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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한 대화법 - 한마디로 핵심을 전달하는
류양 지음, 차혜정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세상에 이보다 더한 거짓말은 없다며 소개된 몇몇 우스꽝스러운 말들 중에 교장선생님의 훈화가 있다.
“에..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초/중/고 모두 겪어봤지만 매학년 단 한분의 교장선생님도 빠짐없이, 심지어 교장선생님이 안 계실 때 대신 나온 교감선생님 마저도 저 한마디로 수십분간 가녀린 학생들의 다리를 고생시킨다. 대학생이 되면 이런 일은 없겠지! 라고 생각했었고, 다행히 없었다. 딱 한 번을 제외하고는...
신입생때.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소년이 되어 수백명의 학생들과 뻘쭘하게 대강당에 앉아 있었다. 학교를 소개하고 교육과정 및 동아리 활동 등을 처음으로 신입생들에게 알려주는 자리였다. 의례 이런 자리는 교수님들이 많이 참석하진 않지만 한두분은 꼭 같이 앉아계신다. 그리고는 학생회장의 소개에 따라 교수님의 한 말씀이 시작된다.
“교수님, 신입생들에게 한 마디만 부탁드리겠습니다”
“한 마디면.. 2시간 정도면 되는가?”
“......”
다행히 몇분 지나지 않아 그 한마디가 끝났지만, ‘2시간’이라는 말을 듣고는 숨이 멎을 뻔 했다.
어렸을 때, 어른이 되면 말이 많아지는 것이라 확신을 했었다. 내가 만나본 모든 어른들은 말이 많았기에. 무슨 정치 사회 경제 등등 어려운 주제를 가지고 참 많이도 말을 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리고 갓 어른이 된 지금, 나의 판단은 완전 옳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틀리지도 않았다. 나부터도 말이 조금 많아졌다. 그게 아닌데, 분명 내가 하려는 말은 딱 이 한마디만 하면 끝나는 걸 알면서도 왜인지 모르게 부가설명이 필요할까 싶어 이것 저것 설명을 해주다 보니 말은 길어지고 분위기가 느슨해졌다. 조리있게 말 잘한다고 칭찬까지 받아가며 어깨에 힘 가득 주고 다닐 때가... 10년 전이구나. 10년 사이에 별로 배운 것도 없으면서 나름 어려운 말을 설명해야 할 때는(특히 전공에 관한) 무슨 사족이 그리도 많이 필요한지 나도 모르게 이런 저런 말을 갖다 붙이며 침을 튀기곤 한다.
간결한 대화법.
화술에 관한 책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우리 삶 자체를 간결하게 바꾸어주려는 글이 담겨 있다. 고개를 직접 끄덕거리진 않아도 속으로 뜨끔 뜨끔 하는 부분은 꽤나 있었다.
“이번 주말에 뭐해?”
라는 친구의 질문.
자. 나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할 거 없어” 라고 솔직하게 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이 친구는 보통 나에게 부탁을 많이 하는 친구이니 바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놀자고 할 텐데... 숙제해야 한다며 튕겨야 하나, 여행간다고?? 뭐라고 말하지...
이러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계산이 팍팍팍 돌아간다. 나도 마찬가지다. 친구가 무엇인가 말을 하면, 그저 그 질문에 답하기는커녕 계산도 잘 안되면서 몇수 앞서갈려고 이런 저런 상황을 가정해 보고 나름 최선(?)의 판단을 내릴려고 생각을 꽤나 한다.
사공의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회의석상이나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의견을 모으기가 많이 힘들다. 정히 안될 때 쓰는 방법이 투표 혹은 다수결이다. 그러면 일부는 자신의 의견에 부합하지 않는 안건을 따라야 하는 희생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다. 다시 말해 만장일치란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아무래도 여러 의견이 나오기에 힘들어진다. 우리의 말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아주 단순하게, 그리고 간결하게 한 마디에 모든 것을 넣어서 일침에 가해버리면 뒤끝 없이 아주 깔끔하게 전해질 수 있지만 이런 저런 날개를 달아주다 보니 배가 하늘로 날아가는 격이 된다. 그 옛날 조조가 커다란 싸움을 앞두고 이것을 진행해야 하나, 아니면 싸워봤자 별 이득도 없는데 돌아가야 하나 고민을 하던 차에 자신이 먹고 있던 닭의 상태와 비슷해 혼잣말로 ‘계륵’을 되뇌었다고 한다. 먹자니 살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그것을 두뇌 회전이 빠른 양수가 알아듣고 조조가 이 싸움엔 별로 이득이 되는 바 없으니 조만간 철수 명령을 내릴 것이라 예상하여 사람들에게 짐을 싸라고 일렀다. 마음을 들켜버린 조조가 흥분한 나머지 양수를 참수하긴 했지만, ‘계륵’ 한마디에 저토록 깊은 의미를 담았고, 그 의미를 해석해서 짐을 싸라고 명을 한 양수 또한 간결한 대화법의 고수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TV에 나오는 MC들이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메이커들 입장에서는 이런 저런 말을 많이 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켜야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하면 괜한 살을 덧붙이기 보다 서로의 시간을 줄여줄 수 있는 간결한 대화를 하는 게 옳지 않을까.
아, 물론 사랑고백을 위한 달콤한 말은 결코 간결해져서는 안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