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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사람이 미워졌습니까 - 공감불능 시대의 마음 탐구
박선화 지음 / 한길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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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화 작가는 이미 페이스북과 언론 칼럼을 통해, 세련되고 힘 있는 글을 보여주고 있는 분이다. 사람의 마음을 탐구하는 전문가의 시선과 현실에 발을 딛고 사는 대중의 시선을 아우르며, 우리 사회의 복잡한 현상과 난제들을 자신만의 목소리로 쉽게 설명해내는 능력을 가진 대체 불가의 작가다.


같은 사람이 쓴 SNS의 글, 신문의 글, 책의 글은 각기 글쓴이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지만, 그 글들이 독자에게 닿았을 때의 느낌은 모두 다르다. SNS 글은 뇌에서 손끝으로 직진하는 날 것 그대로의 활달함이 있고, 신문의 글은 몸통만 정형하여 보여주는 각 잡힌 절제미가 있다. 책은 자유와 절제를 아우르면서 작가가 가진, 고유하면서도 깊고 내밀한 세계로 이끌어 준다. 그 세계를 통해 독자는 작가의 끝없는 지적 모험과 폭넓은 문화적 취향을 따라가기도 하지만, 작가의 집요한 탐구 정신과 남다른 체험으로 부터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생생한 현실을 목격하기도 한다.


크고 작은 이슈가 넘쳐나서 지루할 틈이 없는 나라, 작으면 작은 논쟁이 크면 큰 논쟁이 벌어진다. 사실, 논점에 웬만큼 정통하지 않고는 전방위에서 터져나오는 공격과 방어의 틈바구니에서 어느 쪽이든 군말 없이 잠재울 수 있는 설득력을 갖추기는 어렵다. 편견, 오독, 논리비약, 확증편향과 싸우는 일은 피곤하고 소모적이다. 말과 말 아닌 것이 부딪치는 싸움에서 결국 터져 나오는 말이 그래 니 말이 맞다.” 이다. 무지와 고집은 꺽이지 않으라고 존재하는 것이라는 용맹함 앞에서는 백약이 무효다.

그래도 누군가는 끊임없이 무게의 추를 조절하며 합리와 부조리, 현실과 이상, 관념과 실질, 왼편과 오른편의 세계에 대해 집요하게 설명하고, 적어도 세상이 그런 식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는 최소한의 당위를 담담하게 진술할 수 있어야 한다.


고층 건축현장에 높이 솟은 거대한 크레인, 그런 크레인에는 웨이트라는 장치가 있다. 우리말로 하자면 무게추, 균형추라고 할 수 있다.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크레인 긴 붐대 반대편에 시루떡처럼 생긴 강철 덩어리가 몇 겹으로 장착되는데, 200톤급 크레인에 필요한 웨이트의 무게만 70톤을 넘는다. 크레인이 클 수록 웨이트의 무게도 늘어난다. 크레인의 크기에 비해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로 작아서 멀리서 보면 그런 게 있는지 조차 모르지만 그게 없으면 크레인은 홀로 지탱하지 못한다박선화 작가의 글을 볼 때마다 나는 거대 크레인에 설치된 웨이트를 생각한다.


그 웨이트는 사회 일반을 향해 작용하기도 하지만, 더 큰 기능은 글을 읽는 독자를 향한 작용이다. 모든 의견은 자칫 극단으로 흐를 수가 있다. 많이 배운 사람이든 그렇지 못한 사람이든, 자신의 제한된 경험치에 사회적 압박이 가중 되면 놀랄 정도의 편향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런 일이 내 속에서 일어날 때, 혼란스럽고 스스로에게 경책 할 수 밖에 없으나 그런 식의 내적 붕괴를 저 쪽에서 강한 무게로 잡아주는 글이 바로 박선화 작가의 글이다. 그런 글을 휴대폰만 열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건 행운인데, 책이 나왔으니 책으로 보자. 이제 다이닝 레스토랑에 앉은 것처럼 여유를 가지면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시간을 두고 찬찬히 음미해 보자.

 

그리고, 괜히 끌린 한 단락.


외로운 인생길에 내 편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내 편은 한통속에 갇힌 사람이 아니라 경계를 드나드는 자유로운 사람이어야 할 것 같다. 진정한 인류애를 고민해야 할 위치에 있는 존재들이라면 더욱 자신의 위치를 중심이 아닌 경계에 세우는 노력을 쉼 없이 해야 한다. 배타적인 형제애와 신념은 담합이 되고, 굳건해질수록 더욱 강력한 악이 되기 때문이다. 사랑하려면 홀로 서야 한다.’ (191)

 

, <언제부터 사람이 미워졌습니까> 제목 한 번 잘 지었다. 언제부터인지, 왜인지는 모르겠고 요즘 내가 그렇다. 나만 그렇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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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 번째 이름은 연아입니다 - 가난하거나, 아프거나, 술 취했거나, 미치지 않으면 나를 만날 수 없다
신아현 지음 / 데이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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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불안, 연민, 두려움, 처연함, 답답함, 외로움, 분노, 희망, 기쁨, 다행.. 일어날 수 있는 인간의 모든 감정이 적나라하게 느껴지지만 그 모든 감정을 누르는 하나의 느낌을 말하자면 바로 '먹먹함'이다.


책은 사회복지 최일선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례들의 옴니버스식 묶음으로 보이지만크게는 작가와 주인공들의 이야기 두 갈래이고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결국 그 모든 이야기들이 하나로 붙어 있음을 알게 된다.

 

저마다 거칠고 애잔한 사연을 가진 주인공들의 인생사가 온갖 감정을 숨길 수 없게 사정없이 올라오게 하고, 책을 쓴 작가의 일상과 인생이야기도 남의 일이라 할 수 없을 만큼 우리가 겪거나 알고 있는 현실에 바싹 붙어 있다. 작가의 이야기만 떼놓고 보면 수년 전 출간되어 큰 이슈가 되고 영화로 만들어진 <82년생 김지영>이 떠오르기도 한다.

 

숨을 죽이고 읽을 수 밖에 없는, 우리 시대 복지 정책 최후의 보루에서 벌어지는 전쟁 같은 현실들의 기록이다. 그 전쟁에서 이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받지만, 때론 의외의 지점에서 감동과 위로를 나눈다.

 

노인빈곤율, 자살율 세계 최고라는 통계는 숫자 속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 같은 저부담 저복지 국가에서 물려받은 재산이 없고, 사고나 노화로 노동능력이 없어지면 생존은 문자 그대로 전쟁일 수 밖에 없고 국가는 한정된 재원으로 그들이 최소한의 삶을 버티도록 책임져야 한다. 그 복마전같은 현실이 맞닿는 지점에서 누군가는 국가가 되어 일생을 던져야한다.

 

그 종잡을 수 없는 전쟁 같은 일상을 수행하는 사람을 우리는 공무원이라 부르는데, 현장에서는 주어진 공무를 넘어서고 제도로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넘쳐난다. 작가는 월급받으며 자기 성격에 맞고 좋은 일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사회복지 공무원이 되었다고 했으나 일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현타를 느끼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베테랑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성장하면서 무수한 제도적 한계와 싸우고 불가근불가원의 험난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면서 창의적으로 찾아내고 이루어낸 성과들은 대단하고, 눈물겹게 고맙다.

수혜자들을 문서 속에 있는 업무 대상으로서 타자가 아닌, 존엄성을 가진 한 개인으로 존중하고 상상으로도 그들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는 이뤄내기 어려운 성과들이다.  


죽음의 공포까지 느낄 정도로 막장까지 겪은 청년 공무원 시절을 지나, 여전히 힘들지만 마치 보살도를 수행하듯 내공을 올리며 공무의 힘을 슬기롭게 펼치는 어느 중견 사회복지공무원의 일상과 인생사가 처절하면서도 아름답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주제의 성격에 맞게 어조는 시종 담담하지만, 문장은 책에서 보이는 작가의 외향적인 품성만큼 활달해서 단숨에 읽히는 힘이 있다.

책 안읽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출판물은 무수하게 쏟아진다. 옥석을 가리기 어려운 출판 홍수속에서 같은 시대,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사람으로 마땅히 알아야 할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읽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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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 세계 - 6가지 물질이 그려내는 인류 문명의 대서사시
에드 콘웨이 지음, 이종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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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세계
/에드 콘웨이 /이종인 역/인플루엔셜

너무 평범하게 존재하면서 세상을 만들고 유지시키고 있는 여섯가지 물질 이야기.
모래, 소금, 철, 구리, 석유, 리튬.
이 물질들뿐 아니라 그와 밀접히 연결된 다른 물질과 사물들의 과학사, 문명사, 산업사이며, 실물 경제학이자 미래학이다.

각 물질의 원천에서부터 인류 문명사에 들어오고, 현대의 평범한 사물들 속에 깊이 안착해서 그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하게 이를 때까지의 빅히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그 물질들의 공급망을 추적하다보면 세상이 얼마나 조밀하게 엮여있는지 알 수 있고, 그 복잡한 공급망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무너지거나 허약해질 경우 세계의 산업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절망적일 수 있다.
흔하디 흔한 모래도 실리카 함량이 높은 프랑스 남쪽 퐁텐블로숲에서 나오는 백사가 아니면 유리의 재료가 되지 못한다.
근대의 유리기술은 현대의 반도체기술만큼이나 복잡하고 비밀스러워서 국력의 지표가 되기도 했다. 1차대전 무렵 영국은 고성능 망원경 렌즈를 만들지 못해 적국인 독일에서 수입했다.

고대 소금길의 역사, 전통이 크게 변하지 않은 철재련 현장 , 편재된 구리산지의 영향력, 여전히 공고한 중동중심의 석유공급망, 콩고의 비극이 내재된 리튬이온전지.. 이 물질들의 생산과 공급망을 현미경처럼 들여다 보면 마치 복잡한 도미노처럼 엮여 있어서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한 생산과 공급, 최종 소비까지 한 두 사람이 그 전모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이 물질들은 인류 문명사와 함께 발을 맞추어 점점 더 많은 기능을 하게되고
복잡한 제품을 평범하게, 비싼 재료를 저렴하게 하면서 보편적인 풍요를 가져왔지만 현대에 이르면서는 기후위기를 가속화시킨 물질로 간주되어 속히 무언가로 대체되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단순하지 않다. 이 물질들의 네트워크는 너무 오래 고착화되고 얽혀서 실마리를 풀어가는데 기술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지정학적인 난제들이 무수하다.
이 물질들이 가지고 있는 효율성이나 에너지밀도를 대체할 전혀 새로운 물질이나 기술이 출현하길 기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은 몇세대에 걸쳐 꾸준히 지속되어야 하고, 그 결과물을 향유할 때 현 세대는 세상에 없다. 보이지도 않을 미래세대를 위해 현재의 효율성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선진국들에서나 가능하지, 이제 막 그 효율성을 맛보기 시작한 신흥개발국들에게는 진짜 먼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선진국들의 신기술과 자본이 급속히 이전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마치 아프리카 저개발국에서도 휴대전화가 보급되어 사용하는 것 처럼.

거대한 물질공급망으로 인한 환경재앙 시대를 겪지 않기 위해서는 바로 수십층을 건너뛰는 수직상승 엘리베이터를 준비해야 하는데, 간단치 않다.
화석연료는 재생에너지로 대체되는 걸로 생명이 끝나지 않는다.
석유, 석탄에서 나오는 부산물들은 현대 첨단 중화학공업 산업공정의 핵심 재료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가동하는 장비들을 구성하는 재료는 화석연료없이 만들 방법이 없다. 석탄에서 나오는 코크스없이는 강철을 재련할 수 없다. 신재생에너지의 전망이 어둡지 않고 갈수록 그 효율을 높혀가겠지만, 여전히 범지구적 차원에서 화석연료를 온전히 대체할 정도의 여건은 되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특이점을 넘어 전혀 다른 개념의 기술을 개발하는 시대가 오면 상황은 급격히 바뀔 수 있겠지만, 여전히 우리는 플라스틱 빨대 하나 쉽게 없애지 못하는 형편이다.

재미있고, 풍부하며, 집요하게 세상을 만들어온 여섯 물질의 미시사와 거시사를 촘촘히 엮었다.
주제의 깊이와 폭으로는 지난 세기말에 나온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에 필적할만 한데, 현장감 및 스토리테링의 전개와 유려한 문장은 총균쇠를 뛰어 넘는다. 우리말로 거의 막힘 없이 읽히는 데는 번역자의 공이 클 것이다.
난독의 내 독서이력으로 10년에 한번 만날까 말까한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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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 - 판사란 무엇이며, 판결이란 무엇인가
손호영 지음 / 동아시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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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 법조를 경험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판사를 보는 시선은 다르고, 어떤 경우에는 서로 넘기 어려운 양안에 서 있기도 하다.
법이 정의로워야 한다는 게 일반의 상식이지만 법조에서는 정의만큼이나 법적안정성을 중요하게 보기 때문에 태생적인 간극이 생긴다. 상식과 법의 충돌이 일어나는 지점이다.

법조직역에 있는 사람이라면 첨예하게 대립된 분쟁이든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된 분쟁이든 판사의 판결이 쉽지 않은 작업이란걸 잘 안다. 판사는 대립된 당사자의 주장과 증거를 취사선택하여 법리에 어긋나지 않게 길을 만들어간다. 그 길이 걸을 수 없는 길이 되어서는 안되므로 직업으로서의 판사는 엄격하고 명료해야 할 숙명을 타고 났다. 그럼에도 분쟁은 사람의 일이라, 법으로만 풀 수 없는 지점이 곳곳에 숨어있다.

그런 숙제라 할지라도 결국 반드시 풀어야 하므로 때로 판사의 판결에는 깊은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기도 하고, 완곡하지만 진심이 담긴 인간적 고민이 드러나기도 한다.
법의 길은 잘 닦인 아스팔트도 아니고, 개척해야 나아가야 할 험한 산길도 아니다. 사람들이 충분히 안전하게 다닐 만하지만 곳곳에 빈틈을 채워야 하는 부실한 지점도 있고, 자세히 살펴야 보이는 숨은 갈림길도 있다.

유능한 판사는 확실히 분쟁의 당사자보다 더 많이 읽고 깊이 궁구한다. 그 결과물이 바로 누구나 수긍하는 잘 된 판결이다. 분쟁을 해보고 판결문을 보면 알 수 있다.
판결은 어떤 식으로든 개인과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판사 개개인의 고민이 깊을수록 세상은 좀 더 나아질 것이다. 책은 그러한 성찰로 가득하고, 잘 알려진 사례의 판결이 나오게 된 배경을 살펴보는 즐거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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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오늘도 첼로를 연주합니다 - 시청각장애인 박관찬의 삶과 도전 꿈꿀자유 함께 사는 이야기 3
박관찬 지음 / 꿈꿀자유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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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의 손바닥을 내민다. 보고 들을 수 없으니 손바닥에다가 글을 써 달라고 한다. 책의 초반 이 부분에서 한참 동안 읽기를 멈췄다. 수년 전에 읽은 기억을 더듬어 인간의 감각에 대해 쓴 책을 찾아 뒤져봤다.

로봇을 이용한 수술을 할 때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운 과제 중 하나가 집도의의 촉각을 어떻게 로봇에게 전달할 수 있느냐라고 한다. 의사는 영상(시각)을 통해 수술부위를 보면서 로봇 팔의 움직임을 제어하지만 보다 섬세한 터치를 요하는 경우 시각이 촉각을 대체하는 데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로봇수술을 하는 의사가 시각적으로 몰입하다보면 손 끝에 뭔가 느껴지는 듯한 경험을 한다고 하는데, 이는 뇌가 조종하는 일종의 감각치환으로 해석된다.

촉각은 피부에서부터 전달되는 압력과 질감을 뇌가 재해석하는 고도의 신체현상이다. 시각을 잃은 사람은 청각으로, 청각을 잃은 사람은 시각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시,청각 기능 모두가 제한된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촉각이다. 기계가 쉽게 배우기 어려운 생명체의 원초적인 감각과 인간의 두개골 안에 있는 오래된 블랙박스가 제대로 연결되어야 촉각에 의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학교 다닐 때 앞 자리 친구의 등판에 글을 써서 의사를 전달해 본 경험이 있을 텐데, 그 뭉텅한 촉각은 즉각적인 의사소통의 기능을 넘어 두 사람의 친밀감을 더해주는 마법같은 기능도 있었던 듯 하다. 웬만큼 친하지 않고는 그러한 접촉을 함부로 하지 못한다.
그래서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소통방식인 손바닥 필담은 오래 전 그 간질간질했던 감각을 떠올리게 하면서, 잊고 산 고향으로 돌아가는 듯한 아스라함을 불러 일으킨다.

손바닥 필담 이야기로 시작한 작가의 인생은 힘겹기 짝이 없었던 세상과의 의사소통으로 점철되었다. 불화는 피할 수 없었다. 비장애인들의 틈새에서 이렇다 할 배려 없이 정글 같은 유년의 학창시절을 보냈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청년기의 통과의례에서 섬세하지 못한 제도의 피해를 고스란히 겪었다. 그 이후 멋진 첼로연주자 모습으로 표지를 꽉 채운 이 책이 나온 걸로 봐서, 그의 성취가 만만치 않았을 것임을 짐작하겠지만, 그 성취 과정을 톺아보면 우리 사회에 주는 메시지가 여전히 아프고, 장애인의 일상사에 더 많은 관심과 공감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세상 곳곳엔 여전히 많은 선인과 현자들이 있다는 사실도.

#청년은오늘도첼로를연주합니다 /박관찬 /꿈꿀자유

강병철 선생의 작은 출판사 <꿈꿀자유>의 선한 영향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길은 책을 많이 사서 읽어 주는 일.
한 권은 그저 얻었으니, 몇 권을 더 사서 주변에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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