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위한 교회, 세이비어 이야기 IVP 모던 클래식스 14
엘리자베스 오코너 지음, 전의우 옮김 / IVP / 201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진정한 교회란 어떤 모습일까? 성경에서 말하는 성도들의 공동체란 어떤 형태여야 하는 것일까?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나아가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그런 모습이 될 수 있을까? 크리스찬이라면 누구나 해보았을만한 질문들이다. 반면에 이런 질문들이 일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오늘날의 교회들이 그런 모습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통렬한 현실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 


가나안 성도가 백만을 넘어 이백만을 향해 나아간다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교회에 실망을 하고 떠나는 사람들도 너무나 많고,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떠나는 이들도 너무나 많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위로에 목말라하고, 말씀에 굶주려있으며, 공동체에서 회복되길 원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느 교회가 좋아요? 어느 목사님 말씀이 좋은가요? 괜찮은 곳 있으면 얘기 좀 해주세요. 이러한 이야기들도 종종 들린다. 그만큼 좋은 교회, 좋은 목회자를 찾기가 힘든 시대라는 뜻이다. 슬픈 이 시대의 자화상이 아닐수가 없다. 


물론 이런 현실을 타개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 많은 대안교회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또 계속 새로운 시도들이 일어나고 있다. 수많은 목사들이 어떻게 하면 참된 목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으며, 많은 신학생들도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 불철주야 수많은 실험을 해보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좌초되어 가는 배를 일으켜 세울만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 듯 싶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세이비어 교회는 가장 역동적이고 가장 혁신적인 교회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독특한 교회이다. 70여년 동안 150명을 넘겨본 적이 없는,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는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많은 사역을 하고 있는 교회이다. 이 교회에 소속된 일원이라면 다양한 훈련을 받아야 하고, 자신의 재물을 기꺼이 내놓겠다는 서약을 해야하며, 각종 사역에 빠지지 않고 참여해야 한다. 물론 강제는 없다. 자신이 나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나갈 수도 있으며, 나가더라도 예배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엘리트적이고, 어떻게 보면 가혹하기까지 해보이는 교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들이 세이비어 교회의 일원으로 들어가길 원하고 있는 것일까?


세이비어 교회의 철학은 어쩌면 지극히 간단하다. 내면이 안정되지 않고는 외적인 행동이 나타날 수 없고, 또한 외적인 행동 없이는 내면이 안정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내적 여정과 외적 여정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그렇게 내적으로, 또 외적으로 안정되었을 때 비로소 사람들과의 건강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일원으로 기능할 수 있게 되는 순간부터, 각각의 성도들은 스스로의 소명을 찾아 나갈수 있는 힘을 얻게 되고,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세이비어 교회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벌써 한국교회에서 가장 부족한 바로 그 점이 보인다. 내적인 여정을 떠나는 교회를 찾기 힘들고, 설사 그런 교회가 있다 하더라도 지도자의 깊이가 심히 부족한 경우가 대다수라는 것이다. 어떻게든 외적으로 보이는 모습에만 치중하고 덩치를 키워서 그럴듯하게 보이는데만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은가? 찬양을 크게 부르고, 열심히 교회에 봉사하고, 매일 쉬지 않고 큐티를 하며, 헌금을 성실히 하는 것이 오늘날 믿음 좋은 성도의 척도인 현실이 아니던가? 마태복음 23장의 말씀을 기억하는 목사들조차도 교회 건물이 크지 않으면, 성도수가 적으면, 헌금 액수가 적으면 괜히 다른데 가서 위축되기 마련인 것이 오늘날 목사들의 자화상 아니던가? 


이렇게 정량적으로만 평가되고 내면을 어떻게 해야되는지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실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누구도 그런 것을 가르쳐주지도 않았고,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며, 오랜 시간에 걸친 경험도 전무한것이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가 처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영성을 이야기하지만 무엇이 영성인지는 모두의 말이 다르다. 말 그대로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고 있는 격인데 그곳에서 무슨 열매가 맺힐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현실에서 세이비어 교회의 이야기는 여러가지 화두를 준다. 세이비어 교회에서는 이러한 내면의 여정을 자신과의 소통, 하나님과의 소통, 타인과의 소통라는 세가지 주제로 풀어낸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돌이켜보고 마주하며 화해하는 과정을 거치고 이를 통해서 자신의 소명을 찾게 된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하나님이 빚어주신 원래 모습을 되찾는 것이다. 스스로의 내면을 바라보고, 화해하지 못했던 것들과 화해하며, 척지고 있었던 내 자신과 다시 친구가 되어야 한다. 우리 자신의 진짜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그때서야 서로가 서로에게 진실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그때서야 그리스도인들은 소명을 찾을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고, 그 소명을 통해서 세상으로 나아가게 된다. 


물론 이것은 세이비어 교회의 철학이고, 모두가 이 관점을 따를 필요는 없다. 다만 적어도 미션이 있고 비전이 있다면 그것을 구체화해서 무언가 과정을 만들어 낼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뭐든지 은혜로만 이루어지고 뭐든지 기도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스스로가 그 본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스스로가 정적주의의 함정에 빠진 것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세이비어교회의 과정에서는 다양한 관점들이 활용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심리학적인 지식도 활용되고, 카톨릭 교회에서 활용되는 여러 기도들도 활용된다. 우스펜스키와 구르지예프 같은 신비가들의 이야기들도 종종 보인다. 이 책이 나온 때가 1968년이니 당시 유행하던 사상적 흐름에서 배울 수 있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흡수했다고 볼 수 있다. 배울 수 있는 것은 배우고,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은 제거하고, 응용할 수 있는 부분은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자세는 오늘날에도 당연히 필요한 부분이다. 오늘날 4차 산업 혁명으로 천지개벽수준의 기술진보가 일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교회들은 이것을 어떻게 성도들의 유익에 활용할 수 있을지 열린 자세로 진지한 고민을 해봐야한다. 사도 바울도 편지를 보낼 때 그 지역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끔 친절한 비유와 이야기로 편지를 보내지 않았던가. 


이런 토대를 쌓은 공동체라야만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세이비어 교회는 150명의 인원으로 220억원 규모의 사역을 하고 있는 강력한 교회로도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는 세이비어 교회가 어떻게 수많은 사역을 감당했는지 그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어떻게 소명을 발견한 사람들이 그 소명을 향해 움직이는가? 그 과정 속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어떻게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가? 그 과정에서 어떻게 공동체간의 유대감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가? 세이비어 교회의 사례들은 그 모든 일들이 어느날 갑자기 뚝 떨어지지 않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각각의 지체들이 모두 함께 고민하고, 모두 함께 소통하며, 모두가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일로 받아들일 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협화음을 적극적으로 해소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질 때, 그때 사역이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고민이 없으면 아무리 인원이 많아도, 아무리 재원이 풍부해도 사역은 건강하게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2011년 한국을 방문한 세이비어 공동체의 앤 딘 목사는 한국 목사들이 재원을 어떻게 마련했는지에 대해서만 질문하는 것을 보고 굉장히 불쾌해 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 주소일 것이다. 사역이란 기본적으로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깊게 생각해본적이 없으니 눈에 보이는 지표들만 생각하는 것이다. 이제는 조금 생각을 달리해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제는 뭐가 근본적인 문제인지 한번 고민해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지금 한국 교회는 무엇을 하지 않는게 문제가 아니라 너무 많이 해서 문제인 것은 아닐까? 오히려 지금은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를 고민해야할 때인건 아닐까?


언젠가 나도 좋은 교회를 찾고 싶어서 다양한 교회들을 찾아 다닌 적이 있었다. 그 와중에 배운 것도 많았고, 실망한 적도 많았고, 안타까웠던 적도 많았다. 좋은 목사들도 만날 수 있었고, 좋은 목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는 목사들도 만날 수 있었다. 실망스러운 목사들도, 그런 교회도 너무나 많은 현실이지만, 오늘날 낯을 들 수가 없는 추태가 계속 반복되고, 개신교가 개독교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현실이지만, 미래를 향한 새싹들은 움트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언젠가는 한국에서 한국스타일의 세이비어 교회가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하게 되는 책이었다. 나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기꺼이 그 일원이 되고 싶은 교회, 그런 교회가 태동하는 시기. 그런 시기가 바로 지금의 시기라고, 그렇게 생각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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