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하루 시 같은 순간
박종민 지음 / SISO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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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하루

시시한 순간

-글/사진 박종민-

 

 

길을 걸을 때 가장 나다워진다는 저자 박종민님의

길에서 만난 사물과 풍경이 담긴 사진첩 같은 시집

'시시한 하루 시시한 순간' 은

새로운 문학 장르인 디카시이다.

디카와 시의 합성어로 디카(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영상과

문자를 결합한 멀티 언어 예술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하이쿠( 일본 시 문학의 일종)로

표현된 시집이기도 하다.

 

 글/사진 박종민

 

 

 

수고한 한 해를 끝내고, 다시 시작된 새해를 맞이한 날,

' 시시한 하루 시같은 순간 ' 을 만났다.

 

 

 

지나온 길은 되돌아가지 않고

가야할 길은 피하지 않는다.

해넘이도 해돋이도 모두 생략된 한 해의 시작...

한 장의 사진이 많은 걸 대체해 주었다.

내겐 언제나 해넘이와 해돋이의 모습이 구별되지 않는다.

해돋이 같은 해넘이, 해넘이 같은 해돋이는

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데에 같은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해돋이와 해넘이건만

그 일상을 무심히 지나치다 연말에 와서야,

또 새해를 맞이할 때서야 주목받는 해는

늘 그 자리에서 성실히 제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무덤덤하고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들이

힘든 일을 겪고 난 후에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음을 작가는

책머리에 고백한다.

 

내게 버팀목이 되어준 벗,

'일상'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뜨끔!'

작가만이 아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행복으로 가는 길목에 서서(16편), 머물고 싶던 길 위의 순간들(38편),

사소하고 느릿한 것들의 가치(28편), 인생은 짧고 순간은 길다(28편),

시시한 하루의 시 같은 순간(26편),,,

총 다섯개 제목의 Part 5로 구성된 책은

Part 1에서 Part 5 까지 모두 136편의 짦은 시를

사진과 함께 감상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그냥 별 것이 아니라고 지나쳐버릴 수 있는

짧은 순간들을 작가는 놓치지 않고

그 순간을 사진 속에 담아놓았다.

그 순간의 마음을 그대로 옮겨 놓은 짧은 시와 함께...

책 속의 사진들은 어느 한 장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작품들이었다.

 

 p48 꼰대 / 호연지기

 

허리 쭉 펴고

하늘에 닿으려는

또 하나의 산

나무의 모습에서는 꼰대도 호연지기도 나왔다.

사진의 배치는 한 가운데에 배치하지 않고

왼쪽면 또는 위쪽 면 끝에 배치하여

창의적인 구성으로

틀에 갇히지 않고 여백을 느낄 수 있는 점이 편안함마저 느끼게 한다.

 

 p30 < 생방송 >

 

구름은 느릿느릿

바람은 설렁설렁

잎들은 살랑살랑

오늘도 채널고정

하루가 그냥 가네

 

 

문 밖의 풍경이 문틀 안에서 생방송중인 화면이 되었다.

그 즐거움에 채널고정한 채 아마도 하루를 모두 보냈나 보다.

시간에 쫓기었다면 누릴 수 없었던 즐거움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을 볼 줄 몰랐다면 놓쳤을 풍경이었을 것이다.

작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진 속에 담아 두었고

그 때의 마음을 시로 남겨두었다.

 

  p99 < 1막 2장 >

 

 p85 < 전망 좋은 방 >

 

급하게 가느라

바닥에 떨어뜨린 건 없는지

지나온 길 한번 뒤돌아봐 -p85-

 

어디론가 바쁘게 걷고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며

그들에게서 어쩌면 자신의 모습을 보았는지 모르겠다.

그 속에 있었으면 나도 어디를 향해 가는 지 모르고

무엇을 떨어뜨린 지도 모르고

바쁘게 어딘가로 휩쓸려 갔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p140 < 페르소나 >

 

하루 종일 썼던 가면을 걸어놓고

퇴근하는 샐러리맨

내일은 누굴 만날까

내일은 어떤 걸 쓸까 -p140-

 

누구나 자신의 역할에 맞는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진짜 모습은 감춰둔 채...

시< 페르소나> 속의 퇴근하는 샐러리맨은 자신의 가면을 벗어 둘 장소가 있기나 한 지 모르겠다.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면

가면을 벗어 둘 장소도 마땅치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면을 벗어도 많은 차이가 나지 않게 내 본연의 모습으로

솔직하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갖는 건

옳지 않은걸까.

너무 많은 걸 감추지 말고...

나인채로 살아보면 안되는 것인가.

 

 p136 단풍침대

 

 

잡고 있던 손 놓았더니

이렇게 편안할 수가

상처는 남았지만

집착의 가지에서 이제 벗어났다네 -p136-

 

끝까지 놓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하나씩 지니고 있을 것 같다.

집념이라하기엔 집착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를 것들을 안간힘을 쓰며 붙잡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할 수 있는 데까지 끝까지 해본다는 핑계로...

잡고 있던 것을 놓았을 때 홀가분함과

그로 인해 입은 상처의 깊이는 비교될 수 있는 것인가 알 수 없다.

 

놓고 싶지만 놓을 수 없는 것과 놓아도 괜찮은 것들을

 쉽게 구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한장 한장에 담긴 저자의 시에 함께 동화되기도 하고

또 혼자만의 사색의 시간을 갖게 되기도 했다.

핸드폰 속에 꽉 찬 사진들을 하나 하나 들춰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길을 걸으며 마주 했던 여러 일상들을

그냥 흘려버리고 싶지 않을 때 저장해 놓은 수많은 사진들이

글로 표현되길 기다릴 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자신의 핸드폰 속의 사진들을 꺼내오고 싶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일상의 시간들이 시가 되는 순간으로 만들어 주는 책이다.

누군가에게는 시시한 하루가

결코 시시할 수 없는 소중한 순간으로 만드는 것은

내 몫이다.

 

평범한 일상들이 '시시한 하루'가 될지,

시가 되는 '시시詩詩한 하루' 가 될지는

오롯이 시간의 주인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p218 < 겨울산 >

 

배낭을 등에 지고 눈쌓인 산을 오르고 있는

중년의 뒷모습이 담긴 시 < 겨울산 >이

시집의 마지막 장이다.

힘들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지만,

오르는 길에 있을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얼어 붙어

햇빛에 반짝이는 눈꽃의 영롱함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눈오는 새해 첫날 아침 출근하는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꿈속을 헤메여야할 것 같은 어둡고 깜깜한 새벽에

현실로 달려가는 차의 불빛이 또다시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책 뒷 표지를 덮었다.

 

마지막까지 여운이 남는 시집 한 권으로

새날을 시작했다.

 

누구나 만나는 일상 속에서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순간을 담아 시로 엮었다.

이로써 찰나는 영원해졌다.

인생은 짧고 순간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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