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그랜드 펜윅 시리즈 1
레너드 위벌리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엉뚱함, 황당함은 다른 이들의 지탄의 대상이 된다. 그것이 기존의 제도, 기존의 통념과 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황당한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세상을 이끈 건 바로 그 황당함에 있었지 않나 싶다. 모두가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말할 때,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말한 갈릴레오도 황당했었고, 가치는 노동에서 나온다고 말한 리카도의 주장을 다시 고개들게 한 마르크스도 당시로서는 꽤 황당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황당함이 황당하지 않게 된 사회에서, 그런만큼 조금 더 민주적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기득권자들이 가진 '황당함은 이제 그만' 엉뚱한 건 용납하지 못해, 아니 용납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웃어넘겨줄게, 라고 너스레를 떠는 건 참 꼴같지 않은 일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나는 책의 내용을 쓰려고 했는데, 그럼 다시 각설하고 이야기 속으로. 

그랜드 펜윅은 물론 존재하지 않는 나라다. 그리고 책에서도 아주 작은 나라로 그려져 있다. 수출을 하긴 하지만 그게 전 세계를 향한 거시적인 무언가라기 보다, 이 쪽과 저 쪽의 교환으로만 치부되는 아주 작은 중세적 마인드를 갖고 있는 나라이다. 그래서 그네들의 무기도 갑옷과 활이다. 세계지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주 꼬맹이 약소국. 그 나라가 그랜드 펜윅이다. 그런데 바로 그 나라가 뉴욕을 침공해서, 아니 미국과 전쟁을 해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 이유는...... 

그랜드 펜윅이 가진 소규모성에 있다. 미국을 향해 전쟁을 하면서도 20명 남짓이 탈 수 있는 범선으로 항구에 정박한다거나,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뉴욕 한복판에서 박물관에 전시될 법한 갑옷과 활시위로 경찰을 사로잡았다거나 하는 것을 보면 잘 알수 있다. 

물론 그네들의 성공을 도와준 내부 고발자들도 있다. 바로, 예전 무기라서 겁먹을 수밖에 없었던 미국의 경찰들, 그랜드 펜윅의 사람들을 보고 외계인이 왔다고 난리법석을 피우는 언론들, 그 언론을 가감없이 수용하는 미국의 속물적인 중산층과 관료들.  

첨단 과학기술이 전지구적으로 해결할 것만 같았던 전쟁의 염려는 오히려 첨단 과학기술로 그 염려가 더 커지고 있다. 핵이 있으면 전쟁은 없어질 거야, 라는 생각은 안일한 것으로 판명되었으니 말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보아도, 이라크 전쟁을 보아도 누가 적이고 누가 우리 편인지조차 알 수 없는 전쟁이 지금껏 자행되고 있다.  

텔레비전에서 중계되는 전쟁은 마치 공상과학 영화처럼 실감은 나지만, 그게 그저 화면 속의 일일 뿐이야 라고 속단하게 만들며, 적을 살상하려는 무기는 적이 아닌 민간인 그것도 어린아이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 있다. 그랜드 펜윅이 성공하게 된 건, 그들의 무지라기 보다 그들의 엉뚱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끝내 마음 속에 내내 남아 껄끄러운 건, 그 성공이 바로 핵무기를 전제로 한 성공, 핵무기가 그랜드 펜윅에 있다는 그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는 비관적이지 않다. 끝까지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비장의 무기가 있으니. 바로 모든 나라가 그랜드 펜윅의 말을 듣게 만든 그 핵무기가 실은 잘못 끼워진 머리핀 하나로 대량살상무기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를 공포에 떨게 만드는 건 말, 그 수소폭탄이 거기에 있으니 그 나라 말을 잘 들어야지 하는 여기저기 알려진 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언론 장악이 정권에 필요했었나? 우리를 기쁘게도 슬프게도, 두려움에 떨게도 만드는 게 실상 있지도 않은 사람들의 말말들 때문이니 말이다.  

정작 무서운 건 믿음, 사람들이 갖고 있는 편견, 누구나 그렇다고 치부하는 생각들이라니, 정말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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