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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폭력들 - 미투 이후의 한국, 끝나지 않은 피해와 가해의 투쟁기
이은의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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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로 표현하자면, 이 책은 2021년 한국 사회가 성범죄를 대하는 현실이다.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땀으로 이뤄낸 개선점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참 모자란 현실에 서글픈 감정이 떠나질 않았다.

페미니즘에 관한 혹은 해당 저서와 같은 책을 읽을 때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이성애자 남성으로서, 인지하지 못한 것들이 많음을, 아직도 더 인지하지 못함을 느낀다. 무지함으로 폭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미약하지만 더 알려고 한다. 더 알려고 공부하고 노력해야 알 수 있다니, 이것만으로도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인 것을 체감한다. 내 편협한 남성 중심적 가치관으로 인해 너무나도 쉽게 자행된 지난날의 과오들이 혐오스럽고, 부끄럽다.


성범죄, 성폭력, 성희롱, 2차가해 등에 공통적으로 내재된 것 중 하나는 아마 '이게 이렇게 문제(범죄)일줄 몰랐다'라는 생각일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자라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길래, (2차가해 같은 경우엔)나만 그런 것도 아닌데, 와 같은 것들이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자신의 행동이 문제(범죄)임을 인식하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해당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고, 피해자의 두려움 섞인 소리를 들었을 땐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죗값)을 져야 마땅할 것이다. 성범죄에 대한 고찰, 생각의 전환이 있지 않는 한 이 문제(범죄)는 반복될 것이다. 거의 모든 성범죄의 가해자인 남성은 알아야 하고, 몰라서는 안 되고, 안다면 변화해야 한다.

+ 특히, 요즘은 성범죄 고소 건에 대해서 '무고 죄'가 큰 이슈로 보이는데(모 대통령 후보가 관련 공약도 냈다), 과연 이 사회는 피해자가 말할 수 있는 사회인지, 성범죄 적용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지는지, 꼭 이 책을 통해 읽어보았으면 한다. 제발.


작가인 이은의 변호사는 법조계와 성범죄의 비전적 영역(법조계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현실적 영역(법조계의 접근, 피해자가 접하는 부조리한 상황)을 동시에 제시한다. 십 년에 가까운 변호사 생활을 통해 사백여 개의 사건을 맡은 그는 현 제도의 갖은 맹점을 포착, 지적하며,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제가 마련될 수 있도록 도전점을 제시한다. 그리고 피해자들이 오늘날 현 제도 내에서 어떻게 현실적인 해결점을 도출할 수 있을지를 내보인다. 진화하는 가해 속에서 피해자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적합한 태도가, 안타깝게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누구는 지독하고 끔찍한 현실을 스스럼없이 만들고, 누군가는 그 현실 속에서 고통 속에 살아간다. 상냥하게 저지르는 폭력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이 현실은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우리는 현실의 구성원이자 당사자이다. 인지하고, 끊어내고, 이뤄내자. 피해자가 아무런 낙인 없이 제 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 친절과 배려가 범죄의 요인이 되지 않는 사회, 누구나 범죄와 폭력으로부터 보호받는 사회, 그런 사회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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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주 오영선
최양선 지음 / 사계절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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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중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은 아니다. 서론에서도 말한 것처럼, 책은 관련 용어들을 동원하며 자신이 '부동산'을 주제로 한 소설임을 드러낸다. 직접적인 접근을 하다 보니 읽기가 훨씬 수월하다. 주제로부터 진행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면 된다. 부동산이란 주제는 자기 생을 책임지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요소이다. 덕분에 독자는 이야기에서 나는 현실의 퍽퍽한 냄새를 맡으며 책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한 번쯤은 다들 내 집 마련의 꿈을 꿀 것이다. 집값은 매년 폭등하고 있다. 몇백 분의 일을 노리기 위해 최대한 일찍 청약통장을 만들고,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조건을 갖추기 위해 아이를 갖기도 한다. 거기에다 집을 구하는 방법은 또 어찌나 까다롭고 복잡한지! 당장 매수를 하자니 대출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불안하고, 전세로 살자니 그것도 손해를 보는 것 같아 불안하다. 빚을 내서 집을 사도, 가격이 떨어진다면 매우 큰 문제다.

이렇듯, 이 시대에 '집'을 구한다는 것은 단순히 주거지에 대한 문제가 아닌, 자산과 투자, 안정, 꿈, 부채 등이 뒤섞여 만들어낸 자본의 큰 흐름이자 물살에 뛰어드는 셈이다.


책을 읽으며 현실감에 푹 빠져 정처 없이 이 생각과 저 생각을 떠돌던 중, 과연 나는 자본의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인지 아님 그에 반하는 사람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좋은 학군, 역세권, 구축된 인프라 등은 물론 삶을 편리하게 해준다. 내 집의 가격도 불려준다. 하지만 그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자본이 필요하고, 조건을 하나씩 포기할 때마다 자본의 규모는 작아진다. 안정감과 편리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나쁘지 않은 방향이라 생각되는데, 어딘가 찜찜한 기분이 든다.

자본의 흐름에 편승해 좋은 조건의 아파트를 눈에 불을 켜고 선점하지 않는 것은 진정 어리석고 폄하당해 마땅한 일일까. 부동산 문제만이 아닐 것이다. 유행이란 쉽게 말해서 남들 다 하는 것들이다. 유행에 뒤처지면, 남들 다 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뭔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만 같은 시대이다. 집을 사고팔며 자산을 불리는 일처럼, 특정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나, 인터넷에서 뜨거운 밈을 이해하는 것 모두 유행의 범주 안에 들어가 있다.

나는 결론을 냈다. 유행을 이유 삼지 않겠노라고. 분명한 이유 없이 다수의 호응에 따라 내 삶을 이끌고 싶진 않다. 마찬가지다. 좋은 조건의 집을 열심히 일하고 대출을 끼고 매수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내가 찾은 이유가 있을 것이고, 집값이 비교적 높지 않은 지역을 택하거나 오래된 집을 사서 수리해 산다면 그것 또한 나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지금은 굳이 수도권이 아니더라도, 이런저런 복잡한 것들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나만의 집을 마련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작가가 본인의 이야기를 썼나, 싶을 정도로 현실적인 고민과 현대인들의 애환을 담아낸 <세대주 오영선>은 2021년 11월 25일 출간된다. 집을 구하는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싶은 사람들, 요즘 아파트를 사기 위해선 어떤 것들을 고민해야 하는지 궁금한 사람들, 언젠가 내 집 마련이 꿈인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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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양장) 소설Y
천선란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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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블로그를 운영해오면서 '재미있다, 잘 쓴 소설이다, 문장력이 뛰어나다' 등의 표현들을 지나치게 자주 사용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투적인 감탄을 더는 남발하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각오하던 요즘이었는데. 옛말에 작심삼일이라고 했다. <나인>을 읽으며 재미있다는 말을 놓칠 수 없었다. 정말 재미있다. 흰 바탕에 오와 열을 맞춰 진열된 글자들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다음 장이다. 다음 장, 그다음 장, 1부, 2부, 3부까지. 전작을 읽으면서도 작가의 흡인력에 놀랐었는데, 이번 작품은 그 힘이 더 세다.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독자들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천선란 월드'에 입장하게 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나인>이란 소설에 관심이 있어 들어왔다면, 주인공들과 그들이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리라. 책을 읽으며 충분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며, 나는 당신이 책을 읽기 바라니까. 끌린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서사를 전개하는 힘, 즉 '스토리텔링' 능력이 엄청나다. 읽는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고, 속 시원하게도 하며, 안절부절못하게 하는 소설은 그야말로 좋은 소설이 아닐까. 더욱이 읽지 않을 이유가 없어진다.

이상하리만치 느긋하게 질서를 지키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외계인이야.
왜?
인간들이 정해 둔 규칙을 지키는 거지. 외부인이니까.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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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일리아스 - 신들의 전쟁과 인간들의 운명을 노래하다 주니어 클래식 16
장영란 지음 / 사계절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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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총 24권으로 구성된 일리아스를 12개의 장으로 나눠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그리고 각 장이 끝날 때마다 고대 그리스의 문화적 특징 등에 대한 해설을 덧붙이며 본 이야기를 이루고 있는 큰 흐름을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독자들은 책을 읽는 동안 해설의 안내를 받아 이 그리스 고전에 푹 빠져 순간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다툼부터 시작해 파리스와 메넬라오스의 결투, 아킬레우스를 설득하기 위한 사절단,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헥토르의 죽음과 시신의 반환 등을 해설을 곁들여 차례로 읽어내다 보면 어느새 책은 끝나있다. 일리아스 본연의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400여 쪽에 달하는 책을 단숨에 돌파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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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양장) 소설Y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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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나>는 영혼을 잃은, 이른바 '영혼 없이' 살게된 두 고등학생의 이야기다. 모두가 부러워 하는 고등학생 한수리와, 모두의 부탁을 들어주는 착한 고등학생 은류. 이들은 모종의 이유로 각자의 몸이 영혼을 거부하게 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밖에 머문다. 이들에게 선령이 찾아와 '일주일의 시간 안에 몸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영혼을 데려가겠다'고 말한다. 책은 일주일 동안 두 등장인물의 성찰과 사고의 흐름을 쫓아 독자들을 인도한다. 거기에, 두 번에 걸쳐 등장하는 선령의 편지는 우리에게 그의 시선으로 일련의 사건을 바라볼 수 있는 재미를 선사한다.

  작가는 작중 표현대로 사람들은 많은 일에 영혼이란 단어를 사용해 느낌을 전하려 한다. '영혼 없다', '영혼을 갈아 넣는다', '영혼을 불살랐다' 등등. 정작 영혼이, 자신의 영혼이 실재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탐구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없을 수 있는, 갈아 넣을 수 있는, 불사를 수 있는 '영혼'. 우리는 각자의 영혼과 얼마나 가까울까.

  이해하기 쉽게 풀어진 소설이라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는 점이, <나나>의 많은 매력 중 하나이다. 한수리와 은류의 성찰기를 통해, 독자들 또한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일상 속 영혼의 농도가 얼마나 되는지 자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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