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걸으면 좋겠습니다 - 남난희의 지리산 살이
남난희 지음 / 마인드큐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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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걸으면

좋겠습니다

-남난희-

 

 

산의 위로로 숨을 쉬었다.

아픈 나를 산은 말없이 받아주었다.

산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 주었고,

내가 원없이 걸을 수 있도록 품을 내주었다.

책머리에 써있는 저자의 말이다.

시련을 겪은 저자가 산에서 위로받고,

방치해 두었던 삶을 하나하나 다시 찾아가며

산 속 삶의 일상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의 그 일상은 평범하지 않다.

여성 세계 최초로 해발 7,455미터 높이의

히말라야 강가푸르나 봉에 오르고,

국내 최장 설악산 토왕성 빙벽 폭포를 두 차례나 등반한 저자의 일상...

현재 지리산학교 숲길걷기반 교사로 활동하며

백두대간을 국제적 수준의 트레일로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있다고 한다.

 

 

젊은 날의 산에 대한 열정으로 암벽과 빙벽을 오르고,

백두대간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는 저자는

살면서 여섯 번 백두대간을 밟았고,

그 백두대간을 만나는 이야기로 책이 시작된다.

 

그렇게 사계절을 백두대간에서 보냈다.

산이 깨어 나는 것을 느끼고,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보고,

산이 다시 잠드는 소리를 들었다.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하루하루가 충만했다.

지도에 지명이 없는 곳은 우리가 지어 주었고,

일본이 멋대로 개명한 산 이름은 본래의 이름을 찾아 불러주었다. -p27-

 

산악인이지만 애국자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여기저기 막혀있는 부분을 연결하고,

정비된 백두대간 길을 국제적인 트레일로 만들어

남한의 백두대간과 북한의 백두대간을 잇자는 운동의

세가지 일을 추진하여

미국의 PCT(Pacific Crest Trail)에 뒤지지 않는

트레일이 완성될 미래를 꿈꾼다.

도시를 떠난 지 27년,

산을 사랑하여 지리산에 입산을 하고 매일 산행을 하며

그 산행의 의미에 '감사'를 두고 있다는 저자의 수행의 산은

큰 내공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 시간은 산을 만나고, 자연을 만나고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수행의 시간이고, 명상의 시간이고,

비우는 시간이고, 채우는 시간이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기도의 시간이다.

그 시간은 용서의 시간이고, 참회의 시간이다.

그 시간은 정신과 육신을 돌보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축복의 시간이다.

그 시간은 감사의 시간이다. -p43-

'보호관찰 청소년'과의 지리산둘레길 295킬로미터의 동행을 다룬 부분이

인상깊었다.

벨기에의 '오이코텐'과

프랑스의 '쇠이유'라는 단체의 활동처럼

소외된 청소년들에게 사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는 기회를

주도록 함께 '걷는 프로그램'의 제의에

저자는 자신의 아픔에 맞서 그 제의를 받아들이고 동행했다.

자신이 잃은 자식과 같은 또래 아이를 마주하는

심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보게 된다.

막다른 골목에 처한 아이들이 세상밖으로 나오고

자신을 발견하고, 타인과 마주하며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걷기 프로그램으로

치유와 나눔의 시간이 되길 바라는 저자의 진정한 마음이 느껴졌다.

나 또한 개인적으로 그런 프로그램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아이들의 미래를 함께 책임져야 할 의무감 같은 걸로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한 노력을 여전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자신의 결정권이 없이 열악한 환경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부터 혼란스러울 아이들을 여럿 보아왔다.

사회가,또 어른이 그들의 미래를 함께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출발을 잘못해서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지를 고민하고 재도전의 기회를 기다리는 저자를 향해

나도 함께 응원한다. 

 

산행은 인생과 비슷하다.

인생을 함께 살아줄 수는 있지만 대신 살아주지는 못하는 것처럼, 산행도 그렇다.

함께 걸을 수는 있지만 대신 걸어줄 수는 없는 것이다.

오로지 내가 직접 내 발로 걸어야만 하는 것이다.

책 속에 간간히 삽입되어 있는 사진들이 독자를 함께 산행에 동행시킨다.

계곡을 걷고, 가을산을 오르고, 덕유산 설경을 함께 감상하게 한다.

산 기슭 지인 농부의 모심기도 멋진 놀이로 동참시켜주었다.

 

밥알 한톨 한톨이 보석같다.

아니, 같은 게 아니라 그냥 보석이다.

반짝이기까지 한다.

흙과 해와 물과 바람과 공기, 달과 별 그리고 약간의 사람의 손길, 환호 등이 모여

탄생한 영롱한 보석이다. -p212-

 

마당에 우물이 있는 저자의 집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모두 자연의 일이다.

딱새 손님과 말벌과 풀잔치와 야생 고양이...

자연과 일체가 되어있는 저자의 일상을

책을 읽으며 함께 경험해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저자와 함께 걷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자연은, 산은, 나의 신이자 나의 부모, 나의 연인이고, 영원한 '내편'이다.

내가 산에서 위로를 받고 산에서 행복하듯,

당신도 그런 대상과 함께 하며 아픔에서 벗어나기를 기도한다.

오늘도 나는 걷는다. 당신도 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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