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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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명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서로 별 의미없는 이야기를 횡설수설하고, 장면전환은 맥락이 없어서 잠깐만 눈을 놓쳐도 이야기를 따라갈 수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대화는 이 얘기를 왜 하는지 알기가 어렵고, 무슨 말을 하는지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마치 극장 밖으로 꺼내어진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는 느낌이다. 노년의 저자가 발견해낸 세상의 결론은 이런걸까. 아무 의미도 없는 세상, 그걸 글로 그려내면 이런 느낌인 걸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가장 어려운 파트가 아마 6장일 것이다. 키치가 도대체 뭘 말하는건지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분분하다. 하지만 쿤데라가 본, 키치의 세상에서 벗어나 진실을 본 사람의 눈이 그려낸 세상이 아마 이런 모습인가 보다. 전적으로 부조리하고, 아무 의미도 없고, 아무 가치도 없는 세상. 의미와 이야기 이전의 세상. 존재의 본질에서 만나는 세상의 민낯.


그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쿤데라의 질문은 작품들 내내 끊임없이 이어지는 듯 하다. 가장 최근에 나온 이 책에서 나오는 답변은 '무의미의 축제' 로 정리된다. 아무 의미도 없지만, 그것을 껴안고, 그 아름다움을 발견해야 하고, 더 나아가 사랑해야 한다는 것. 


글쎄, 사견으로는 결국 능동적 허무주의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니체가 그랬듯이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사랑하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결론이다. 만약 아모르파티만이 답이라면 아모르파티가 가진 한계도 그대로 가져가겠거니 할 수 밖에 없다. 사랑하는게 최종결론이라면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의 문제가 남는 것이다. 사랑해야 돼! 라고 한다고만 해서 사랑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이 왜 아직도 이 지경이겠는가?


전적인 무의미함에서 어떻게 의미를 발견할 것인지. 삶을 추동하는, 삶의 근본이 되는 그 힘은 어디서 가져올 것인지 여러가지 질문이 나온다. 삶 자체에 국한해서 삶의 모든 걸 해결하려는 가정은 결국 물로 물을 닦는 결과 밖에 안 되지 않을까? 결국 쿤데라가 깔고 있는 가정대로라면 사랑의 감정이 나올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결국 그냥 사고실험일 뿐인건가? 사실 조금 시시하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전체적인 느낌은 이렇다. 책이 제시하는 '전적으로 무의미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의미를 찾아낼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사랑할 것인가?' 질문 자체는 너무나 근사하다. 보고 있기만 해도 뭔가 황홀해지는 질문이다. 하지만 최종결론은 좀 허무했다.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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