의 네트워크는 너무 오래 고착화되고 얽혀서 실마리를 풀어가는데 기술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지정학적인 난제들이 무수하다.
이 물질들이 가지고 있는 효율성이나 에너지밀도를 대체할 전혀 새로운 물질이나 기술이 출현하길 기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은 몇세대에 걸쳐 꾸준히 지속되어야 하고, 그 결과물을 향유할 때 현 세대는 세상에 없다. 보이지도 않을 미래세대를 위해 현재의 효율성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선진국들에서나 가능하지, 이제 막 그 효율성을 맛보기 시작한 신흥개발국들에게는 진짜 먼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선진국들의 신기술과 자본이 급속히 이전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마치 아프리카 저개발국에서도 휴대전화가 보급되어 사용하는 것 처럼.

거대한 물질공급망으로 인한 환경재앙 시대를 겪지 않기 위해서는 바로 수십층을 건너뛰는 수직상승 엘리베이터를 준비해야 하는데, 간단치 않다.
화석연료는 재생에너지로 대체되는 걸로 생명이 끝나지 않는다.
석유, 석탄에서 나오는 부산물들은 현대 첨단 중화학공업 산업공정의 핵심 재료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가동하는 장비들을 구성하는 재료는 화석연료없이 만들 방법이 없다. 석탄에서 나오는 코크스없이는 강철을 재련할 수 없다. 신재생에너지의 전망이 어둡지 않고 갈수록 그 효율을 높혀가겠지만, 여전히 범지구적 차원에서 화석연료를 온전히 대체할 정도의 여건은 되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특이점을 넘어 전혀 다른 개념의 기술을 개발하는 시대가 오면 상황은 급격히 바뀔 수 있겠지만, 여전히 우리는 플라스틱 빨대 하나 쉽게 없애지 못하는 형편이다.

재미있고, 풍부하며, 집요하게 세상을 만들어온 여섯 물질의 미시사와 거시사를 촘촘히 엮었다.
주제의 깊이와 폭으로는 지난 세기말에 나온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에 필적할만 한데, 현장감 및 스토리테링의 전개와 유려한 문장은 총균쇠를 뛰어 넘는다. 우리말로 거의 막힘 없이 읽히는 데는 번역자의 공이 클 것이다.
난독의 내 독서이력으로 10년에 한번 만날까 말까한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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