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마르틴 부버 지음, 표재명 옮김 / 문예출판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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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토나오게 어려운 책이다.


종교나 철학에 대해 탐닉하다보면 자주 보이는 구도가 있다. 인식 불가능한 무언가- 로 설명되곤 하는 무언가와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이 세상 그 자체 두가지의 구도이다. 전자는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고 다양한 형태로 규정된다. 혹자들은 이 모든 것이 같은 것의 다른 이름이라 부르기도 한다. 허나 이는 깊게 공부를 해보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이다. 논지를 깊게 살펴보면 외양만 비슷하지 내용은 다 다르다. 


부버가 다루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주제이다. 그리고 부버만의 독특한 관점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부버는 이를 나-너 의 관계와 나-그것의 관계라고 부른다. 


나-너 의 관계는 인식, 의식, 경험, 이전의 본질적인 형태로 세계와 관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그것의 관계는 해석되고, 판단되고, 경험된 것으로 인식되는 관계형태이다.  전자는 사람을 충만하게 하고, 생명으로 가득차게 하며, 사랑으로 넘치는 인간이 되게 하는 관계이다. 반면에 후자는 사람을 소진시키고, 고갈되게 하며, 파편화하고, 고립시키는 관계이다. 전자는 일치의 관계이고, 후자는 분리의 관계이다. 


그렇다면 나-그것의 관계로부터 벗어나 나-너의 관계로 회귀하는 것이 인간의 목적이 되어야하는가? 많은 이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주장한다. 하지만 부버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는다. 부버의 관점에서 두가지의 목적은 서로 다르다. 결국 두가지를 모두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선한 관점이다. 


문제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디폴트로 가지고 있는 관점이 나-그것의 관계라는 것이다. 나-그것의 관계는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형성되며 사람의 생존과 적응, 그리고 생활에 따라 그 양태를 달리 한다. 모습은 다르지만 모두 같은 특성을 지닌다. 인식대상을 파편화하여 분리된 대상으로 인식하게끔 하는 것이다. 결국 세상을 도구화하는 나-그것의 관계로부터 벗어나 나-너의 관계를 회복하고 양자를 조화시키는 것이 인간의 과제가 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나온다. 그걸 어떻게 할 것인가? 무수히 많은 사상과 철학에서 이 주제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내놓았고 그것으로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곤 했다. 글쎄, 부버의 대답은 다소 애매모호하다. 부버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라고만 설명하지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대답을 하지 않는다. 


어쩌면 대답을 하는 순간 그 역시 나-그것의 관점이 되어버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다소 짧은 분량이라 거기까지 깊게 다루기에는 지면의 한계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독자의 입장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런 애매모호함을 뒤로 하고 부버의 논지는 나-너의 관계를 통해 인간과 신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에 도달한다. 하나의 나- 로 돌아옴에 따라 무한한 너- 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인간이 세상에서 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신은 물성이나 객체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범신론도 아니고 범재신론도 아닌 독특한 형태의 신비주의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더 나아가 부버는 신과의 관계를 회복함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인간과 관계할 수 있는 언어를 회복하게 된다고 말한다. 여기까지 들었다면 생각나는 것이 있게 된다. 아, 이 책은 아마 바알 셈 토브를 생각하면서 쓰여진 책이겠거니, 역시나 하시디즘을 세상에 소개하신 분 답다. 그렇게 세상과의 온전한 관계를 회복한다는 것에 대한 설명으로 책은 마무리된다. 


나-너의 관계와 나-그것의 관계는 요즘 같은 시대에 시사하고 있는 점이 많다. 모든 사람이 세상에 치이고 고갈되어 가는 세태에 비추어보면 더욱 그러하다. 모든 사람이 지쳐있다. 쉼터가 필요하다. 회복할 수 있고 충만해질수 있는 공간이 절실하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점에서 단서를 제시한다. 생명과 사랑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충만한 삶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준다. 온전한 나- 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해준다.  


이런 좋은 책이지만 이 책은 너~~~무 어렵다. 지옥같은 독일어 복합명사들부터 시작해서 용어정의도 엄격하게 하지 않은 채 논고같은 글이 끝없이 전개되다가 갑자기 잠언같은 글이 튀어나오고 뜬금없는 묵시록같은 글체가 독자의 뇌를 흔들어버린다. 칸트, 괴테, 쇼펜하우어, 키에르케고르, 아리스토텔레스같은 철학자들부터 쿠자누스나 슐라이어마허 리츨같은 신학자들을 넘어 우파니샤드 불교 도교철학같은 동양철학까지 무수히 많은 내용들이 기본 설명도 없이 마구 튀어나온다. 


용어 자체도 어렵지만 이런 주제들이 보통 그러하듯이 본인의 체험이 없으면 사변적인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게 된다. 기반지식도 어마무시하게 있어야하면서 본인만의 신비적, 또는 형이상학적인 체험이 뒷받침되어야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진입장벽이 너무 높은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뇌를 혹사시켜가면서 어찌저찌 읽긴 했는데 내가 뭘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반은 이해했을까? 아니면 반의 반은 이해했을까 싶다. 


달달했다. 그런데 너무 힘들었다. 이 책은 나에게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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