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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마톨로지 - 개정판 현대사상의 모험 26
자크 데리다 지음, 김성도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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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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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발명 : 잊혀진 영웅 알렉산더 폰 훔볼트 (양장)
안드레아 울프 지음, 양병찬 옮김 / 생각의힘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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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천재구나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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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샐러드로 코드 한 줄 없이 게임 만들기 acorn+PACKT
미구엘 드쿼드로스 지음, 옥찬호 옮김 / 에이콘출판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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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게임샐러드 교재라 참 반갑습니다. 하지만 윈도우즈용이 아닌 맥용 기준으로 작성되었고 (인터페이스가 꽤 많이 다름) 잘못된 번역이 자주 보이네요 ㅎ 227쪽에서 “수박에 0.5cal의 열량을 쏜다면”이라는 부분은 “수박에 0.50cal(구경)의 총알을 쏜다면”일텐데 순간 피식 했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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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틴 헤드 1 - 오직 나만이 나의 근원이다
에인 랜드 지음, 민승남 옮김 / 휴머니스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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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틴헤드>는 건축에 대한 소설이야.

20세기 초반 미국의 건축계를 배경으로 모더니즘 양식의 태동을 다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삶에 대한 소설이기도 해.

그것은 삶 또한 우리가 설계하고 시공해야하는 일종의 구조물이기 때문이야.

 

사실 건축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지.

예술의 반열에 오르고자 하는 모든 것은 그러한 과정을 필요로 하잖아?

이 소설에 나오는 다른 모든 창작물들도 마찬가지야.

예컨데 문학, 연극, 그림, 조각상, 신문 사설, 하다 못해 우표까지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창작물은

그것을 만든 이들과 그것을 향유하는 이들의 가치관을 상징하고

나아가 그들의 삶을 대변해.

 

예컨데

"길게 뻗은 거리들에 옹색한 전시용 잔디밭을 가진 목조주택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주택들은 억지로 박공과 작은 탑, 지붕창을 다느라 뒤틀려 있었고,

포치를 내느라 불룩 튀어나와 있었으며,

경사진 거대한 지붕에 짓눌려 볼품없는 몰골을 하고 있었다."

 

라는 부분이 담지하는 것은 당시 건축계의 보편적인 분위기에 대한 묘사일 뿐만 아니라

위신을 차리기 위해 존재할 뿐 실용성은 거의 없는 스펙들이나

유행을 따르기 위해 덕지덕지 갖다 붙인 장식들에 의해 왜곡된 대중들의 삶을 의미해.

그들의 삶은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관습과 전통에 짓눌려 있고

구조적 타당성이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

 

구조적 타당성! 그것만 있었어도 자기소개서를 쓸 때마다

서로 연관이 없는 삶의 에피소드들을 하나의 주제로 엮어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짤 필요가 없었을 거야.

하지만 현실은 그것과 한참 멀어서

한때 유행했던 병맛 웹툰들의 개연성 없는 전개가

오히려 우리 삶의 서사와 더 유사하게 보이지.

어쩌면 그러한 동질감 때문에 사람들이 그런 저질 만화에 더 끌렸던 건지도 모르겠어.

 

어쨌거나 당연한 얘기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그러한 비유들 중에서도

가장 빈번히 나오는 것은 단연 건축에 대한 비유야.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문장들에서 [건물]이라는 단어는

[삶]이라는 단어로 치환될 때 그 진정한 의미를 드러내.

 

"어떤 [건물]들은 정면에만 신경 쓰는 싸구려 과시에 불과하고,

어떤 [건물]들은 자기변명에 급급하고,

어떤 [것]들은 영원히 부적합하고 볼품없으며 악의적이고 거짓이오.

하지만 당신의 [건물]들은 무엇보다 중요한 한 가지 느낌을 갖고 있고,

그건 바로 기쁨이오. 잔잔한 기쁨이 아니라 까다로운 기쁨.

그걸 체험하는 것이 하나의 성취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기쁨.

그걸 바라보며 '내가 저걸 느낄 수 있다면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기쁨."

 

"여기 있는 모든 게 이 [집]에 필요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다른 이유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당신은 아무것도 받치고 있지 않은 기둥과

무익한 처마 돌림띠장식, 벽기둥, 몰딩,

가짜 아치, 가짜 창문을 가진 [건물]들을 봐왔어요.

당신의 [집]은 그 자체의 필요에 따라 지어지고 있습니다.

다른 [집]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지어지고 있고요.

당신의 [집]의 결정적 모티브는 [집]에 있고,

다른 [집]들의 결정적 모티브는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있죠."

 

또는 다음과 같이 삶과 건물을 나란히 묘사하며

그 둘을 직접적으로 연관 짓기도 해.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처럼

그저 관례적이고 무의미하게 [건물]을 짓습니다.

하지만 [건물]이 중요한 상징임을 아는 사람들도 몇 있죠.

그걸 아는 사람에게 [집]은 자기 삶의 표현입니다."

 

"인간의 몸이 지닌 아름다움은

불필요한 근육이나 선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

모든 세부가 인간의 삶이라는 하나의 주제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왜 [건물]은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자 하는 걸까요? 왜 온갖 장식으로 질식시키고,

겉포장을 위해 목적을 저버리려 하는 걸까요?

정작 본인은 왜 그런 겉포장을 원하는지조차 모르면서 말입니다."

 

혹은 앞서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삶에 대한 담론과 예술론을 동일시하곤 하지.

 

"당신이 무엇을 사랑하는지 알고 있소?

고결성이오. 불가능한 것이지. 깨끗하고, 일관되고, 이성적이고,

자신에게 충실하고, [예술] 작품처럼 전체가 하나의 스타일인 것.

그건 오직 [예술] 분야에서만 찾을 수 있소.

하지만 당신은 사람에게서 그걸 원하고 있소."

 

이러한 일련의 비유들을 통해 이 소설이 전하려 하는 가치는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일관성"이야. 다른 말로는 "정직"이라도 할 수 있지.

그리고 이 두터운 책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문장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다음 문장을 고를거야.

문장의 중요성에 비해 번역이 여러모로 아쉬워서 원문을 그대로 옮기자면 아래와 같아.

"Nothing can be reasonable or beautiful unless it's made by one central idea,

and the idea sets every detail."

 

그렇다면 일관성은 무엇을 위한 가치일까.

 

저자는 낭만주의 문학에 대한 이야기로 이 책을 시작해.

특히 낭만주의 문학이 가진 불멸성에 대해 이야기하지.

그것은 요즘 시대에 범람하는 다른 책들과 구별되는 특징이야.

요즘 나오는 책들은 모두 잡지와도 같아.

영원하고 근본적인 주제들을 다루기보단

유행에 따라 일시적이고 사소한 주제들을 다루곤 해.

그러고는 그 유행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레 잊혀지지.

 

이 소설 역시 낭만주의 문학이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낭만주의에 대한 낭만주의 문학이라 할 수 있어.

왜냐하면 보잘것없는 개인의 삶 위에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투사하려는,

낭만주의적 삶의 태도를 가진 한 인간의 초월적인 노력을 그리기 때문이야.

그리고 잡지처럼 존재하다 사라지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의 삶은 불명성을 얻어.

 

여기서 이 불멸성의 근원이 바로 일관성이야.

아래의 대화에는 작가의 그러한 관점이 드러나 있어.

 

"스티브, 그 사람 어떻게 지내요?"

"늘 똑같죠. 그는 변하지 않잖아요."

"난 그가 우리 중 유일하게 불멸성을 얻은 존재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사람들이 영생을 얼마나 갈망하는지 당신도 알 거에요.

하지만 그들은 날마다 죽고 있어요.

그들은 지난번에 만났던 그 모습이 아니에요.

그들은 매시간 자신의 일부를 죽이고 있죠.

그들은 변하고, 부정하고, 모순된 행동을 해요.

그리고 그걸 성장이라고 부르죠.

결국 거꾸로 뒤집히거나 져버려지지 않은 건 하나도 안 남게 되죠.

마치 실체는 존재한 적도 없고 부정형의 물체에 대한 형용사들만

연이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처럼요.

그들은 단 한 순간도 가져보지 못한 영원성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하워드는 …… 영원히 존재할 것 같은 사람이에요."

 

한편 "정직"과 "일관성"은 얼핏 보기에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아래의 대사에서 묘사하듯 사실은 서로 같은 개념이야.

 

"당신이 훌륭한 건축가인 이유는 뭐요?

그건 당신이 훌륭함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들을 갖고 있고

그 기준들을 지키기 때문이오.

정직함이 뭐라고 생각하오?

이웃의 주머니에서 시계를 훔치지 않을 능력?

아니, 그렇게 쉬운 건 아니오.

그게 다라면 세상 사람 95퍼센트는 정직하고 올바르다고 해야겠지.

정직함은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는 능력이오."

 

그리고 그러한 일관성은 한 사람의 자아와 자존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인이기도 해.

 

"인간은 가장 고귀한 미덕이라고 믿게 된 것을 실천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면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고 느끼게 되지.

그리고 최고의 이상이 자신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면 결국 모든 이상과 포부, 자부심을 잃게 되지.

이미 타락해버린 고결성을 무엇 때문에 애써 지키겠나?

그의 영혼은 자존감을 포기하지."

 

"남들의 눈은 속일 수 있지만

자신의 눈은 속일 수 없는 법이니까.

자아가 가장 엄격한 심판자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자아에서 도망치지.

평생 도망치면서 사는 거야.

자선단체에 몇천 달러를 기부하고 고귀한 존재가 되는 게

스스로가 인정하는 성취를 통해 자존감을 얻는 것보다 훨씬 쉽지."

 

한편 이러한 일관성의 문제는 불멸성 뿐만 아니라 개인의 행복과도 직결돼.

소설 전체에 걸쳐 하워드 로크와 1차적으로 대립하는 키팅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그들의 욕구 체계가 일관되지 못하기 때문이야.

 

그들은 인기영합적인 건축을 하거나 그러한 건물을 향유하는 이들이지.

그들의 건축은, 혹은 그들의 삶은 대중들이 영문도 모른 채 찬양하는 양식들을

모방하고 혼합함으로써 만들어져. 한마디로 유행의 집합체일 뿐이지.

때문에 구조적 타당성이란 존재하지 않고,

과거의 양식에 대한 일말의 의심이나 도전 없이

그것의 추종자들을 위해 그것을 모방하기에 바빴어.

 

이것을 사회적 욕구라 부르든 소외에 대한 두려움이라 부르든 상관없어.

중요한 것은 그것이 개인의 욕구보다 앞서는 순간부터 개인의 행복이 도외시된다는거야.

다음의 대사를 봐.

 

"사람들이 왜 고통받는지, 그토록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왜 행복을 찾지 못하는지 궁금하다고요?

누구든 걸음을 멈추고 자신이 진정으로

사적인 욕망을 품어본 적이 있는지 자문해본다면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거에요.

자신의 모든 소망, 노력, 꿈, 야망이

다른 사람들로 인해 비롯되었음을 깨닫게 될 테니까요.

그들이 지금까지 기를 쓰며 노력해온 건 위신을 위해서였죠.

타인들이 찍어주는 승인 도장.

그래서 노력을 하면서도, 성공을 했을 때도

기쁨을 느낄 수가 없는 거죠. 단 한 가지 일에 대해서도

'이건 내가 원해서지 이웃 사람들의 감탄을 얻기 위해서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없는 거죠.

그러면서도 자신이 왜 불행한지 이해를 못해요.

인간의 모든 행복은 사적인 거죠.

우리에게 최고의 순간은 사적이고 자발적이며

남이 손댈 수 없는 것이에요."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이타심에 대한 이야기야.

이타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기분 나빠할지도 모르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판단, 정신, 사고의 영역에서

타인들을 자신의 우위에 두는" 행위 전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

어린 시절 엄마의 말을 듣는 이유는 그 말이 옳다는 것을 알아서라기 보단

엄마에 대한 이타적 마음 때문이지, 안 그래?

 

반면 당시 극소수의 건축가 무리는

과거의 양식들에 따라 건물의 형태를 결정하기를 거부해.

그들은 건물의 형태란 오직 그 건물이 지어질 터와,

그것을 짓는 데에 사용되는 재료와,

그 건물의 용도에 의해 결정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며

그렇기 때문에 터, 재료, 용도가 과거의 건물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이상

그 어떠한 건물도 과거의 형태를 따라 지어선 안된다고 주장하지.

그러면서 건물이 따라야할 것은 과거의 (혹은 다른 누군가의) 원칙들이 아니라

그 자체의 타당하고도 고유한 원칙이라고 주장해.

 

그들은 맹목적인 타성을 경계하지.

그들에게 타인의 시선이나 대중적인 잣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

앞서 말한 모방자 집단에게 건축이란 그저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 뿐이지만

방금 말한 창조자 집단에게 건축이란 생각과 가치관의 표현이자 자아실현으로서

그 자체가 목표야.

 

이러한 갈등 구도는 점차 추상화되다가 와이낸드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해.

그래서 혹자는 와이낸드와 로크가 서로 대립한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곤 하지. 

와이낸드는 이상과 삶이 괴리되었지만 둘 다를 가진 듯한 인물이야.

하지만 훗날 이상과 삶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오게 되고

결국 이 소설에서는 이상을, 동명의 영화에서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게 되지.

 

이제 다시 처음의 구조적 타당성 얘기로 돌아가보자.

우리가 우리의 삶 자체를 하나의 그림, 하나의 문학,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자연히 그것을 어떻게 구상하고 구현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거야.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질 작품은 결코 무작위적일 수 없고,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겠지.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예술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어.

별 고민 없이 남들의 것을 모방하기로 결정하곤 해.

말하지만 옆자리의 친구를 따라 그리기로 하는거지.

혹은 유명 예술가를 어설프게 흉내내며 마치 쇼핑을 하듯

스노비즘과 키치 중에서 하나를 골라잡아 자아의 빈곤함을 채우곤 해.

 

하지만 나는 미술관에 즐비한 도무지 가치를 이해할 수 없는 작품들 앞에 서서

주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애써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처럼

본인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자기 인생에 대해 긍정하고 싶지 않았어.

그리고 이 소설은,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뚜렷한 원리에 입각해

삶을 주도적으로 설계하는 행위 뿐이라고 이야기해.

 

참으로 흥미로운 것은 이 소설이 내포한 이러한 주제의식과 그에 대한 묘사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는 러시아 문학 작품들과 유사하다는 거야.

작가가 러시아를 매우 증오했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 점은 상당히 아이러니하지.

잠시 러시아의 "행위시학"에 대한 다른 책의 내용을 인용해볼게.

 

우리가 러시아 문학을 접할 때 느끼게 되는 깊은 매혹은 그것의 원칙주의적 절개와 관련이 있어.

서구 카톨릭의 천국, 지옥, 연옥으로 구성되는 3원 모델과 달리

러시아 정교의 세계관은 천국과 지옥으로 구성된 2원론에 기초해.

절충과 타협의 어정쩡한 중간 항을 거부하는 이러한 태도는

러시아 문화의 원칙주의로 발현되고, 비단 문학 뿐 아니라 러시아의 역사 전체를 관통해.

덕분에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사상의 실험대가 되지.

영국의 자유주의 사상가인 이사야 벌린은 삶과 예술의 경계를 고의로 뚜렷하게 가르지 않는

러시아인들의 태도를 가리켜 윤리적이라 말했어.

 

"내가 러시아인들의 공로로 생각하는 부분은 대단히 윤리적인 그들의 태도이다.

삶과 예술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서로 일치하며, 그것은 궁극적으로 윤리적이다."

- 이사야 벌린

 

러시아의 사상가이자 문학이론가인 미하일 바흐친은

삶과 괴리된 예술을 통탄하며 다음과 같이 말해.

 

"인간은 예술 속에 있을 때는 삶 속에 있지 않고, 삶 속에 있을 때는 예술 속에 있지 않다.

그것들 사이에는 어떤 통일성도 없으며, 내적으로 서로에게 속속들이 스며들지도 못한다.

예술과 삶은 하나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 안에서, 나의 책임의 통일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 미하일 바흐친

 

이상적 영역의 규범에 따라 일상적 삶의 영역을 재구축하려는 이러한 지향은

18세기 러시아 문학에서 매우 특징적이고 훗날 유리 로트만의 "행위시학"으로 이어져.

행위시학은 러시아 모더니즘 아방가르드의 미학적 이념이었고

이후에 "일상의 창조와 삶의 건설"이라는 러시아 구성주의의 <삶-건설> 공식을 낳아.

대표적인 구성주의 건축가였던 긴즈부르크는 다음과 같이 말해.

 

"건축가는 더이상 자신이 삶을 장식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조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긴즈부르크

 

비록 냉전이 소련의 패배로 끝난 뒤 로트만이 말년에 적은 다음과 같은 구절은

마치 자신의 "행위시학"이 실패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이지.

 

"이원적 구조의 정치적 실현은 현실 속에서 다만 극단적인 독재정치를 야기할 뿐인

지상천국을 향한 희망 없는 시도이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가 없는 삶이란 도덕적, 정신적으로 빈곤한 것이 되겠지만,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따르는 삶이란 실현될 수 없는 끔찍한 것이 될 것이다."

- 유리 로트만

 

하지만 나는 저것이 사회 전체에 그러한 가치를 강요할 때 발생할 수밖에 없는 비극이라고 생각해.

여전히 개인에게 필요한 것은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야.

 

"난 자네가 이 시대 최고의 조각가라고 생각하네.

자네 조각상들은 인간을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그렇게 될 수 있고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하는 모습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네.

자넨 그럴듯함의 영역을 넘어서서 무엇이 가능한지 우리에게 보여주었고,

그건 오직 자네만 할 수 있는 일이지."

 

한번 생각해봐.

너가 일상에서 만나고 싶은 인간상은 누구야?

일상에서 목격하고 싶은 사건들은 무엇이지?

그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삶에서 체험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만남들 말야.

 

나에겐 이 책에 나온 하워드 로크가 그런 인물이었어.

 

길고 긴 편지를 읽어줘서 고마워.

이 편지는 너의 감상을 돕기 위해 쓰여졌어.

드물지만 번역에 문제가 좀 있는데

1권 205쪽 밑에서 네번째 줄의 "캐머런"은 "프랭컨"으로 번역되어야 했고

책 전체에 걸쳐 "현대주의"라는 단어는 "모더니즘"으로 번역되어야 옳아.

 

그럼 즐거운 독서가 되길 바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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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옹이 2023-06-23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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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파슨스 지음, 이충호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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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좋은데 원작의 제목이 더 재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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