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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키메라의 땅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희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평점 :
#도서제공 #서평단
“이 이야기는 당신이 이 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하는 / 순간으로부터 정확히 5년 후에 일어난다.“
근미래를 예고하는 일러두기의 선전포고는 비장하다. 정확히, 라는 부사를 끌어다둬서 이어지는 이야기에 몰입할 수 밖에 없게 한다. 뒤이어 벌어지는 사건은 도파민 중독자인 나를 붙들고 놔주지 않았다.
’변신 프로젝트‘라는 신인류 창조를 위한 생물학자와 그의 연구실을 습격한 특종사냥꾼, 성난 여론, 급기야 목숨의 위협을 받고 무대는 국제 우주 정거장으로 확대된다. 3차 세계대전으로 지구가 초토화 될 무렵이면 이제 작가의 상상력에 한계가 없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이처럼 초반 플롯 구성이 긴장감을 극대화 하기에 책장이 금세 넘어간다.
지구 환경이 더는 인류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순간에도 생존할 수 있는 신인류, ‘혼종‘을 만들어 내겠다는 생물학자 알리스 카메러가 주인공이다. 물론 이런 숭고한 목적 외에도, 알리스는 파괴적인 마음 또한 드러낸다.
“엄마, 이걸로 엄마의 합지증을 설욕했어요. 언젠가는 손가락 사이에 막이 없는 자들이 <기형>취급받아 배척당할 거예요.” (1권 p.191)
혼종 인류인 디거, 노틱, 에어리얼이 무사히 태어난 순간에 알리스는 기뻐하며 ’설욕‘과 ‘배척’을 곱씹는다.
생명윤리의 논란과 함께 그가 겪은 수난사를 고려하면 개인적인 사감이 껴드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구인류와 신인류가 함께할 세계의 초입에서 ‘어머니 자연’의 역할을 대리한 과학자가 가장 먼저 화합보다 설욕을 꿈꿔서 두려웠다.
’사피엔스‘적 한계이자 “어리석음이자 폭력의 유전자가 종에 내재해 있던 양”(2권 p.177) 행동하는 모습은 앞으로 펼쳐질 디스토피아적 상황을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혼종 신인류 탄생 이후, 각 종의 특성과 성향등을 세세하게 설정하고 그들의 사회 모습과 서로 불화에 이르는 과정 등을 갖가지 사건으로 보여준다. 구인류로 치부되는 ‘사피엔스’, 지금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계급이 생기고, 갈등, 폭력, 실체 없는 증오심을 적절히 활용해 여론을 조성하고 ‘통치’하는 모습에서 인류세를 풍자하고자 함도 느꼈다. 또, 민주주의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도 인상깊다.
“민주적인 투표라는 착각을 일으키는 게 중요하죠. 개인적으로 난 늘 민주주의라는 건 사실을 어떤 순간에 어떤 방식으로 제시하는지에 달렸을 뿐이라고 여겼어요. 어떤 때는 되고, 어떤 때는 안 되죠.“(1권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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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는 선형적이지 않고 순환적 구조임을 주장하는 주인공은 그저 한 자리에 머무르기보다는 계속해서 나아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불씨, 폭발, 팽창, 수축’(2권 p.245)을 반복하는 세상은 세가지 혼종 외에도 새로운 종을 또, 허락하려 한다. 다양성보다 획일성이 두려운 것(1권 p.31)이라고 말해 온 알리스에게 당연한 일일 것이다.
작가의 상상력이 그려낸 세계는 상당히 구체적이고, 멀지 않은 미래와 닿아서 순간 소름이 돋는다. 우리가 처한 지금 세상의 상황- 기후 위기, 핵무기, 전쟁, 반목하는 세계 각국 등-과 소설 전반부의 상황은 매우 닮았다.
혼종들의 창조주 어머니 알리스를 주축으로 각 종의 번영과 영욕, 불화, 정복, 전쟁과 같은 지리멸렬한 서사 역시 지금 인류의 삶과 닮아 있다. 그래서 위기감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
키메라의 땅이 도래하기 직전, 우리를 향한 경고 메시지를 보여준다. 작가가 예견한 장면마다 스며있는 생명의 존엄성에 관한 사유가 섬세하다. 전 지구적 절망이 도래하기까지 아직 ‘5년’의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인류가 살아가야 할 방향성을 성찰하기에 너무 짧은 시간은 아닐 것이다.
“답이 너무 명백하기 때문에 답을 생각해 내지 못한다”(2권 p.124)
어쩌면 우리 인간은 답을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키메라의 땅을 읽은 독자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