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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만나는 우리들의 슈퍼스타 - 스포츠, 영화와 만나다
이석재 지음 / 북오션 / 2025년 5월
평점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 받았지만,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오빠를 따라 잠실 야구장에 간 적이 있다. 관중석은 경기장에서 너무 멀어 잘 보이지 않았다. 선수 중에 아는 이름이라곤 박철순밖에 없었다. 솔직히 춥고 배가 고파서 남들이 말하는 현장감 같은 것은 별로 느끼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는 보충학습을 땡땡이치고 농구장에 몇 번 갔다. 좋아하는 선수들 사진으로 책받침도 만들어 가지고 다녔다.
하지만 그냥 그건 그들이 좋아서였다. 오빠들이 너무 멋있어서 잠깐 빠순이가 되었다. 그리곤 잊었다. 우리 집에서 스포츠 프로그램을 보는 건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열리는 때뿐이다.
이렇게 선수들의 얼굴로 스포츠를 살짝 맛본 내가 미친 PD 이석재를 만났다. 아니 이야기에 진심인 그의 글을 만났다.
‘브런치 스토리’에서 처음 그의 글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운동 경기의 규칙도 잘 모르는데 그가 쓴 글을 읽으면 찌르르 전율이 온다.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그러다 어느새 키득키득 웃고 있는 나를 본다.
그의 미친 감성이 담뿍 담겨 있는 책 『영화로 만나는 슈퍼스타』가 우리를 찾아왔다.
책을 펼치면 스무 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빨려든다.
홈런왕 베이브 루스와 루 게릭, 무쇠 주먹 무하마드 알리와 축구 천재 마라도나라는 유명 스타들의 명성 때문이 아니다. 그는 그들이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고된 삶과 역경을 드라마처럼 영화처럼 펼쳐낸다.
책을 읽기 전, 우리나라 바둑의 전설적인 인물 조훈현, 이창호 두 사람이 사제지간에서 경쟁자가 되어 펼치는 영화 “승부”를 봤다. 이병헌 유아인이란 두 배우의 명연기에 감독의 연출력이 더해져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이 봐도 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몰랐다. 대사도 중요하지만 흑백의 바둑돌로 집을 지어가는 장면에서는 바둑에 문외한이 내가 홀린 듯 그 바둑판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다.
영화가 그런 매력이 있다. 긴 서사를 짧은 시간에 압축 농축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영화로 만나는 우리들의 슈퍼스타”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스무 편의 영화가 담겨 있다. 하지만 그의 글은 단순한 영화 소개 글이 아니다. 영화가 궁금하다면 “출발 *** 여행”이나 “접속 **월드”를 보면 된다. 이석재의 글에는 영화에 담기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쉽게 놓치는 미묘한 주인공의 심리와 가슴 아픈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치 무성 영화 시절 변사처럼 우리가 놓치는 부분을 맛깔나게 풀어낸다. 한자리에 앉아서 영화 스무 편을 다 본 것 같은 포만감이 생긴다. 동시에 영화를 다시 찾아보라고 자꾸 손짓한다. 조심해야 한다. 책을 읽다가 날밤을 새울지도 모른다.
“영화로 만나는 슈퍼스타”는 지도상에서 우리가 만나는 대륙 곳곳을 알뜰하게 챙겨준다. 그동안 잘 몰랐던 러시아와 남미, 아프리카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세계대전과 경제공황, 미국과 소련의 냉전 등 역사적인 사건과 시사 상식도 배울 수 있어 우리를 약간 ‘있어’ 보이게 만들어 준다.
다시 일어서지 못한 김득구를 보면 눈물이 흐르고, 끝도 없는 패배에도 덤덤하게 자신의 길을 가던 투사 감사용은 가슴을 저릿하게 했다. 어떤 이야기도 뭉클하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우생순’의 기적을 일으킨 핸드볼 팀의 값진 은메달과 함께했다는 그 자체로 감격과 감동을 준 탁구 남북 단일팀 승리의 순간, 그리고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던 손기정 선수의 아픔과 분노를 풀어준 서윤복 선수의 보스턴 마라톤 우승은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메이저 리그의 저주들, 아베베가 맨발이어야 했던 이유, 그리고 무하마드 알리에게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던 까닭을 실타래를 풀 듯 풀어주어 끝까지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작가 이석재는 어린 시절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에서 이종도가 친 만루 홈런을 보면서 ‘MBC 청룡’에 미쳐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커서 PD가 되어 20년이 넘도록 스포츠 중계를 연출하고 있다. 그의 글이 영화처럼 살아 움직이며 감동을 주는 이유가 아닐까?
그는 책 처음에서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고 스포츠를 사랑하는 이유는 승리 때문이 아니라 바로 ’꿈‘ 때문이며 사람들의 꿈은 저마다 다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저마다 가진 다른 꿈을 영화와 그 주인공에게 투영하며 힘겨운 시간을 버텨내고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가 들려주는 다채로운 꿈의 이야기가 오늘도 우리를 응원하고 있다.
매번 승리하는 선수의 1승은 열심히 노력한 대가이자 승리한 전쟁에서 얻는 전리품 같은 것이지만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한 선수에게 1승은 자신이 꿈꿔온 가장 소중한 것이자 인생, 그 자체인 것이다. - P97
알리의 바람과는 달리 세상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조국을 위해 금메달을 땄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고향에 돌아왔지만, 이 젊은 금메달리스트는 여전히 ‘백인 전용‘ 레스토랑에 들어갈 수 없었고 버스에서도 뒷자리에만 앉아야 했다. - P104
선수들은 모두 똑같은 말을 되뇌었다. "우리가 이렇게 빨리 친해질 줄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 오랫동안 만나지 못할 줄도 몰랐다. 이 마지막 약속은 언제 이루어질 수 있을까. 1991년 봄, 그 뜨거웠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될 그날은 과연 올 수 있을지, 그날을 기다려본다. - P152
승부 던지기 2-4. 100분 넘게 이어지며 19번의 동점과 역전을 거듭하던,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아테네 올림픽 최고의 명승부는 거짓말처럼 이렇게 끝이 났다. 덴마크 선수들은 환호하며 코트로 몰려나왔고, 올림픽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뛸 소속팀이 없었던 한국 선수들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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