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본된 책이 출현하기 전, 로마 저술가들은 수 세기 동안 서자판을 ‘카우디케스caudices‘라고 불렀고, 이것이 나중에 codex‘의 복수형인 ‘codices‘가 되었다. 라틴어 ‘카우디케스‘는나무줄기‘나 ‘나무토막‘을 의미한다. 그래서 처음에 ‘코덱스‘라는 용어는 나무로 만든 서자판만을 의미했다. 그러다 원재료와 상관없이 모든 종류의 서자판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38 결국, 코덱스라는 용어는 본래의 물리적 기원을 완전히 초월했다. 사람들은 법률문제를 기록할 때도 서자판을 사용했고, 그러다보니 코덱스에 법령 집이라는 의미가 생겼다. (법전‘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code‘는 ‘codex‘
에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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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전파 경제학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자본주의를 지지하며 사회주의를 논박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것이 학술 문헌에서나 대중적 문헌에서나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통념이다. 신고전파 경제학은 미국과 전 세계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는 주류경제학으로서, 외부의 개입만 없다면 시장이야말로 자원을 배분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관점에 기초하고 있으니 분명 자본주의를 지지하고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것으로보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신고전파 경제학의 핵심에는 시장 모델들뿐아니라 사회주의 모델들 또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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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인문학 -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 / 반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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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걸을 때만 사색할 수 있다. 내 걸음이 멈추면 내 생각도 멈춘다. 내두 발이 움직여야 내 머리가 움직인다.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고백록』에 나오는 말이다. 보행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보다도 길다. 하지만보행을 단순히 수단으로 보는 대신 모종의 의식적 문화 행위로 본다면,
보행의 역사는 불과 몇 세기 전에 유럽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원에 루소가 있다. 그 역사는 18세기 다양한 사람들의 발로 만들어졌지만, 그중에서도 좀 더 학예적인 사람들은 보행의 기원을 고대그리스에서 찾음으로써 보행의 위대한 전통을 만들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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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체계의 집단적 소유라는 감각을 회복한다는 것-법체계를 하나의 공동의 것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결국 법을 자연, 그리고 공동체와 조율하려는 핵심 전략이다. 법은 법률가만 읽을 수 있는 책에 쓰인, 생명력을 잃은 원칙과 규칙 체계가 아니다. 오히려 법은 서로를 향한, 커먼즈를 향한 의무로 이루어진 우리의 사회적·윤리적 행동의 한 표현이다. 만일 전체 공동체가 이러한 인식을 공유한다면 법은 다시 한 번되살아나 생성적일 수 있다. 그러한 것으로서 법은 ‘전체‘-전체는 부분의 합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지만, 부분 간의 착취나 학대가 없는 관계에서 형성된다-의 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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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의 규율 효과는 현시대 자본 형태의 재생산에 필수적이다. 부채는 더이상 우리가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 그의 자본주의 찬가에서 가정하듯이 자유롭게 선택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자본은 성경이 요청하듯이 우리 부채를 용서하지 않고, 우리가 미래의 가치생산을 통해 부채를 상환하기를 고집한다. 미래는 이미 예언되었고 압류되었다(10만 달러의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 아무에게나 물어보라). 부채는 미래 가치생산의 어떤 구조 안에 우리를 가둔다. 부채노역은 자본에 특수한 형태의 노예 상태를 강요하기 위해자본이 선호하는 수단이다. 체귄소유자의 힘이 국가 주권을 전복하고 가두고자 할 때 그것은 두배로 위험해진다. 자본의 유일한 생존양식이 국가-금융 연계를 통해 달성되는 응집과 융합인 것은 이런이유에서다. 이와 더불어 일체의 실질적인 영향력과 힘으로부터의전인구의 소외가 완성된다. 국가도 자본도 박탈과 무력화를 어떤 식으로든 완화시킬 수 없다. 아테네는 전통적으로 민주주의의 요람으로 추켜세워진다. 오늘날 그것은 부채노역의 요람, 모든 민주주의의철저하고 완전한 파괴의 요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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