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위의 낱말들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달 위의 낱말들

-황경신-

 

<밤 열한 시>라는 책으로 몇해전 이미 저자의 책을 접했었다.

그랬기에, 푸른 밤하늘이 그려진 책표지마저 예쁜 책 <달 위의 낱말들>을

아껴서 아껴서 차근차근 꼭꼭 씹어 읽고 싶은 책이었는데...

황경신 작가는 이 책의 여는글에서 이렇게 당부한다.

" 이 책은 순서대로 읽지 않기를, 아무 페이지나 마구 펼쳐 읽기를 부디 바랍니다. " -p5-

내 성격상 그리 할 수 없는 것을 알지만, 일부러라도 그래 보았다.

그래서 만난 첫 낱말은 "쓰다" 였다.

 

 

쓰세요.

세상으로 향하는 문이 닫힐 때, 우리는 홀로 앉아 무언가를 써야합니다.

나에 대하여, 너에 대하여, 그리고 세상에 대하여,

혹은 나 아닌 것에 대하여, 너 아닌 것에 대하여, 그리고 세상이 아닌 것에 대하여.

쓰세요.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문득 사라진 것에 대하여...

...

쓰세요. 당신이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하여.

... 변해버린 것과 제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쓰세요. 어제까지 할 수 없었지만 오늘부터 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하여. -p67-

한 문장 한 문장 읽어 가며 모든 써야할 것들을 떠올려보았다

정말 써야할 많은 것들이 있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무언가 써야할 것 같은 생각은 또 독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당신이 무언가를 쓸 때, 당신은 여기가 아닌 거기로 갑니다.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 한 번도 갖지 못했던 것을 갖게 됩니다.

단 하나의 우주에 갇혀 있는 당신은 무한한 우주를 만납니다.

너는 쓰기 시작한다.

너에 대하여, 나에 대하여, 혹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p68-

 

저자는 책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자신을 '너'로 칭하고 있다.

자신을 어느 공간에 멀직이 떨어뜨려두고 스스로의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는 것처럼 글을 썼다.

그런 부분이 독자인 나도 좋았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나를 그렇게 보게 된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관찰하며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는 것, 물론 객관적인 것 자체도 주관적인 것이겠지만,

자신을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모습을 그냥 거리를 두며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된 것이 기쁘기도 했다.

감정에 지나치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기에 그랬다.

 

 

책엔 스물여덟개(28)의 단어와 열개(10)의 사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각각의 단어에는 작가의 일상과 여행지에서의 일들과 생각이

함축되어 있다.

 

작가의 쉰번째 생일에 떠난 스페인 여행...

결코 젊다고 할 수 없는, 그러나 늙었다고 하기엔 억울한 나이라고...

한적한 마을에 머물며 마을도 늙고, 사람도 늙어 있는 마을에서

한 노인을 마주치며 노인의 과거와 자신의 미래를 보았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 너는 미래(未來)를 앙망했다.

아닐 미(未), 올 래(來), 국어사전은 "앞으로 올 때"로 그 단어를 풀이했지만,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아직 오지 않은 때'이다.

네가 꿈꾸던 미래는 한 번도 오지 않았고 영원히 오지 않을지라도,

너 역시 하나의 풍경으로 어느 장소, 어느 순간에 남을 것이다.

삶의 엄중하고 공평한 잔인함을 등에 업고, 곧 사라질 현재를 응시하면서. -p85-

 

미래(未來)라는 단어를 나 또한 좋아한다

꿈과 호연지기를 배웠던 청소년기의 교육의 효과였던 것 같다.

그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나 꿈을 잃지 말고 살자며...

하지만 최근 사람들은 '현재'를 살라고 한다.

그 현재가 모여 미래가 된다고...

어쩌면 저자의 말처럼 내가 꿈꾸던 미래는 아직 한번도 오지 않았던것 같다.

 

 

작가가 소유한 사물들의 예쁜 삽화에 눈길이 갔다.

물론 그 사물들에 얽힌 사연들과 그 사물에 대한 작가의 시선도 그렇다.

긴 시간 함께 했던 피아노를 회생불가능한 조율진단으로 대형폐기물 스티커를 붙여 내놓을 때,

슬프거나 아쉽지가 않았다고 했다.

 

인연이 다했다.

인연이 다하면 그저 낡은 실이 끊어지듯 툭 끊어지는구나.

그만이다 하고 툭툭 털 수 있구나. -p239 -

 

 

 

 

한때 E-Book도 사용해 보았지만

와인을 종이컵에 담아 마시는 것처럼 맛도 없고 멋도 없어서 곧 포기했다. -p254-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처질 것 없는 세상,

독서가 더 이상 미덕이 아닌 세상이 되었다고 말하지만,

권장 다큐멘터리, 권장 드라마보다 여전히 권장도서가 좋은 사람들이 있다.

책을 통해 얻는 기쁨을 또 황경신 작가의 <달위의 낱말들>을 통해 얻어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