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굴식물인 9월의 클레마티스를 좋아한다는 저자의 표현에
이별에 대한 감정이 잘 드러나 있었다.
인내심을 가지고 엉켜버린 줄기를 조심스럽게 떼어내며
나는 클레마티스의 덩굴손이 꼭 감정같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잘 정리했다고 생각했지만 슬쩍슬쩍 달라붙어 나를 감는 지난 감정들. -p130-
함께 했던 행복한 순간들을 한순간에 정리하는 게 아쉽겠지만
말라버린 줄기를
싹둑 짦게 잘라 정리하겠다고 다짐하며
몸을 추스른 클레마티스가 봄에 더 풍성하고 무성한 싹을 올릴 것을 기대한다.
10월의 코스모스와 야생화, 11월의 노박덩굴과
가을꽃인 맨드라미,하이페리쿰, 해바라기, 홉, 메리골드...
향기가 좋다는 메리골드의 향기가 궁금해진다.
줄기에 붙은 메리골드의 이파리를 떼어내는 순간
시원햔 풀향기인듯, 달큰한 꽃향기인듯,
약초같은 허브향기인 듯
매력적인 향이 코 끝을 탁 때리듯 들어온다. -p172-
메리골드의 향기를 손님들이 인식하게 되는 모습이
저자의 즐거움이라 하니
꽃에 문외한인 나도 플로리스트 저자님의 꽃 세계를 기웃거려보게 된다.
12월의 드라이플라워, 존재 이유와 불안을 동시에 꽃말로 가지고 있다는 1월의 헬레보루스,
습자지처럼 얇은 꽃잎을 순식간에 화르르 떨어뜨리며 져버린다는 2월의 라넌큘러스,
비밀스러운 사랑의 꽃말 미모사, 속절없는 사랑 아네모네,
무에서의 출발 스카비오사, 그리고 무스카리...
겨울꽃의 이야기중
만개하여 화려했던 꽃이 하룻밤새에 막대기 같은 줄기만 남겨둔 채
꽃잎이 바닥에 떨어져 수북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보며
느꼈던 저자의 마음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럴 때면 나는 라넌큘러스라는 책 한 권을 읽은 것 같은 기분에 빠지곤 한다. - p203-
스카비오사에게는 '무에서의 출발'이라는 꽃말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꽃이 내 마음을 알아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p217-
책 한권을 읽었는데, 활짝 핀 꽃들을 감상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 꽃들을 보며 움츠렸던 마음이 열린 기분.
꽃에 대한 이해와 상식을 얻기도 하지만 흔들리고 지쳤던 마음에
처방을 해 준 책이었다.
불멍, 물멍이 있듯이 꽃멍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의 방향을 따라 내 자리를 찾아가는 일
마음을 다독이고 중심을 찾아가는 일
계절의 흐름을 느끼며 살아보는 일
가둘 수 없는 것을 보내주는 일
어쩔 수 없는 것을 포기하는 일
내 삶을 누리는 일
나는 피고 지는 꽃을 보며 삶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